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북한 정권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연한 일치인지 모르지만 2012년이 여러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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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912년 태어난 김일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1942년 출생인 김정일의 나이 70세가 되는 해입니다. 또한, 김정일이 원수로 추대된 지 20주년, 당 총비서로 추대된 지 1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1932년에 만들었다고 선전하는 조선인민군 창건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같은 정치적,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김정일의 건강 이상으로 북한 핵심부에서 후계 체제를 위한 정지작업이 벌어지고 있다는 상황과 결국은 미국과 담판을 통해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북한 정권의 의지가 2012년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2012년은 남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해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현 단계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은 한편으론 핵과 미사일 전력을 최대한 확충하고, 다른 한편으론 미국과 협상을 통해서 핵보유국 지위와 정치적 생존을 보장받겠다는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12년에 문을 열겠다는 '강성대국'의 실체라고 저는 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북한 당국이 지금은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조만간 미국과 대화에 응한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이 지금까지 남한이나 미국과 대화를 하면서 가장 크게 재미를 봤다면 바로 '시간은 김정일의 편이었다'는 점일 겁니다. 남한이나 미국이 모두 선거를 통해 5년 혹은 4년 만에 정권을 교체하는 민주적인 절차는 평생 독재가 보장되는 북한 체제에 비해서 협상 차원에서는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임기가 정해진 쪽에서는 시간의 제약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이 점을 최대한 공략해왔습니다.

지금도 북한 정권은 예전처럼 시간이 자기들 편이라는 타성에 젖어 있겠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 정권이 2012년을 움직일 수 없는 시한으로 못 박아 놓은 만큼 앞으로 시간에 쫓기는 당사자는 김 위원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부시 행정부와 다를 바 없다며 연일 미국을 비난하고 있지만, 미국 백악관의 대량살상무기 담당관은 "우리는 오로지 기다릴 뿐"이라면서 북한이 9개월 안에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예상했습니다. 이미 시간에 쫓기는 쪽은 북한이고, 시간적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쪽은 미국으로 전세가 역전된 셈입니다.

김 위원장은 왜 시한을 정했을까요? 물론 시한 설정의 부담을 잘 아는 북한으로서도 굳이 2012년을 목표 시한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겠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국면 전환에 실패하면 북한체제에 내일은 없다는 사실을 김정일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야흐로 민족의 분단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