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배우가 제일 행복한 직업”
2007.08.14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직업인의 한우물 파기란 쉽지 않습니다. 돈 되는 곳으로의 유혹과 직업적 권태가 항상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쭐하는 건방도 직업인으로서 성공을 가로막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남한에서 국민배우가 된 안성기씨. 그로부터 직업인으로서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봤습니다.
(‘화려한 휴가’ 중 안성기씨의 대사)
남한 국민배우 안성기의 최신작 ‘화려한 휴가’중의 하나입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는 백이면 백 화제작이 됩니다. 그런 그도 처음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낙담의 시간이 있었고 그런 낙담을 뚫고 그는 배우라는 성공의 땅을 일굴 수 있었습니다. 안성기씨의 처음 계획은 베트남어를 배워서 무역업으로 돈을 벌고 싶었지만,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베트남은 한국인에게는 들어갈 수 없는 땅이 돼버렸습니다. 그의 꿈이 날아가 버린 겁니다.
안성기: 심심한데도 가만있어봐, 괜히 “아침 9시부터 자전거를 탄다“ 이러면서 자전거 타고 나갔어요. 그때 수유리 살 땐데, 우이동 저 끝까지 갖다오고. 그리고 일부러 몸도 키운다고 시내 가서 운동도 하고, 재밌는 예술영화를 보려고 프랑스 문화원을 많이 다녔어요. 그리고 영어도 좀 해야 된다고 해서 영어학원에 등록해서 한 일년 반 정도 다니고.
돈벌이 없이 빈둥빈둥 노는 실업자였지만, 노는데도 그는 전략을 갖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바쁜 척 했습니다.
안성기: 저녁에는 무조건 방에 틀어박혀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런데 영화화된 것은 없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제게 두고두고 큰 힘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후배들한테 그래요. ‘시나리오 (영화대본) 한편을 무조건 써봐라“ 말도 안 되는 것이어도... 저녁시간에는 그걸 한 2년간 했지. 그래서 친구들이 전화가 와도 ‘아. 나 지금 바쁘다.“ (웃음) 아, 나 지금 시간 없어. 내가 지금 뭘 써야 되니까’ 하면서 튕기기도 하고.
이때 해본 영화대본 쓰기는 안성기씨에게 카메라의 움직임, 음악, 빛, 대사의 적절성 등 배우로서 지녀야 할 직업적 소양이 늘게 해주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안성기씨는 ‘어떤 역할을 맡든 감칠맛 나게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라는 평을 듣습니다. 이 같은 평에 대해 안성기씨는, 모든 배우에게는 고유한 이미지가 있기 마련인데, 굳이 관객의 기대를 넘어서는 배역을 자청할 필요는 없다는 것 같다면서 겸손해했습니다.
안성기: 선한인물 쪽을 잘 그리고, 악역 쪽을 잘 못그리더라구요. 악역을 해도 분명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잘 씌어진 시나리오를 받은 적도 없고, 또 구태여 “난 악역을 반드시 해보고 싶어”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고. 악역을 하면 사람들이 좀 당황하는 것 같아. 보다가 “재 왜 저러지?” 등등 영화에 몰입이 안 되고, 자꾸 낯설어하고...
안성기씨는 다섯 살에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네. 바로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영화출연만 있었지 그 흔한 텔레비전 드라마는 없습니다. 안성기씨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많이 하면 할수록 돈을 버는 상품 광고영화에도 고작 두 편 밖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그에게 들어보면 한 분야에서 대가가 갖는 여유의 깊이와 폭, 그 다가오는 무게와 크기에 눌리게 됩니다. 안성기씨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안성기: 1980년도의 단막극이 하나 있었는데, 범인으로 하루 나와라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경험삼아 한 번 해보자, 했더니, 안 맞더라구요. 하루 리허설가고, 하루 야외녹화하고, 하루 스튜디오에서 끝내더군요. 이틀 동안해서 50분 만들어내는데, 영화로는 50분 만들려면 한두 달 걸리거든요. 영화는 굉장히 공이 많이 들어가고 많은 생각을 하고, 완성도를 위해서 매진하고 노력하고 그런 게 있는데, 여기는 구조적으로 그렇게 안 돼요. 즉흥적이고, 순발력으로 해야 되고, 안 맞더라구요. 그런 게.
안성기씨는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자신에게 삶 자체라고 말합니다. 다른 건 해본 일이 없어서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영화배우 안성기. 좋아하는 일을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건강만 허락되면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늘도 희열을 느낍니다.
안성기: 배우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늘 새로운 세계거든요. 만나는 인물도 새롭고. 작업을 하는 사람도 전부 헤쳐 모여거든요. 영화 쪽은 전부 확 바뀌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로케이션 장소, 뭐 어디 해외도 갈수 있고, 국내 지방도 갈수 있는 등 안 가보는 데가 없고. 그러기 때문에, 늘 새롭고, 늘 기대되고, 그 맛이 다른 어떤 일에서는 그 맛을 찾기 어렵다고...
RFA의 인터뷰가 예상했던 시간을 초과했지만, 웃음과 청취자에 대한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안성기씨는 이달 말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마이 뉴 파트너’의 형사역을 연습하러 그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영화현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가 자리를 일어나면서 한 인사말 들으며 이 시간 마칩니다.
서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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