[남과 북, 어제와 오늘] 농경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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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매주 한차례 여러분을 찾아 뵙는 ‘남과 북,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폭염과 큰물피해가 많이 나서 한반도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와 이제 들녘에는 고개 숙인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본격적인 추수, 벼가을이 시작될 텐데요. 오늘은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민족의 농경문화 전통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대담을 위해 탈북여성지식인 김현아 선생이 나오셨습니다. 김 선생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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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내 올해 첫 벼베기가 8월 24일 양구군 양구읍 송청리 선바위 뜰에서 실시됐다. 농민 주동화씨는 지난 4월 23일 모를 심어 120여일만에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현아: 네 안녕하세요.

오중석: 네 오늘은 지난 수 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농경문화, 그러니까 농사짓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민족의 역사는 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경의 역사와 그 기원을 같이한다고 우리는 배웠는데요. 한마디로 우리역사는 농사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남한은 현재와 같은 첨단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농사를 중요시하고 농민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해진 바로는 북한은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없어서 인민이 굶주리는데도 선군정치다 경공업 진흥이다 하면서 여전히 농업진흥이나 농사개혁은 외면하는 것 같은데 지금 북한의 농업 현실은 어떠한지요.

김현아: 농사를 국가적으로 중요시하기는 남한보다 북한이 훨씬 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북한은 원래 자력갱생 경제 아니예요? 자력갱생에서 중요한 것은 인민들이 먹고 사는걸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실제 북한의 경지면적은 그다지 많지 않고 또 기후도 별로 좋은 게 아니라서 농사를 북한에서만 지어서는 충분히 먹을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북한은 이 자력갱생의 원칙을 지키다 보니까 주민들의 먹는 것은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농사에 주력했구요. 또 땅이 모자랄 때는 ‘새땅찾기운동’이라던가 이번에 대계도 간석지, 여기는 간척지라고 하죠. 이런 공사도 하면서 많이 노력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농업현실은 열악하기 그지 없는거죠. 단적인 예로 그 많은 경지면적에서 공업건설도 별로 하지 않아요. 그리고 남한도 물론 농토를 산업지로 전환하는 데 아주 까다로운 규제조치가 붙잖아요. 그것처럼 북한도 아주 철저하죠. 그래서 경지면적으로 쓰이는 부지가 남한에 비해서 훨씬 많다고 제가 알고 있어요.

오중석: 농경지를 다른 걸로 전환하는 것을 법으로 규제를 하고 있군요

김현아: 북한은 아주 농사가 안 되는 땅도 공업지로 전환시키기 어려워요. 그렇게 농사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 생산량이 작아요. 남한은 총 생산량이 600만톤 소리 하더라고요. 근데 북한은 400만톤 많을 때는 450만톤 이렇게 잡고 있는데 왜 그러냐 하면 정보당 수확량이 상당히 작아서 그래요. 정당 수확량이 이전에는 아주 불려서 10톤까지 말했는데 실제 2톤 소리하거든요. 한톤 반, 지어는 한톤 정도만 나온다고 그래요. 북한의 경지면적이 22만 정보라고는 하지만 농업 생산량이 그냥 떨어지는 거죠. 하지만 남한은 관심이 있어서 알아봤더니 안 되는 밭도 보통 6톤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주 현실이 처참하게 다르죠.

오중석: 북한의 체제까지 위협하는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동농장 폐지와 같은 과감한 토지개혁과 농업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이 많은 데 왜 북한은 이런 조치들을 과감하게 취하지 못하는 걸까요.

김현아: 네 그러니까 남한보다 북한이 농사는 안 되는 건 물론 추운 북쪽지역에 있다 이런 말도 있고 농토도 그렇다 하지만 기본은 말씀하신 것처럼 소유제 때문 아니겠어요. 자기 땅이면 죽을 둥 말 둥 열심히 농사를 짓겠지만 이거는 국가 거니까요. 마지막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기한테 차려지는 게 없으니까 사람들이 열성을 다해서 일하지 않죠. 그래서 중국에서는 그걸 다 개인에게 나누어주는 ‘가족단위도급제’ 라는걸 하지 않았어요. 한데 북한에서는 그걸 결사 반대하거든요. 이렇게 사적 소유로 나누어주고 사람들이 제힘으로 먹고 살게 되면 국가의 말을 잘 안 듣겠죠. 결국은 국가적으로 주민 통제력, 현재 지도부의 지배권을 위협하게 되니까 그렇지 않나 저는 생각합니다.

