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협동농장원이였던 김순이 씨의 서울생활


2006.04.05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한민의 탈북자가 만나본 탈북자’ 순서입니다. 오늘은 북한의 협동농장에서 야채농장의 농장원으로 일했던 두 아이의 어머니인 김순이라는 탈북여성입니다.

남한생활을 시직한지 3년째 되는 김순이씨는 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뒷바라지도 하면서 남한생활 적응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김순이씨는 오늘 자동차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여 운전면허를 취득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에서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농장원인 자기같은 사람이 자동차면허증을 취득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면서 면허증취득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김순이: 북한에서야 꿈도 못꾸죠. 더군다나 저같은 남새반 농장원은 그야말로 농포인데 자동차 만져보는 것만도 행복한 거죠. 한국국민이 됐으니까 저에게도 이런 기회가 생기는 거겠죠. 남들 다 하는 건데 나라고 못한다는 법은 없지 않겠냐. 이렇게 맘 먹구 시작 했죠. 과정에 좀 힘들었어도 내가 노력한 만큼 오늘 이렇게 당당한 면허증을 받게 됐죠. 즐겁죠.

가정주부인 그는 어머니로, 안해로 집안살림도 책임져야 하고 오전엔 컴퓨터학원에 가서 교육을 받고 아이들의 학습상태도 관심해야 하며 오후엔 자동차운전 연습장에 가서 연습하면서 하루 시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는 생활의욕이 대단했습니다.

남한정착의 기초를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는 탈북여성 김순이씨.. 남한사회정착에 대한 그의 자세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김순이: 남한사회에서 운전면허는 필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제에게 꼭 필요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애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신경써주는 것이 엄마인 저에겐 첫째 일이라고 봐요. 오늘 집에 둘어가면요.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서 난리날거예요.

자유세계를 ?아 온 기쁨을 항상 마음깊이 안고 산다면서 김순이씨는 두고 온 북한의 고향과 가족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남한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의 성공은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김순이: 힘들게 ?은 자유인데 소중히 여겨야죠. 열심히 배우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잘 살겁니다.

여러 탈북여성들 속에서 나이를 두고 고민하며 주저한다는데 남한 사회를 둘러보면 어데나 일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라면서 김순이씨는 나이가 결코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남한은 선택의 자유가 있는 기회의 땅인데 방황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고생을 딛고 일어서서 버티며 살아온 여성들인데 환경이 좋은 남한에서 그때의 그 정신으로 살면 못할 것도 없지 않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여성들이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은 더 이상 신비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40대의 탈북여성들 속에서 남한사회에 대한 소외감을 느끼며 맥을 놓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현실입니다.

북한에서 90년대의 < 고난의행군>시기에 우리의 어머니, 누님들과 동생들이 자기의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두 손이 닳아 버리도록 산판을 파헤치던 그 아픈 설움을 김순이씨는 여기 남한에 와서 행복할수록 잊지 않고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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