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지난 시간에 이어 연속해서 보내드리는 "김부자 우상화 작업" 오늘은 그 가운데서 '초상화'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003년 8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측 응원단이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담긴 환영 현수막이 비를 맞고 있다며 눈물을 흘리며 강하게 항의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앞서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 주러 간 KEDO 즉 한반도에너지기구 관계자가 김일성 부자 사진이 있는 노동신문을 훼손 했다가 혼쭐이 난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두 사건 모두 남한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모시는 일은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북한에서는 법보다 더 무섭다는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의 3조 6항에는 "경애하는 수령의 초상화. 동상. 출판물을 정중히 모시고 철저히 보위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요덕 수용소 출신 탈북자 김영순씨는 북한 당국은 이 계율에 따라 철저히 초상화 모시기 교육을 하고 있다며, 이 계율을 지키지 않아 수용소에 들어온 북한 주민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순: 북한의 고위층들은 그것을 3대 위인상 김정숙 김일성 김정일을 모시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있고 일반적으로 김일성 김정일을 모시는데 주기적으로 여맹이나 직맹등 사회 단체에서 수시로 검열을 하고 집집마다 정성함으로 모시는등 철저히 관리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훼손 시켰거나 그것으로 신문에 난 사진으로 장판을 발랐거나 그러면 문제가 되죠.
초상화 관리를 제대로 못해 북한을 떠난 탈북자도 있습니다. 지난 96년 가족과 함께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김명순씨의 경우는 아버지가 직장에서 초상화 분실 책임자로 몰리게 되자 처벌이 무서워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명순: 아버지 다니시던 직장에서 김일성 초상화가 분실된 적이 있었습니다. 대뜸 초상화를 가져갔냐 보위원들이 와서 따지고 그래서 아버지가 그 후부터 항상 감시 받고 힘든 북한 생활을 했어요.
그렇다면 이처럼 절대적으로 신성시되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는 북한에 과연 몇 개나 있을까요? 각 가정마다 사업장마다 학교마다 기관마다 건물마다 걸려 있으니 다 세어보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초상화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보니 제작에 따르는 비용이나 관리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북한 1호 화가 출신으로 저희 자유아시아 방송에서 '북한 젊은이들에게'을 진행하기도 했던 탈북자 김혁씨에 따르면, 김 부자의 그림에 쓰이는 재료는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다 제작된 초상화들은 '1호 작품 모심 열차'라고 해서 특별 운송 수단을 사용해 운반한다고 합니다. 특히 건물에 걸려 있는 초상화의 경우는 정기적으로 다시 색칠해 줘야 하고 또 밤에도 잘 보이도록 주변에 불을 밝혀야 하는 등 관리 비용도 많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김씨는 90년대 중반 식량난 시기에도 1호 화가들은 매일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는데요, 북한 주민들은 식량, 종이, 옷, 전기, 땔감 등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여기 저기 걸려있는 초상화만큼은 늘 풍족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