오중석: 그것도 국가에서 어느 정도 배급을 통해서 인민들을 먹여 살리면 얘기가 되는데 주민들이 굶고 있는데 그래도 토지를 국가소유로 집단농장제를 고집해 주민들이 양식이 없어서 굶게 만들면 그게 어디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김현아: 그렇죠. 오히려 사람들한테 농사를 지어라 그래서 잘지어서 주민들이 잘 살게 되면 체제에 대해 더 충성하겠는데 그렇게 안 하거든요. 왜냐하면 정부가 자기 체제에 대해서 신심이 없다고 봐야죠.

오중석: 중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토지만 자기 사유화를 안정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라는 말씀이시죠. 김선생님이 한국에 와서 보고 느끼신 한국의 농업현실은 어떻습니까?

김현아: 비록 제가 인텔리지만 북한은 농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거든요. 북한 농사는 대학생들하고 중학생들이 다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우리가 남한 농촌에 정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근데 제일 크게 느낀 건 농사를 지어도 너무 조용히 짓는다는 거였어요. 우리 북한에서는 농사를 짓게 되면 온 나라를 들볶거든요. 그래서 모내기 철이면 신문, 방송, TV 할 것 없이 모두 ‘모내기전투에로’ 가을에는 모두 ‘벼가을전투에로’ 이렇게 온 나라를 들볶으면서 농사를 짓는데도 쌀이 모자라 밤낮 고생합니다. 그런데 남한에 오면요 모내기를 하는지 가을걷이를 하는지 옆에서 떠드는 게 없어요. 다만 주민들이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이런 말을 할 뿐이죠. 그런데도 가서 보면 어느새 밭이 파랗게 벼가 심어져 있고요. 가을엔 그야말로 황금물결이 출렁이고요. 벼 가을도 아주 참 조용히 하는 게 참 놀라웠고요. 두 번째는 농사가 되어 쌀이 처치 곤란해 한다는 게 놀라웠어요. 물론 북한에서는 남한에 경지면적이 많아서 이전에 호남벌에서 농사지은 걸로 해방 전에 온 나라가 3년을 먹고 살았다고 말하거든요. 북한이 농사가 안되는 건 항상 경지면적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해요. 북한사람들이 어떤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게 되면 남쪽에 땅이 많으니까 농사를 잘 지어 우리가 배고픔을 덜지 않을까 이런 희망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까 참 농사가 잘되고 사실 토지의 많은 부분은 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알곡 외에도 너무나도 소비하는 게 많다 보니까 오히려 입쌀은 남잖아요. 지금 이번에도 또 풍년 될 게 틀림없고 추수 때가 다가오는데 이 쌀을 어쩌냐 이걸 빨리 처리해야 할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걸 보고 남과 북이 어쩜 이리 다를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중석: 쌀을 더 많이 소비하자. 빵이나 밀가루 그만 먹고 우리가 만든 쌀을 좀 먹자 라는 캠페인을 국가에서 할만큼 쌀 소비량이 줄고 있고, 반면에 농사 짓는 인구는 줄어드는 데 오히려 쌀 생산량은 많단 말입니다. 여러 가지 영농기술 등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참 안타까운 일이죠.

김현아: 기본적으로 여기서는 쌀을 많이 소비하지 않아요. 북한에서는 보통 성인 한 사람이 한달 순 입쌀로 15킬로 정도는 있어야 하거든요. 제가 가정주부다 보니까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 근데 남한에 와서 살 때보면 15킬로 한 사람이 한달에 먹는다고 하면 입을 딱 벌리더라구요. 그게 많이 먹는 게 아니라 사실 조금 먹는 거죠. 칼로리로 보면 북한 사람들은 순 쌀에 매달리는 거고 남한은 먹을게 너무 많잖아요. 쌀은 그야말로 몇 분의 몇도 안되는 거고 그러니까 북한이 더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중석: 네 한국에서도 농촌인구는 계속 줄어 농사 지을 사람이 없잖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작면적은 늘어나고, 또 그 경작면적에서 농사를 지어서 생산을 해내거든요. 그건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현아: 글쎄 저희가 처음 남한에 와서 시골에 가니까 진짜 다 나이 드신 분들만 계시더라구요. 물론 다 잘 산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는데, 그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많은데 다 나이 드신 분이예요. 다 60세 넘으신 할머니, 할아버지이신데 농사를 어떻게 짓나 했더니 매 집집마다 뜨락또르, 여기서는 트랙터라고 하죠. 경운기는 좀 다른데 소형 뜨락또르 같은 게 다 있는 거예요. 그러니 다 술술 기계로 하는거죠. 또 농업과학기술도 형편없이 발전 했더라구요. 농사 짓는걸 우리 북한처럼 힘들게 않해요. 저는 모내기 하는 것도 유심히 봤는데 북한은 모자체를 손으로 하나씩 뽑거든요. 여기는 아예 판모가 되어서 아예 판모를 사다가 그걸 이양기에 넣게 되면 자동으로 싹싹 뽑혀 나와서 모가 꼽히구요. 그 다음에 여기는 비료도 쉽게 치고 가을에 수확도 기계가 돌아가면서 하고 마지막에 남는 볏집도 압착하고 포장하는걸 기계로 하더라구요. 저게 뭐지 참 궁금했는데 훗날에 보니 탈곡하면서 볏집을 딱 묶어서 사료로 쓸 수 있게 압축해서 포장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60,70 먹은 사람도 밭 한두정 다루는 것쯤은 뭐 생각이 없겠드라구요.

