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인민보안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2006.05.17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한민의 탈북자가 만나본 탈북자’ 순서입니다. 양강도에서 살다가 2002년에 탈북하여 2005년에 한국에 온 최영진씨가 인민보안원친구인 박모씨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안녕한가? 나 꺽쇠다. 작년여름에 고생 끝에 오고 싶었던 남한에 왔다. 지금 난 여기 와서 잘 있다. 회사에 취직하여 열심히 살고 있는데 재미가 좋다. 이렇게 좋은 줄 이미 전에 알았더라면 좀 더 젊었을때 오는건데...
너와 너의 가족 모두 잘 있는지. 넌 그래도 일반 노동자보다 살기가 괜찮겠지. 그래도 그 땅에서 아무리 괜 찮다는 모양도 여기 남한에 비하면 거지 한가지야. 너무 우쭐렁 거리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하라구. 탈북했다가 다시 잡혀 북한으로 간 사람들을 너무 죄인취급하지 말기를 바란다. 조사하는 너 앞에서는 모두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대다수가 똑똑한 사람들이야. 먼저 깨우친 자들이라구. 그들을 조사하면서 많은걸 배우라구. 자넨 외부소식을 생생하게 접할수 있는 행운아야.
친구야. 우리같이 고민도 많이 했었지.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아. 주변에 불쌍한 사람 한명이라도 도와줘라. 너무 직업의식에만 빠져 있지 말고 말이야. 그리고 작년에 우리 가족 모두 남한에 왔어. 처는 컴퓨터학원에 다니고 딸들은 초등학교에 다녀. 북한에서 기능공학교가 남한에선 학원이고 여기의 초등학교는 북한의 소학교야. 나와 처가 한 달 벌어들이는 돈은 2천 달러 정도 돼.
금년 초엔 자가용소형승용차도 구입했어. 일요일이면 가족이 경치 좋은 곳을 ?아 다니며 즐겁게 휴식하곤 해. 제주도에도 가보고, 부산해운대에도 가봤는데 참, 살 맛이 나는 땅이야. 여행도 자유고, 말하는 것도 자유고, 계급이나 성분으로 사람 갈라보는 일도 전혀 없지.
생활총화라는 것도 없어서 편안해. 법치국가가 사람살기엔 최고다. 북한에선 큰 간부들만 사용하는 가정용 전화기지만 우리 집엔 전화기뿐 아니라 팩스기도 있고 휴대전화기도 몇 개나 된다구. 남한에 전화기 없는 집은 없어. 남과 북이 너무 차이가 심하니까 친구사이에도 대화가 잘 안 통할수도 있어.
북한에서 몰래 듣던 남한 라디오에서 뉴스를 제일 듣고 싶었댔지. 들으면서도 과연 저 내용이 사실일까? 하며 의심했었지만 자본주의국가에선 거짓말이 원칙적으로 안 통해.
남한엔 북한 최대의 상점인 평양 1백화점같은 낙후한 상점은 없어. 모두 낙원백화점이나 대성백화점보다 더 수준있는 상점들인데 물건 사러 들어가면 손님을 큰 간부 대하듯 한다구.
북한에서 5장6기에 목이 매여서 한평생을 걸고 헐떡거리며 뛰어다녀도 갖춰놓기 어렵던 것들도 남한에선 한 달 월급의 40%인 500 달러 정도면 한 두 시간 내에 구입할 수 있어.
먹고 싶은 것은 어디가나 다 있어서 골라먹는 나라야. 북한에선 꿈도 못 꾸어본 생활이야. 난 처음에 커피 먹을 줄도 몰라서 망신도 했었다. 북한에서 일반 백성들이 커피가 먹는 건지 약품인지 모르잖아.
내가 중국에 처음 갔을 때 가게에 있는 콜라라는 음료수를 보고 간장인 줄알고 창피당항 적도 있었어. 강성대국 인민이라지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인민이야.
내가 너무 내자랑 한다고만 생각지 말라. 이건 자랑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너에게 전하는 말이다. 이제 통일되면 나도 고향에 가서 보란 듯이 잘 살아보겠다구. 하루 빨리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넌 거기서 난 여기서 착하게 살자. 우리가 한때 얼마나 불량하게 살았니? 이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너도 술만 마시지 말고 건강도 돌보면서 의미 있게 살기를 이 친구는 바란다.
앞으로 고생할 너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게. 아무 탈 없이 잘 살길 바라며.
남한 땅에서 친구 꺽쇠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