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여성의 역할을 무한히 높이는 길
2024.11.29
11월 25일은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입니다. 유엔과 국제 인권기구들은 매년 이 날을 기해서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성적, 육체적 폭력 행위는 물론이고, 폭력적 언사와 차별 대우로 벌어지는 심리적 폭력행위 등을 예방하기 위해 인식제고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1월 25일부터 다음 달 10일, 즉 ‘세계인권의 날’까지 16일간 운동 기간을 정하고 ‘여성 대상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연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유엔이 목소리를 높이는 홍보 내용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각국 정부는 여성폭력 가해자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법률을 구축해서 여성 폭력 범죄를 가정 내부 문제라는 이유로 등한시하거나 ‘여자가 잘못했겠지’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관행을 종식시킬 것을 권고합니다. 둘째로는 그러기 위해 각국 정부는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서 국가적 조치를 채택하라고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성 폭력 희생자를 위한 편의봉사를 마련하는 등 여성 인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여성 권리 전담기구를 조직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력이 낙후할수록, 정치적 민주화 진행이 더딜수록, 사회적 계급의식과 관료주의가 심할수록, 사회적 취약계층 및 여성과 아동, 장애인 등 약자들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불이익이 늘어나는 현상이 더 짙게 나타납니다. 그런 차원에서 유엔과 국제 인권 단체들은 북한 여성의 권리에 대해 주목하는데요.
29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노작 ‘가정과 사회 앞에 지닌 어머니의 본분에 대하여’ 발표 1주기를 기념하는 연구 토론회가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여맹원들은 ‘어머니들의 고상하고 아름다운 정신 도덕적 풍모’는 ‘수령의 령도따라 일편단심 충성의 한 길’을 갈 수 있게 만들고, 이것이 사회와 가정에 대한 여성의 책임과 본분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어머니들의 애국 헌신과 도덕적 의무가 자녀들을 공산주의자로 키우는 것이고, 이것이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초석이라는 토론을 진행했다는데요.
과연 이것만이 북한 여성들의 역할이고 본분일까요? 왜 지난 20년 이상 북한의 여성들이 이뤄낸 업적들을 ‘어머니의 역할’에만 한정 지어서 축소해 버리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1990년대 중후반의 그 험악했던 ‘미공급 시기’를 2000년대를 시작하며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두 팔 걷고 장마당으로 떨쳐 나왔던 가두여성들의 경제력 덕분 아니었던가요? 중국식으로 옷을 만들어 팔고, 밤을 새워 옥수수 국수며, 가락지빵이며, 각종 떡을 만들어 팔던 여성들이 아니면, 지금의 북한이 존재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여성들의 장마당 장사로 활발해진 소비시장은 중소 규모의 가내수공업으로 발전해, 당국의 기관 기업소 명의를 얻은 개인 장사나 기업으로 클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돈주들이 성장할 수 있었지요. 북한 당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평양의 과학자거리를 포함해 대규모 국가 건설사업이 가능했던 것이 이 돈주들의 투자 덕분이었고요. 이렇듯 북한 경제성장의 발화점이자 중추적 요인이 바로 가두 여성의 경제활동인데요. 북한 현대 역사의 가장 결정적인 시점에서 여성들이 핵심 역할을 했음에도, 김정은 총비서는 ‘가정과 사회에 지닌 어머니의 본분에 대하여’라는 노작으로 여성의 역할을 가정 안에만 묶어 둡니다. 노작에 대한 연구 토론회라면 마땅히 이 지점이 비판적으로 토론되었어야 했겠지만 북한 사회의 특성상 공개적으로 이런 비판적 토론이 불가능했겠지요.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여성들 중에는 다양한 학술계의 전문가들이 많은데요. 심리학계의 한 여성 탈북민 박사는 북한 여성들의 심리적 압박감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가계를 책임지고 가족을 부양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불평등한 구조 때문에 심각한 차별과 착취가 벌어지고 있기에 북한 여성들이 심리적,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는다고 합니다. 출신 성분이나 당국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척도가 되어 서열이 정해진 종속적 위계 질서가 중요한 사회체제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설명합니다. 즉 사회 질서가 바로 약육강식의 원칙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특징은 사회는 물론 가정에서도 심각한 폭력을 허용하고, 따라서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의 만성적인 심리적 압박감으로 나타나며, 사회적 우울감, 불안감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북한 당국이 그토록 바라는 ‘사회주의 강국 건설’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여성 대상 억압적 분위기를 해소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가두여성들이 과거처럼 가내수공업으로 경공업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책 채택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여성폭력 문제 대응을 위해 여성 권리를 전담하는 비서를 당 중앙에, 그리고 내각에는 여성 권리 전담위원회를 설립하는 정책도 제안합니다. 왜냐면 윁남 (베트남)과 라오스,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국가들도 국가 여성 권리위원회가 있어서 유엔과 협력사업을 진행하는데요. 북한의 여성비서와 기구도 국제적 다자 협력의 틀에서 여성인권 토론에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북한 여성의 경제적 활약상을 자랑할 훌륭한 장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고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여성을 ‘공산주의 어머니 역할’로만 묶어 둔다면 북한의 실질적 경제 강국 건설의 길에 장애가 될 것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