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동거녀에 관해 살펴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본처 이외에 여러 명의 첩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성혜림과 고영희는 김정일과 오랫동안 동거해 오며 김정일의 아들을 낳은 여자로 사실상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김정일의 부인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성혜림은 김정일의 첫 사랑으로 한국전쟁 때 남한에서 월북한 가정 출신입니다. 성혜림은 평양 예술 학교를 졸업한 후 19살 때 북한 작가 동맹위원장이었던 이기영의 장남 이평과 결혼합니다. 결혼 생활과 함께 연극영화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영화 “분계선의 마을“을 시작으로 북한 최고의 배우로 성공하게 됩니다.
1960년대 영화 촬영소에 자주 나와서 지도하던 김정일은 이때 성혜림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결국 성혜림은 남편과 이혼하고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김정일과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971년 성혜림은 김정일의 첫째 아들 정남을 낳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유부녀와의 동거’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정남에 대해서까지 철저히 비밀로 했습니다. 당시 성혜림의 존재에 대해 언급했다는 이유로 8년동안 요덕 정치범 수용소 생활을 한 탈북자 김영순씨는 남한에 온 지금까지 성혜림에 대한 인터뷰는 사양한다며 김정일 가계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습니다.
김영순: 저는 고교시절부터 대학까지 성혜림하고 동창이고 같이 공부했고 같은 문예부분에 종사했기 때문에 내막을 아는 거지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4:13 어쨌든 1호 가계에 대해서는 발설하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말라고 돼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야 했던 성혜림은 아들을 빼앗기고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건강이 악화됩니다. 결국 그녀는 1974년부터 러시아 모스크바로 치료를 다니다가 2002년 모스크바에서 63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고영희는 북송된 재일동포 출신으로 아버지가 북한 유도계의 대부인 고태문씨 입니다. 무용수였던 고영희는 1970년대 중반 김정일이 벌이는 비밀파티에서 뛰어난 미모로 김정일의 눈에 든 이후 김정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여자로 알려졌습니다.
고영희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올해 25살 된 정철과 23살 된 정운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는 책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고영희는 김정일이 각지로 이동할 때마다 함께 다녔던 사실상 정부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일은 고영희가 아이들과 유럽이나 일본도 자유롭게 여행하게 해 주는 등 그녀를 매우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자 고영환씨는 북한이 또다시 세습체제에 들어간다면 후계자는 아마 고영희의 두 아들 가운데 한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고영환: 김정철이나 정운에게 후계 구축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아마 고영희를 우상화하는 작업을 안했을 겁니다. 고영희가 사망했다고 해서 크게 변화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고영희는 200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암치료 중 5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워싱턴-이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