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편지: 함께 군생활을 함께 한 친구에게


2006.09.06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탈북자의 편지’ 순서입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함께 군생활을 함께 한 황해도의 최경남씨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지금 살아 있을지 모를 경남아, 잘 있는지? 1989년 여름에 군단 보위소대가 너를 체포해 갈 때 고개를 푹 숙이고 호송되던 너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그 후로는 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오늘 너에게 사죄의 글이라도 보내고 싶구나.

넌. 보초근무 중에 총을 보초막에 걸어 놓고는 20리 밖에 가서 영화구경을 하고 오거나 근무용 총탄으로 산에 가서 꿩사냥을 하여 상관들에게 반 주검이 되도록 맞기도 했었지. 네가 한 달 동안 탈영했다가 나에게 잡혀 중대 뒷산 갱도에서 집단 구타당할 때 넌 나에게 < 내가 왜 군대복무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 넌 아는가?>고 했지.

내가 < 당과 조국, 수령님을 위해 목숨 바치려고 군복무를 한다!>고 하자, 넌 < 그래? 난 그런 말조차도 이해 못하는 무식한이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너를 낙오자라고 비판했던 나를 용서해라. 만약 지금 네가 살아 있다면 그때 너를 참혹하게 폭행한 나를 용서하길 바란다. 우리 모두는 제정신을 빼앗기고 살던 시절이라 그때 너의 수준을 이해 할 수 없었어. 넌 양심을 지키려는 강한 사나이로 사람들에게 기억됐을거야.

너는 < 10년 복무가 너무 비참하다. 5년 정도만 하면 집에 보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결국은 보위부에 체포됐지. 너를 대대전원앞에 세워놓고 혁명의 낙오자라고 동지심판을 하고 체포해 갈 때 넌 군중을 향해 얼굴을 들고 웃어보였지. 그래서 호송하던 보위소대원들이 군화발로 머리를 짓눌러 머리를 두 무릎사이에 들어가도록 만들던 그때 일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아! 네가 탈영했을 때 왜 나는 사력을 다해 너를 체포했던가! 그때 너를 잡지 않았더라면 네가 그런 변을 않당할수도 있었을걸... 부중대장의 권총이 도난되었던 날, 난 무작정 너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욕보인 그때의 나를 지금 가슴치며 반성하고 있다. 며칠 밤 중대 창고에 묶어놓고 너를 때리던 나의 그때 모습이 너의 눈에 얼마나 가련하게 보였을가! 생각해 보면 난 바보였어. 넌 적어도 정의로운 사람이었어.

너와 같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실은 귀중한 존재들이란 걸 뒤늦게야 깨달았어. 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네가 체포되어 간 후로 5년 후 1994년 봄에 내가 부대를 방문했는데 4대대가 주변 인민들의 재산을 너무 약탈하여 < 마적부대>라고 소문이 나 결국 해산되어 없어지고 어느 대대정치지도원은 부하 소대장이 출장간 틈에 그의 집에 도적질 하러 들어갔다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들키는 희대의 비극이 생기고 내가 있던 중대의 돼지돈사에선 자고 깨나보니 돼지의 귀와 옆구리살점을 베어갔고 주변 사민부락에선 가축과 식량도적질 오는 군인들을 막기 위해 마을청년들이 몽둥이와 낫을 들고 밤을 새며 경비를 선다고 하더군.

사관장들의 말에 의하면 이제는 조선인민군대에 군복5표입을 사람이 없다. 4표정도도 드물다. 그렇게 드물던 1표대상이 지금은 표준규격이다. 1표,2표,3표면 된다고 하더군.

여기 남한의 국군사병 중 보통체격이면 북한군의 5표군복을 입어야 맞지. 나도 북한 군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키면서 무장강행군 할 때면 비참한 모습 많이 보았다. 20명이 출발해서 마지막까지 제대로 돌아오는 병사가 5~6명 정도였어. 등에 진 배낭보다 더 가벼운 체구의 애들이 새까만 얼굴빛에 힘없이 앉아 졸 때면 < 무적필승의 영웅적인민군>이란 말이 어디서 누가 만든 말인지 의문이 들더라구.

되새겨 볼수록 화가 나는 게 지금의 북한현실이다. 그때 노동연대로 갔는지, 아니면 감옥에 갔는지, 살아 있다면 분명 넌 이 편지를 듣게 되리라고 믿기에 너를 잊지 못하고 편지를 보내는거야. 몸 건강하여 좋은 날 오면 다시 만나자.

2006년 8월5일 남한에서 너의 옛 부소대장으로부터.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