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수일 chuns@rfa.org
남한의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 국어대사전에 따르면 50만 어휘중 8% 정도가 서구 외래어로 올라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젊은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방송이나 신문, 인터넷에는 그 보다 서,너배 더 많은 외래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중국의 조선족이나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정착에 가장 큰 어려움중의 하나로 바로 이 외래어를 꼽고 있습니다. 근래 국립국어원이 펼치고 있는 국어순화 운동과 일반인들의 반응을 전수일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방송) "1994년 청춘스타(star)가 총 출동했던 화제의 드라마(drama) 느낌! 패션코드(fashion code)는 자유, 겉으로 꺼내입는 넉넉한 셔츠(shirts), 모자를 살짝 걸어주는 센스(sense), 자유를 갈망하는 패션(fashion)의 완성 스포츠 샌들 (sports sandal)..."
지난주 한국의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나오는 대사입니다. 방송은 물론 신문, 잡지, 간판에서도 이처럼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는 것이 남한사회의 현실입니다. 한국의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같은 외래어 남용이 신,구세대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남북한간 언어 이질화의 주된 요소가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3년전부터 외래어의 국어순화운동, 즉 우리말로 다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노력의 첫 결실로 10월 초 한글날 561돌을 맞아, 일상 언론과 생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는 외래어 150여개를 적절한 우리말로 다듬어 놓은 것들을 모은 책 ‘외래어 이렇게 다듬어쓰자’가 나왔습니다.
박용찬: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만을 위한 것이라면 사실 영어로 통용해도 상관이 없죠. 그렇지만 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언어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것이고 우리말이기 때문에 한 번 더 돌아보고 우리말을 어떻게 갈고 닦는 것이 우리말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많은 사람들이 다시 새겨봤으면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국어순화와 외래어표기법을 담당하고 있고 우리말 다듬기 자료집을 펴낸 박용찬 학예연구관입니다. 외래어의 우리말 다듬기 책에 수록된 말들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 만들어 집니다.
국어원에서 우리말로 대신할 외래어를 선정해 ‘모두가 함께하는 우릴말 다듬기‘라는 웹사이트 (www.malteo.net) 에서 제시하면 일반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적절한 우리말 대체어를 제안합니다. 보통 4,5백 개 들어오는 제안 중에 가장 적절하다고 보이는 다섯 개정도를 선정해 인터넷 투표를 해서 최종 대체어를 뽑게 됩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뽑힌 다듬어진 우리말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습니다. 우선 선정된 말이 한자어일 경우 이를 외래어로 볼 것이냐 우리말로 볼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한 가지 예로 안아주거나 손잡거나 입맞춤 등의 살이 맞닿는 ‘스킨십’ (skinship)이란 외래어는 ‘피부교감’이란 말이 다듬은 말로 선정됐습니다.
(기자) 피부교감이라고 고칠 경우 피부나 교감 모두 한자어인데 이를 우리말로 다듬었다고 할 수 있냐는 반론이 있다.
박용찬: 순 우리말로 다듬었을 때 많은 분들이 외국어 이상으로 어려워한다. 일상적인 우리말 고유어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한자어도 우리말의 자산으로 봐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국어원과 제 입장이다.
또 다른 논란은 방금 박용찬 연구관이 지적한 문제입니다. 순 우리말로 외래어를 다듬었을 때 그 말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경우입니다.
(기자) 또 한가지는 얼마만큼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제안자들의 의견이 다 다르다. 예를 들어 퀵 서비스 quick service 란 말이 있는데 여기서 어떤 뜻으로 쓰이나?
박용찬: 오토바이나 기동성이 있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한두시간만에 집앞까지 배달해 주는 것을 퀵 서비스라고 하고, 이를 늘찬배달로 다듬었다.
이 늘찬배달이란 말을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물어봤습니다. 한 식당에 온 중년 여성입니다.
모르겠는데요. 배달민족 같은 것도 아니고.
대학생도 모르기는 마찬가집니다.
