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대학풍경: 대학생과 자취생활


2006.11.29

사랑하는 북한대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명철입니다.입동이 지난 지 어느덧 3주가 넘었는데 아직도 따뜻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고 있군요.이번 겨울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따뜻한 겨울이 된다고 하니 그나마 추운 북쪽에서 땔감이 없어 고생하는 북한의 형제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요즘 북한 대학생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아마 가을 농촌지원으로 밀린 학과학습에 열정을 쏟아 다가오는 학기말 시험을 잘 치르려고 밤새워 공부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저도 북한에서 대학공부를 할 때 11월이 가장 공부하기 좋은 때더군요. 난방이 잘 안 되는 기숙사에서 추위를 참아가면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책장을 넘길 때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이 항상 떠올랐지요.

그때 저는 지방에서 올라갔기 때문에 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였는데 몇몇 조건이 좋은 친구들은 대학주변이나 평양에 있는 친척집에서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나도 우리 집이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딱딱한 규율생활에 시달려야 하는 기숙사보다 자취방을 하나 얻었으면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여기 남한에 와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많은 학생들이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학기숙사도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학생들은 자율적인 생활과 편의를 위해 자취방을 더 선호하더군요.

그래서 이 시간에는 남한 대학생들의 자취생활의 내면에 대하여 잠깐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에서는 대학생들이 자취하는 것을 원칙적으로는 금지하고 있지요. 대학도 군대처럼 철저한 통제와 규율 속에서 집단주의 의식을 키워주는 조직생활의 단련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 남한의 대학생들은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와 편리함을 기초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갑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20~30%정도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나머지는 대체로 자취생활을 하게 됩니다. 물론 대학주변의 집값이 매우 비싸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자취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부모의 힘을 빌리던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하급 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다른 시간제 일을 해서 집세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대학주변에는 이러한 학생들을 위하여 자기 집의 방을 세를 놓거나 아예 건물 자체를 하숙집으로 만들어 대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집주인들이 많습니다.

입학 철이나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때가 되면 곳곳에 집을 세놓는다는 광고가 나붙고 대학생들 사이에도 하숙집에 관한 정보들이 분주히 오갑니다. 따뜻한 양지쪽에 창문이 있고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집은 당연히 비싼 값에 거래되고 좀 어둡거나 방이 좁으면 좀 싼 값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특히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씨가 고와서 매일 따끈한 밥과 반찬도 챙겨주시고 간간이 세탁물도 해결해 주시면 그런 집은 어느 새 입 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줄을 서서 그곳에 방을 잡으려고 난리들입니다.

제 친구도 이번 학기에 자취방을 잡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였는데 집을 찾아가보니 침대 하나에 조그마한 책상이 하나 있고 한 사람이 더 누울만한 공간이 있는 매우 작은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런 불편한 곳에서 사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집세도 싸고 또 주인아줌마가 음식솜씨도 좋고 청소나 세탁 같은 것을 잘 해주셔서 만족해서 산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제가 사는 기숙사보다는 훨씬 환경이나 시설이 나빠 보였는데 본인이 만족한다니 더 할 말이 없었지요. 또한 자취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제일 큰 고민은 아침에 끼니를 제대로 챙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20대 초반에 부모가 해주는 밥을 먹다가 대학에 온 학생들이 자기 손으로 밥을 해먹기는 너무나 어려운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세도 훨씬 싸고 시설도 좋고 아침, 점심, 저녁을 꼭꼭 챙겨주는 대학 기숙사가 좋은데 왜 이렇게 자취생활을 좋아하는지 저는 처음에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남한 학생들의 생활을 가만히 살펴보니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생활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더군요.

여기 남한의 대학기숙사는 대체로 2인1실이라 한 방에 두 명씩 사는데 북한에서 공부할 때 저희는 한 방에 5명이 살았으며 간혹 입학철에 새내기가 갑자기 들어오면 한방에 10명씩 생활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한방에서 비좁게 살다 보니 서로 부대끼면서 개인의 사생활 보호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지요. 그 과정에 서로 마찰도 생기고 얼굴을 붉히는 일들도 있었지만 어려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집단주의 정신을 많이 배웠지요.

하지만 여기 남한에서는 2명이 같이 살아도 자신의 사생활을 서로에게 보여주길 꺼리고 남한테 불편을 줄세라 조심해서 행동합니다. 그리고 역시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보호에는 혼자 자취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여기고 어떻게 하나 독립하려고 하죠.

물론 개인의 자유나 권리도 중요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북한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 서로 돕고 어려운 일도 의논하면서 한 방에서 학창시절의 보람을 나누던 친구들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그러한 집단생활이 싫어 자취를 꿈꾸던 때가 있었지만 여기 남한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면서는 또 서로가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집단생활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언제면 우리 남북이 하나가 되어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단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까요? 하루 빨리 그날이 와서 꿈에도 잊은 적 없는 북녘의 친구들을 얼싸 안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이 이만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