오중석: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해마다 가을걷이를 하는 이맘때가 가장 풍요롭고 즐거운 시기였습니다. 지난 시기동안 남한은 급속한 산업화의 여파로 도시에서는 추수(가을걷이)하는 즐거움이 잊혀진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농촌에는 가을걷이의 즐거움과 아름다운 풍경이 남아있습니다. 요즘 북한에서도 이런 가을의 정경이나 추수의 풍요로운 모습이 남아 있는지요.

김현아: 물론 추수는 참 풍요로운 건데 이 민간풍습으로 남아있는 건 없구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그야말로 무엇이든 동원하니까 동원풍경이 남아있는 거죠. 가을걷이가 되면 누구의 방침에 따라 해야 하니까 원래 시골마을은 좀 한적하잖아요. 근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는 거고 그래도 봄철보다는 풍경이 좀 있겠죠. 그렇지만 최근에는 근심이 더 많지 않을까. 왜냐하면 저 농사를 지어서 곳간에 자기 먹을걸 쌓아놔야 하는데 모자라니까 국가에서 다 가져가니까요. 농민들에게 한 해동안 먹을 식량이 있던 없던 간에 국가계획은 다 바쳐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석달 먹을 것 여섯달 먹을 것만 주고서 모자라도 박박 다 긁어가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거든요. 여기서는 이해가 안되죠.

오중석: 도대체 그게 말이 안되죠. 자기 손으로 지은 농산물을 국가에서 왜 가져갑니까.

김현아: 원래 국가밭이니 소유권이 국가에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농산물은 국가 수중에 들어가는 거죠. 그 농민들이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또 실제 아무리 그래도 남한이라면 어떻게 먹을 것도 없이 가져가느냐고 싸움이라도 할 텐데 북한은 그런 거 했다간 반혁명이니까 누구도 엄두를 못내구요. 농민들이 힘이 없으니 속으로만 안타까워할 뿐이죠.

오중석: 네 남한처럼 가을걷이를 하고 동네사람끼리 아니면 농민들끼리 모여 앉아서 막걸리도 마시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겠군요.

김현아: 물론 그렇게 맘대로 나눠 먹다간 걸리죠. 국가 검열에 걸리면 큰일나고요. 가을엔 있으니까 좀 더 먹는 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둘러 앉아서 막걸리 빚어먹다간 큰일나죠. 오중석: 북한에도 뙈기밭 이라고 하던가요. 개인이 밭을 일궈 식량을 자급자족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형태의 개인 농업이 많은가요? 어떤 경로로 이런 경작형태가 생겨난 것인지요.

김현아: 원래 북한에서는 땅이 몽땅 국가소유잖아요. 그러니 개인 땅이 없거든요. 근데 고난의 행군시기에 사람들이 배가고프니까 국가 것이고 뭐 있어요. 가서 아무데나 일군거죠. 일궈서 씨를 뿌려 농사를 지으니까 결국 자기 것 비슷하게 됐으니 관리권이 자기한테 있겠죠. 근데 이것도 최근에 북한에서 너무 통제를 해서 뙈기밭이 대체로 산 경사진 비탈길에 있다보니 자꾸 수해를 입는다 무조건 나무를 심어라 그래서 작년, 올해 이 뙈기밭 때문에 국가 관리기관과 소유자 사이에 마찰이 많았어요. 그래서 상당수가 회수된 걸로 알고 있지만 뙈기밭 에서도 쫒겨나면 굶어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까 악착같이 붙어서 아직 뙈기밭이 유지되고 있죠. 그렇지만 점점 축소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오중석: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역사적으로 보면 해마다 가을걷이 때가 되면 우리민족은 아주 넉넉한 인심으로 서로 돕고 어울리며 살아왔습니다. 이처럼 풍요로운 계절이 왔는데도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북한당국이 하루빨리 농업분야의 개혁만이라도 서둘러 남북이 함께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오늘도 대담은 김현아 선생이 맡아 주셨습니다. 김선생님 고맙습니다.

김현아: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진행에 오중석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한가위 잘 보내시구요. 다음주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