언제나 배달할 수 있다는 건가요?
또 우리말 다듬기 웹사이트에 의견을 제시한 한 사람은 ‘늘차다’란 단어가 있긴 있냐고 묻습니다. 사전에 ‘늘차다’는 ‘능란하고 재빠르다’란 뜻으로 풀이돼 있습니다. 남한 입국 5년째 되는 탈북 언론인 김대성씨에게 물어봤습니다.
김대성: 잘 모르겠습니다.
북한에서도 한자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대체하는 경우 그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면서, 한 예로 심장을 염통으로 바꿔쓰는 경우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합니다.
김대성: 염통이란 말은 의학용어로 사용했을 때는 별 무리가 없는데 ‘평양은 조선의 심장이다’라는 표현을 자주쓰는데 이것을 ‘평양은 조선의 염통이다’라고 바꾸면 되게 웃기는 말이 되니까 북한에서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이 있다.
우리말 다듬기의 또 다른 논란은 다듬은 말이 외래어 본뜻 여러 가지중에 한가지만 나타낼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character)라는 영어 외래어는 ‘특징물’이란 말로 다듬어 쓰기로 결정했는데, ‘특징물’이란 말은 소설 만화 극 따위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주인공을 본떠서 만든 ‘상품‘을 가리킬때는 적절하지만 영어에서는 등장인물이나 주인공 자체도 캐릭터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다듬은 말이 한정된 의미로만 사용될수 있다는 점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말 다듬기’보다 더 본질적인 의문은 ‘왜’ 남한사회에서 외래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가입니다. 물론 20세기 들어서 미국이 강대국이 되면서 영어의 위세는 더욱 커졌고 또 현대에 대부분의 전문용어와 학술용어가 영어라는 점에서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 외래어 사용의 큰 이유가 됐습니다. 하지만 옛날에 한자를 쓰면 유식해보였던 것처럼 근래에는 영어를 쓰면 남보다 낫다는 일반인들의 인식도 한 몫을 한다고 박용찬 연구관은 풀이합니다.
박용찬: 그리고 고유어나 한자어로 쓰면 왠지 지식이 없어보기고 하찮아 보이는 반면에 영어를 쓰면 내가 좀 지식이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한다는 거죠.
그리고 외래어나 신조어를 가장 잘 수용하는 세대가 젊기 때문인것도 그 한 이유라고 합니다.
박용찬: 새로운 언어에 대한 관심은 젊은 세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나이든 세대는 새로운 언어와 지식을 습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이 한국어화 되고 있는 외래어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외래어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한 여자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설명입니다.
쓰기 편하니까. 입에 배어서.
한편으로는 외래어도 우리나라 문화가 아닌가 생각해서. 그렇게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진 않는다. 고치면 좋은 것이긴 한데,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박용찬 연구관은 방송이나 신문같은 언론이 젊은 수용자들의 그 같은 언어 취향에 부응하고 있는 것도 외래어 범람을 막기 힘든 이유로 지적합니다. KBS 라디오 제작본부 윤남중 프로듀서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윤남중: 물론 좋은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하면 더욱 좋겠죠. 그런데 이미 많은 외래어들이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해서 많은 청취자나 시청자들은 순수한 우리말보다도 외래어에 더 익숙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우리 청취자나 시청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 그것이 외래어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됐다.
지난 3년간 우리말 다듬기로 소개된 말들이 비록 극소수이긴 해도 비교적 성공한 경우도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답변’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던 외래어 ‘리플’reply 이 이제는 ‘댓글’로, 응원때나 격려의 말로 쓰이는 ‘파이팅’fighting 은 ‘아자’로 사용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범람하는 외래어를 인위적으로 순화하려는 노력은 마치 물살이 쎈 강물을 역류해 오르려는 힘겨운 헤엄치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탈북 언론인 김대성씨입니다.
김대성: 전반적으로 한국의 분위기나 추세를 보면 앞으로도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될 것 같다. 점점 더 영어 외래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더 높아갈 것으로 생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