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의 ‘자유왕래 전면개방’ 주장은 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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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김일성 주석 사망 30주기가 다가옵니다. 30년 전 이맘때처럼 한 여름의 열기가 역대 최고라는 언론보도들이 쏟아집니다. 한반도의 한여름 더위는 30년 전이나 마찬가지지만, 남북의 관계 양상은 지금 상전벽해라 할 만합니다.

1990년대 초반은 ‘남북 자유왕래, 전면 개방’의 기치 아래, 남한 통일운동가들의 통일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이는 1990년 5월 24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했던 시정연설에 기인합니다. 김 주석은 ‘조국통일 5개 방침’을 발표하는데 첫째, 한반도에서의 긴장상태 완화 및 평화적 환경의 조성입니다. 둘째로 남북 간 자유왕래와 전면개방, 셋째는 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는 원칙에서 대외관계 발전이며, 넷째로 조국통일을 위한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전민족적 대화의 촉구, 마지막 다섯째 방침은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모든 단체와 조직들이 협력과 연합을 하는 방향으로 ‘전민족적 통일전선’을 형성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북한 체제에 대한 우월감이나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을 ‘조국통일 방침’ 내용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1990년 5월 북한은 바로 이어서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군축제안’을 발표하고, 그해 8월에는 판문점에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를 개최했으며, 이어서 3개월 뒤 남북한 민중과 해외동포의 연대를 위한 실무기구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조직하기 위한 회담까지 열었습니다. 또한 북한은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 환경 조성을 위해 남북한 유엔 공동가입의 방안으로 “하나의 의석을 가지고 한반도를 대표하자”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유엔 무대에서도 북한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나, 최소한 남한과 국제사회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상황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북한 당국의 자신감 넘치는 주장과 조치들입니다.

이는 북한 당국이 자국민을 통제,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며 또한 남한 내 통일운동 세력에게 북한의 목소리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당시 남한의 일부 통일운동 세력은 남한의 보수정권과 미국정부가 북한을 흡수통일 하려는 정책에 맞서서 ‘평화와 군축 운동’을 쟁점화했습니다. 남한 시민단체들은 남북 자유왕래 참여 범위를 노동자, 농민, 학생을 포함시켜 각계각층 즉 민중적 전면 왕래와 접촉을 요구했습니다.

남한사회에 대한 북한의 이념적 영향력이 이러했기에, 당시 남한 정부는 남북한의 자유왕래와 접촉에 오히려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남한 정부는 자유왕래 형식으로 국가대 국가의 교류 형식을 추구했고 민간 접촉과 왕래도 국가가 선별한 소수에게 한정하자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로써 통일방안에 대한 남한 시민사회 내에서 대립과 토론이 뜨겁게 진행됐습니다.

지금은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남북통일의 단꿈을 꾼 듯합니다.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지난 한 주간 남북한 경계의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이 분주하다는 보도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작업 중이던 북한군 수십 명이 남쪽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사건이 벌써 세 차례나 발생했습니다. 북한군은 비무장지대에서 군인 수백 명을 동원해서 지뢰를 매설하고 전술도로를 보강하고, 대전차 방벽도 건설한답니다. 그러던 중 북한군 수십 명이 남쪽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가 남한 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에 바로 북상했답니다. 따라서 한국의 합동참모본부는 단순 실수였을 거라며, “전선지역 일대에 지뢰 작업 중 여러 차례의 지뢰 폭발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도 알렸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들은 “대남 목적보다는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목적으로 파악한다”고 전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 당국은 “남한의 전차 접근로에 설치된 전차 방어벽을 당장 해체하라”고 주장한 적이 많았습니다. 노동신문을 이용해 “군사분계선 남쪽 240여㎞ 구간에, 대결과 분열의 상징이자 낡은 시대의 유물인 콘크리트 장벽이 남아있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시대정신도 바뀐다고 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선대 지도자들이 과거 60년간 주장하던 ‘민족화해와 통일’의 가치마저 단 기간에 삭제하는 것은 북한 당국이 파악하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남한 민중들에 대한 북한의 영향력이 전무한 시대라는 걸, 그리고 그 반대로 남한의 사소한 영향이라도 북한 민중들에게 줄 여파가 엄청난 시대란 걸 북한 당국이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남북한의 영향력이 시간이 지나며 엇갈리게 된 것은 남북한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북한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벌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북한 당국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자행한, 무책임하면서도 의도적인 대규모 인권유린 곧 인류의 존엄성에 큰 상처를 낸 잔혹한 인권유린이 국제사회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북한 당국의 목소리는 남한사회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인권유린은 현대 문명적 가치 그리고 시대정신과 극명하게 대립하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