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최고의 외환딜러를 향한 전 북한 내과의사의 꿈


200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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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명화 jangm@rfa.org

북한에서 내과의사로 편안한 삶을 살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뒤 의사로 재개하기 보다는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택한 탈북자가 있습니다. 남한 내 최고의 외환중개인이 될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주인공, 최승철씨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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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최고의 외환딜러를 꿈꾸는 전 북한 내과의사 최승철씨-RFA PHOTO/장명화

(최승철씨가 빠르게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

일 달러 당 918원. 며칠째 떨어지던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오늘은 모처럼 올랐습니다. 환율이 수시로 바뀜에 따라 손놀림도 덩달아 바빠집니다. 행여 환율변동을 놓칠까봐 컴퓨터에서 눈을 떼기도 겁납니다.

( 기자 : 언제가 제일 바쁘신가요?) 저녁 9시부터 새벽 2시까지요. 시장에서 빅뉴스들이 나올 때, 주요지표들이 발표되거나, 연방이사회 정책발표라던지, 금리결정이라든지, 이럴 때 정말 잘하면 수익 올리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탈북자 최승철씨가 외환딜러의 매력에 이끌린 지는 올해로 5년째입니다. 외환딜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달러 등을 가장 싼 시점에 사들여서 가장 비쌀 때 팔아, 그 차액을 가장 많이 남기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북한출신 외환딜러 최세웅씨에게 외환매매를 배웠던 게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최승철) 그분 바짓가랑이 붙잡고 따라다녔어요. 최고더라구요. 내가 봤을 때는. 비전도 있어보였구요. 그런데 초보투자자들이 솔직히 다 경험을 겪는 것이지만, 저도 돈을 엄청 잃었어요. 거의 전 재산을 잃다시피 했어요.

그 뒤 돈이 될 만하다 싶은 것은 다해봤습니다. 노래방, 탈북자 신문, 여행사, 전화카드 판매 등등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지난달에는 외환중개회사를 차렸습니다.

최승철:외환투자는 누가 벌면 누가 깨지고 하는 세상인데, 어차피 한국국민들이 돈벌면 좋지 않겠어요? 저는 웬만하면 한국투자자들이 손해를 안보고 특히 우리를 거쳐서 가는 투자자들에게는 투자효과까지 책임을 져주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들이 투자에 성공할 수 있도록 관심을 두고 연구개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내과의사로 잘 나가던 길을 버린 최승철씨. 자유를 찾아 온 남한에서 어려웠던 시절이 하나 둘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최승철:가장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야, 너 북한에서 (멀쩡한 의사직 버리고) 왜 왔냐“는 말을 들을 때와 북한에서 온 사람은 모두 무지하다는 일반국민들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조금 불쾌하죠.

최승철씨는 남한생활에 크게 만족합니다. 지난 2003년에는 북한에서 동갑내기 약혼녀까지 온갖 고생 끝에 남한에 와서 아들을 낳아 행복하기 그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 시장경제 사회가 체질에 맞습니다.

최승철:제가 좀 자유주의 분자였어요. 조직에 구속되고 이런 것 싫어했어요. 대학 때 생활총화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았어요. 남한테 구속되는 것 무척 싫어했어요. 억압된 사회가 나한테 안 맞더라구요. 대학교때 그런 충동을 많이 느꼈어요. 어머니나 누나들은 마음고생 많이 했어요. 막말로 도망못치게 하려고 굉장히 마음고생 많이 했어요. 부모님한테 떠나오면서 편지 보내 “어머니가 살 나이하고 제가 살아야할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나는 이 사회에서 한 평생 구속당하면서 살기 싫습니다. 나는 내 삶을 찾아서 가야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최승철씨가 요즘 화젯거리로 등장한 일이 터졌습니다. 만 달러가 들어와야 할 자기 통장에 천만 달러가 들어온 겁니다. 은행원의 실수로 자기가 받을 돈보다 천배가 많은 액수가 들어온 겁니다.

최승철: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아니, 분명 만 불만 받아야 하는데, 처음엔 컴퓨터가 잘못 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꾸 봐도 천만 불이더라고요. 그래도 돈을 딱 보는 순간...천만 불이면 굉장하지 않습니까? 일반인들이 평생 먹고 남을 돈이잖아요. 평생 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이것 갖고 튀어야하나... ( 기자 : 어떻게 돌려줄 생각을 했나요?) 최승철: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은행직원이 전화했어요. 은행직원 말이 아주 처량하더라고요. 나는 은행직원이 잘 사는 줄 알았었는데, 이런 실수를 하면, 책임이 은행직원에게 . 그리고 아이들 두 명 키우는데, 자기가 잘리면 끝이라면서 봐달라고 사정사정 하시더라구요. 듣고 보니 안됐더라고요.

천만 달러를 돌려주고 그가 받은 사례는 화분 하나였습니다. 인생의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을 탈북해 불과 6년 동안에 한꺼번에 겪으면서 이제 최승철씨도 남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습니다.

최승철: 제가 한국은행에 가서 신고해봤는데 제가 개인으로 외환거래를 신고한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기적이죠. ( 기자 :틈새시장을 개발한 거네요?) 어차피 저도 횟수로 5년 투자 경험이 잇는데, 이 바닥에서는 중역 이상에 들어가거든요. 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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