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동안 헤어졌다 만난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맺힌 한은 잠시 동안 만난 것으로 풀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오연화(78세)씨의 “우린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라는 말이 이들의 감회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금강산에서 북쪽의 가족들을 잠시라도 만날 수 있었던 가족들은 그래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한에만 북쪽의 이산가족을 만나려는 신청자들만 8월 말 현재 12만 7천 547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청자의 75%는 연령이 70대 이상의 고령자들이고 이들 중 4만 7천 195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번 남측 이산가족들을 이끌고 방북한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얼마 전 한 달에 2천-3천명 정도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은 4천-5천명 수준”이라며 북측에 수시 상봉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북측의 태도는 다릅니다. 26일 북측이 마련한 만찬장에서 북측 단장인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환영사를 하며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만이 이산가족의 앞날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입니다. 장재언 위원장은 또 “이번 상봉은 북에서 특별히 호의를 베푼 것이다. 남에서도 상응하는 호의를 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측 적십자위원회 위원장의 말은 더구나 그의 직분으로 볼 때 맞지도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어디까지나 인도주의와 인류애 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북측도 곧잘 ‘민족끼리’ 와 ‘인도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6.15공동 선언’이니, ‘10.4 선언’ 같은 ‘정치’가 왜 개입되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상응하는 호의’란 말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는 더욱 맞지 않는 말입니다. 다만 북한이 현재 겪고 있는 식량난이라든가 갖가지 어려움을 남쪽에서 잘 알고 있는 만큼 이 사업과 관련 없이 순수한 동포애로 식량 의약품 비료 같은 물품의 인도적 지원을 차츰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의 민간단체에선 지금도 북한의 어린이와 임산부들을 위한 의약품등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2년 만에 재개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행사만큼은 절대로 정치적 이유나 남북관계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북한은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정치와 연관시켜 대남 책략화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이 지금처럼 1,2백 명 단위로 1년에 한두 번 ‘특별 호의’를 베푸는 식의 상봉 행사를 갖도록 한다면 남한의 상봉 신청자들만 북쪽 가족들을 만나는데 40여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북한 당국과 특히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의 수시 정례화를 시급히 서둘러 이들이 돌아가기 전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를 알고 만나보게 해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