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북한


2006.02.26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지난 21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력히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담화의 내용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남한을 교두보로 해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사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략적 유연성으로 한반도 정세가 긴장되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 억지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고, 주한미군은 신속히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저의 논평에서는, 외무성의 담화가 사실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으며, 북한이 전략적 유연성을 핵무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거리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먼저 북한은 전략적 유연성 원칙에 입각한 주한미군의 재배치로 북한에 대한 물리적인 위협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주한미군 병력이 축소되었고, 북한과 마주하면서 군사분계선 근방에 배치되어 있던 미군들도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생전시기인 지난 80년대에 북한은 한반도 군축을 주장하면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남쪽으로 철수하는 방안을 제의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미군으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군사적인 위협을 줄여보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제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북한의 제의는 남한과 미국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지금은 주한미군이 자발적으로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여기에 반대하거나 비판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냉전이 종식되고 난 후 미국이 동북아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서 별안간 북한 핵문제를 터뜨렸다고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이제는 국제원자력기구, 즉 IAEA의 사찰을 통해서 다 드러난 일이지만, 북한은 이미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북한이 IAEA 사찰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개발 여부에 대해서 추정과 심증만 가졌을 뿐,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서 애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초에 발생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정세가 크게 바뀌게 된 것입니다. 다국적군이 걸프전쟁에서 승리하자, 당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사실상 항복하면서 유엔의 사찰을 받고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유엔 전문가들이 이라크 전역에 대한 사찰을 실시한 결과, IAEA의 감시를 받고 있던 이라크가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온 세계가 경악했습니다. IAEA 감시를 받는 이라크도 비밀 핵개발을 했는데, 북한과 같은 나라는 얼마나 핵개발이 진전되었을까 하는 우려가 증폭된 것입니다. 결국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걸프전이 계기가 되어서 핵확산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가 높아졌고, 그 불똥이 한반도로 튀어서 북한 핵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북한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핵 억지력 증강의 구실로 삼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핵무기를 폐기할 의사가 없고, 6자회담에 성실하게 임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6자회담 관련국들이 회담 재개를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때에, 이미 수년 전부터 전세계적으로 진행되어 온 미군의 재배치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문제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도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남북대화의 기본전제입니다. 비록 남북한이 군사적인 대치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남한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한미 동맹이 와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180도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남한과의 관계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남북관계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라는 점을 북한당국은 직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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