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정경미의 돌격대생활 편지


2006.05.10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한민의 탈북자가 만나본 탈북자’ 순서입니다. 오늘은 함경북도에서 4년 동안 돌격대에 소속되어 일하다가 2004년에 남한으로 온 정경미씨가 남포도로건설 돌격대 함경북도여단에서 일하던 당시 중대와대대 지휘관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오늘도 돌격대 지휘관으로 수고 많으실 함경북도여단의 여러 지휘관들에게!

당신들이 이 편지를 듣노라면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겁니다.1997년 9월에 내가 남포고속도로 건설 돌격대 함경북도 여단에 소속되어 남포현지에 도착한 그날, 중대정치지도원이란 사람은 신입대원으로, 23세 처녀인 나에게 이런 말을 했죠.

“돌격대판에서 편하게 살려면 정치지도원에게 잘 보이는 것 외엔 없다는 걸 알어라” 라고 하면서 나에게 공사현장에 대한 무서운 공포감을 심어주던 그 첫 인상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고생문이 열렸구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대원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마치 노예같다고 하며, 감옥에 있는 죄수들 보다 다를 것이 없다는 등 그는 나에게 작업현장에 나가면 저렇게 비참한 노동에 시달릴 것이고 중대정치지도원인 자신에게 몸을 바치면 자기의 권한으로 식당취사원 같은 쉬운 일감을 줄 수 있다고 나를 꼬드겼습니다.

그자의 검은 속셈을 뿌리치자 다음날부터 나에게는 중대에서 가장 힘든 일감이 차례졌죠. 철판으로 만든 질통을 등에 지고 그 속에 20kg 무게의 자갈과 버럭을 운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 정말로 죽을 힘 다해 일했죠.

밥을 먹으면 한 시간도 안 되어 배가 고팠습니다. 목욕도 1개월에 한 번씩 할 수 있었고 여성들은 밤마다 중대, 대대지휘관들에게 시달려 20대 초반에 임신하여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부인병에 걸려 고생하는 여성대원들이 그렇지 않은 애들보다 더 많았습니다. 죄를 진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참혹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당시 우리 중대는 60명이였고 1개 소대에 20명씩 3개 소대로 나뉘어 있었으며 모두 함경북도에 집을 둔 사람들이였습니다. 여자는 중대에 15명이였으며 중대원 전체가 지방공장 노동자, 농민 출신들이었고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은 군 청년동맹 지도원 출신 들이였습니다.

작업장은 그야말로 끝이 안 보이는 인산인해였습니다. 한발자국 잘못 옮기면 서로 부딪칠 정도로 와글와글한 작업장에서 서로가 충성심을 표현하는 구호와 혁명가요를 목청껏 부르짖었고 여기저기에서 방송 선동차들이 경쟁적으로 방송을 하니 혼이 빠질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숙소는 모두 진흙으로 만든 토굴집인데 숙소내부 정면에는 김부자 초상화가 걸려있고 측면에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당은 청년들을 믿습니다!”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습니다. 나의 잠자리는 출입문 옆이어서 밤엔 너무 추워 온몸에 힘을 주고 겉옷까지 모두 입고 담요 한 장에 비닐 방막까지 덮고 자곤했습니다.

그리고 아침6시면 일어나 군대처럼 줄을 지어. 혁명가요를 부르며 작업장으로 가죠. 질통과 마대에 흙을 담아 등에 지고 몇 백명이 떼를 지어 고함치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지금도 앞에 보이는 것같고 지휘관 당신들이 매일같이 외치던 선동이 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낮에는 대원들을 노동에 내몰아 진을 빼도록 선동하고 밤에는 처녀대원들의 숙소에 들어가 그들을 피 눈물나게 하던 당신들의 더러운 모습은 그때 돌격대 지휘관들 속에서 일반현상이었죠. 여성대원들을 당연한 자기의 성노리개로 인식하는 북한돌격대 지휘관들에게 경고합니다. 순진하고 착한 젊은 애들을 돌격대라는 명분으로 끌어가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북한의 통치자들은 나라의 청년들을 아무런 보수도 없이 수 십년 간 잔인한 노동을 강요한데 대하여 대가를 치를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돌격대 중대지휘관 대대지휘관들은 노동에 시달리고 굶주림에 지쳐 병들어가는 20대초의 여성대원들을 입당시켜준다는 달콤한 꼬임수로 2~3년 동안 정신과 육체에 깊은 상처를 남겨주는 더러운 짓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북한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돌격대란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당신들도 알 것입니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처녀총각 선 볼 때 여자측이 돌격대경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겠습니까! 돌격대생활하면 남자는 무지한 도적놈으로, 여자는 교양없이 몸 바친 여자로 된다는 두려움이 자식 키우는 부모들 속에서 없어지지 않고 있답니다.

앞으로 북한이 민주화 되는 그날, 수 백만 명의 돌격대원들이 당신들에게 입은 상처를 세상에 고발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장군님이 보내준 선물이라는 중국산 건설용 리어카들을 관상용으로 지휘부 앞에 진열해 두지만 말고 등짐 져서 잔등에 피 멍든 대원들이 사용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기막히게 현대적이라는 중국산 리어카는 여기 한국건설장에선 너무 낙후되어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보물처럼 교양용으로 놔두지만 말고 사용해야 합니다.

당의 부름 받고 돌격대노동판에 나갔다가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불행은 철두철미 당신들 지휘관들의 죄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생필품과 식량공급이 없는 현실에서 대원들을 군대처럼 가두어 놓고 무보수노동을 시킨다는 그자체가 인권유린이며 범죄행위란 걸 당신들은 알아야 합니다. 무지한 돌격대 속에서도 가끔씩 인정 있는 존경할만한 지휘관들도 있습니다.

대원들은 자기 일생의 가장 꽃다운 시절에 3년간 돌격대 생활에서 만났던 사람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정경미로부터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