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한의사, 남한 성공기

서울-장명화 jangm@rfa.org

북한에서 하던 직업을 남한에서 그대로 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동의사를 한 석영환씨는 그러나 남한에서도 한의사로 성공했습니다. 그의 성공적인 남한 정착기는 점점 늘어가는 탈북자 사회에 교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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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한의사로 5년째 일하고 있는 동의사 출신 탈북자 석영환씨 - RFA PHOTO/장명화

‘백년 한의원’은 서울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았습니다. 오전 9시 반이지만, 10명이 벌써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원장은 북한에서 온 한의삽니다. 그는 남북한 한의사 면허를 소지한 첫 한의삽니다. 진료하는 환자만 하루 평균 100명이라, 정신이 없습니다.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터뷰하기조차 민망합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 대화가 중단됐습니다.

석영환: 이북은 아무래도 먹고 사는데 급하다보니까, 아플 때 치료하는 위주지만, 남한은 아픈 사람도 오지만,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기위해서 예방차원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남쪽에서 한의사로 일한지 올해로 5년째. 평양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의사, 북한말로는 동의사로 일하다가, 북한군 88호 병원의 진료부장으로 일하던 1998년, 강원도 철원군 휴전선을 넘어 귀순했습니다.

석영환: 북한은 의사들 자체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자기 기술적으로나 상당히 모든 게 다 얽매여있어요.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유롭게 의술을 펼친다는 꿈을 가졌던 석영환씨. 북한 한의사 자격증을 인정받지 못해, 남측 자격증을 따는 데만 3년을 보냈습니다. 석영환씨는 남쪽에서는 마치 북한의 한의학을 뒤떨어지는 것으로 봐서 북측 자격증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남한이나 북한이나 한의학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항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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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환자에게 침놓고 있는 모습 - RFA PHOTO/장명화

석영환: 사람들이 소위 이북의 의술은 기술이 낙후하고, 사회주의여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저희병원이 그렇다면, 이 서울한복판에서 일어서긴 커녕 밥벌이도 못해야하는데 환자분들 많이 오시잖아요? 그걸 뭐로 증명할 거예요? 저는 여기와서 공부한 것 없어요. 시험만 봤지.

환자들도 석영환씨의 진료와 처방에 만족해합니다.

환자1: 특이한 경력을 갖고 계시고, 남북에서 다 많은 연구를 하셔서, 믿음을 갖고 오니까 좋은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어디가 아프신가요?) 허리를 조금 삐끗해서 왔어요. 자주 옵니다.

환자2: 우리 딸이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어디 가서 침을 받으면 낫는다고 해서 물어보던 중에 우리 스포츠 센터 분들이 여기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병원도 설비가 잘 돼있고, 일단 선생님이 믿음이가고, 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들을 알려주면서 하니까요. 우리 딸은 두세 번 받고 몸이 많이 풀렸어요...

그러나 남쪽에선 단순히 의술만이 좋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을 탈북 동의사 석영환씨도 동의하고, 또 다른 북한 출신 한의사나 직업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고 합니다. 즉 남쪽에서는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이 잘 평가하도록 자기 자신을 환경에 적응하고, 또 환경을 스스로 개발해 만들어 놓으려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석영환: 누구나 이북 사람들이 다 오면, 자기가 생각했던 이상과 목표, 생활조건이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노력하면 되는데, 그러니까 그만큼 사회현실에 대한 적응력이라던가, 더 나아가서는 적극적인 노력들이 필요해요. 아예 순수하게 노가다만 하고도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뭐. 노력을 조금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대신 보람도 있어요. (기자: 많이 버시나요?) 어쨌든 세금도 많이 내고 있으니까요. (웃음)

남쪽에서 석영환씨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요통, 당뇨병,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아서 찾아오는 질병입니다. 남쪽 사람들의 이런 질병에 비하면, 못 먹고 항상 움직여야 하는 북한사람들의 질병은 전혀 남쪽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석영환씨는 사람의 신체는 다 똑같은 것이라서 무엇을 먹느냐 보다는, 자기 몸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 것에 더 신경써야한다고 조언합니다.

석영환: 사람이 건강하고 장수하려면 다른 것 없어요. 핏줄이 건강해야되요. 혈관이 유연하고 늙지 말아야되요. 이런 것은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항상 피를 맑게 해야 되니까, 나이든 사람일수록 예방차원에서 피를 맑게 하는 부분에 대해서 약을 먹는다던가, 젊은 사람들 같은 경우는 피곤하거나 하지 말고, 운동에 충실해야되구요. 식사를 항상 절제된 식사를 하시는 게 좋아요.

지금도 남한생활에 행복에 겨워합니다. 오히려 북한 출신 한의사라는 것이 환자들에게 더 큰 믿음과 사랑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도 자기 때문에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겪은 북한당국의 폭력에 의한 강요된 비극을 생각하면, 지금의 행복이 참 거추장스럽고 오히려 죄를 진 짐처럼 그의 가슴을 짓누릅니다.

석영환: 내가 알고 있기로는 내 누이동생이 결혼을 했는데, 내가 여기 온 다음다음날인가, 우리 누이동생한테 찾아가서요, 국가보위부, 여기로 말하면, 안기부 사람들이 와서 "이제부터 두 사람은 이혼입니다." 집사람 데려가니까, 남편이 왜 데려 가냐고, 하니까, 이제부터 이 사람하고 이혼이요. 이게 북한법이예요. 그런 후에 온데간데 없어져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