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대학생활과 대학 문화를 비교해보는 새 탈북자 코너 ‘남북 대학생활 비교’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는 북한에서 대학생활을 하다 남한에 망명한 뒤 지금은 연세대학에 재학중인 조명일군입니다. 오늘은 남한 대학생들에게서 시험과 함께 가장 중요한 레포트와 조모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조명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아마도 북한의 대부분 대학생들은 지금쯤 농촌 지원 사업에 동원되어 땀을 흘리고 있겠지요? 저도 북한의 대학에서 공부할 때 봄과 가을에 농촌동원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요즘 날씨가 낮에는 엄청 덥고 아침 저녁엔 쌀쌀해서 감기 조심해야 되겠더군요.
지금 남한의 대학들에서는 지난주까지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즐거운 축제일정을 끝냈습니다. 아쉬움을 멀리하고 다시 본연의 임무인 학업에 열중하는 대학생들에게 축제의 여운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이제 대학생들은 학기말이 다가옴에 따라 기말시험과 레포트의 압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남한의 대학에서는 대부분 6월말 이전에 봄학기가 끝나기 때문에 6월 초부터는 학기말 시험이 시작됩니다. 학기말 시험전인 5월 말까지는 기말 레포트 작성 때문에 몹시 바쁩니다. 남한에서 레포트라고 하는 것은 우리말로 보고서나 과제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건 북한에는 없는 학습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남한 대학생들에게서 시험과 함께 가장 중요한 레포트와 조모임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 합니다.
우선 레포트에 대해서 이야기 해드릴까 합니다. 레포트는 개인별 레포트와 조별 레포트가 있습니다. 개인 레포트는 말 자체로 나 혼자서 완성해서 제출하는 과제물이고 조별 혹은 그룹 레포트는 교수님이 지정해준 그룹이나 아니면 자기들끼리 설정한 몇 명의 학생들이 그룹을 만들어 과제물을 수행하고 발표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업의 특성에 따라 혹은 교수님의 재량에 따라 레포트의 수와 양, 그리고 개인 또는 조별 레포트의 종류가 결정됩니다. 드물게는 레포트가 없는 수업도 있습니다.
대체로 레포트는 수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레포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재 말고도 많은 참고문헌들을 읽어야 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야 하며 거기에서 도출되는 이슈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종합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과 대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은 대학생들에게 피동적으로 수업을 듣기만 하는 입장보다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가하는 의욕을 북돋아 주기도 하며 수업교재뿐 아니라 다양한 책을 통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도 합니다.
조별 레포트 수행 과정은 개인 레포트보다 좀 더 많은 의의를 가져다줍니다. 우선 나 혼자서 다할 수 있는 개인 레포트와 달리 학급의 친구들과 각각의 생각을 교환하고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 하는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또한 목표달성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 책임감을 키워주고 나와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통합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줍니다.
아마도 제가 한국의 대학에 입학해서 배운 것 중에 가장 큰 소득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바로 이러한 그룹 레포트 수행과정에서 얻은 열린 마음이라고 주저없이 말합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수많은 생각과 의견이 존재하며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수많이 다른 견해와 입장이 존재하며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며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닫힌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던 저에게 이것은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어느 한 과목의 수업시간에 그룹 레포트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그룹 레포트 문화라는 것이 생소했던 저에게는 다른 남한의 학생들과 처음으로 이런 모임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교양과목의 한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조별 과제물의 제목과 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고 5~6명 정도로 전공과 학번이 균형 게 혼합될 있게 그룹을 짜주셨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내가 속한 그룹의 학생들과 잠시 모여서 이름과 연락처를 공유하고 다음 모임의 시간과 장소를 정했습니다. 모임은 대체로 도서관이나 강의실들에 있는 세미나실에서 진행되곤 했습니다.
약속했던 날자가 되고 우리는 지정된 시간에 세미나실에 모였습니다. 세미나실이라고 하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다 모이고 나서 서로 각자의 소개를 합니다. 제 차례가 되고 저는 학번과 전공을 소개했습니다. 서로 한 학기동안 잘해보자는 결의도 다지고 토론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조모임의 책임자 역할을 하게 될 조장이 선정됩니다.
일반적으로는 학교 경험이 많은 고학번의 선배가 조장으로 선출됩니다. 조장은 이 모임이 끝날 때 까지 해당 과제물의 분담수행과 종합, 그리고 모임의 시간과 장소 등 모임이 원할 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조장의 결정과 함께 과제의 주제와 분담이 결정됩니다.
대체로 교수님이 제시해준 주제나 아니면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른 주제가 결정됩니다. 주제가 결정되면 어떤 방식으로 이 과제물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들이 제시됩니다. 우선 각자가 원하는 방법들이 제시되고 이를 합의를 통해 통일합니다.
다음으로 레포트의 구성과 각 구성에서 조의 각 구성원들이 분담해서 수행해야 할 과제물을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관한 주제로 레포트를 수행해야 한다면 우선 중국과 미국의 관계의 역사적 분석과 현재 중미관계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문제는 무엇인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 여기서 우리의 대처는 어떠해야 하는가 등의 구조로 대체적인 윤곽을 설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각 부분을 조모임의 인원수에 따라 균등하게 배분합니다. 배분이 끝나면 분담부분에 대한 자료수집과 분석 등의 완성기한을 정하고 다음 모임의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에 조모임 방을 개설하고 온라인상의 모임도 가질 수 있습니다.
북한 친구들은 온라인 모임이라고 하면 생소할 수도 있겠죠. 쉽게 설명하면 어떤 장소에 모이지 않고도 각자 가지고 있는 컴퓨터를 통해서 집이나 거처지 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로 서로 인터넷 대화를 하는 겁니다. 이것은 바쁜 시간 때문에 모이는 것이 불편할 때 아주 유용합니다. 온라인의 조모임 방에 각자의 의견이나 자료들을 올리고 글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의견조율과 합의를 토론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대부분은 교실이나 세미나실 등 모임의 장소에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이러한 토론 과정에서 같은 주제이지만 각자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가장 적합한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학생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나만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조모임에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정답을 찾는 과정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 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모임을 통해서 서로 친해지고 앞으로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주 모이고 토론하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은 목적을 향해 함께 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저도 역시 3~4년 전에 한 수업에서 함께 했던 조모임 친구들과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밥도 같이 먹고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대학기간에 조모임을 하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기한 내에 수행해야하는 책임감과 함께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것을 얻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면 오랫동안 갈등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관계에도 봄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북한대학생 친구 여러분도 앞으로 이러한 남한의 모임과 토론 문화를 통해서 나만 옳고 나와 다른 생각은 틀린다는 이분법보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훌륭하고 옳은 정답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는 이 좋은 계절 부디 몸 건강하시고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