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함경북도의 큰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


2006.06.28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한민의 탈북자가 만나본 탈북자’ 순서입니다. 오늘은 북한 청진에서 살다가 2002년에 한국으로 온 지옥희 양이 함경북도에서 살고 있을 큰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보고싶은 큰오빠에게 오빠, 무사합니까? 2년 전에 작은 오빠가 중국으로 가서 한국사람들 만나서 도움 받은 것이 죄가 되어 공개총살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여러 번 수소문하여 알아보니 그것이 사실이더군요. 머리위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이 숨이 멎을 것 같은 소식에 저는 아직도 속이 떨립니다. 나무기둥에 묶여 총에 맞으며 울부짖는 작은오빠의 모습이 꿈속에서도 나타납니다. 큰 오빠만이라도 죽지 말고 살아계시길 빌면서 삽니다. 동네에서 또래 중 얼굴도 잘생긴 우리 작은 오빠가 왜 수많은 마을사람들 앞에서 총살되어야 합니까? 중국 가서 애타게 벌어온 돈인데 남조선사람들에게 도움 받았다고 그렇게 죽어야 할 죄가 되나요? 세상에 태어나서 30년밖에 못 살고 죽다니 얼마나 원통합니까!

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고 꿈도 야무졌던 우리 작은오빠가 죽었다는 것이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작은 오빠가 2001년에 보위부에 잡혀갔을 때도 조금 조사받고 나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들려오는 말이 함흥에 있는 수용소에 수감됐다는 소문을 듣고 너무 억이 막혀 울었는데 다음해엔 공개총살 됐다니 우리 집에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전 그 후부터 북한의 비인권적 행위에 대하여 저주를 품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슬퍼하는 저에게 < 원쑤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고 하기에 그 목사님까지도 미워 졌습니다. 아직도 저의 귀에는 작은 오빠의 목소리가 똑똑하게 들립니다. 작은오빠의 죽움울 전해 듣고 그날부터 몇달을 밤마다 날이 밝도록 한없이 울고 울었습니다.

큰오빠, 우리 집은 모두 죽고 이젠 큰오빠와 저만 남았습니다. 우리 집의 비극을 죽어도 잊지 말고 우리처럼 또 다른 피눈물 나는 슬픔을 다른 사람들이 당하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큰오빠가 이 편지를 듣게 될 것으로 저는 압니다. 오빠가 아직 결혼을 안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큰오빠가 불쌍해요. 큰오빠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등산화도 사놓고. 매일 그 신발을 보며 오빠가 무사하기를 기도합니다. 쌀이 없어서 아침은 굶고 출근하던 오빠얼굴이 생각나 전 지금도 맛있는 음식 마주하면 슬퍼집니다.

어제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생일파티하면서 맛있는 음식 먹다가 문득 두 오빠생각 나서 그만 화장실로 달려와 울었습니다. 점심 변또도 못 챙기고 다니던 큰오빠가 너무 불쌍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중국에서 저는 어느 식당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한국으로 왔습니다. 중국에선 북조선에서 왔다고 하면 < 못사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무시합니다. 한국으로 오기까지는 고통도 많았답니다. 자유를 찾자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큰 오빤 지금도 이 동생 걱정을 하신다는데 전 그곳에 비유하면 대단한 간부수준의 생활을 한답니다. 자유가 넘치고 문명한 한국에서 전 대학생이 되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내 집도 있고 꿈속에서나 상상해 봤던 것들을 모두 갖춰 놓고 풍요하게 산답니다. 한 평생 가난에 눌려 살아오시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작은오빠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요즘 북한에 식량사정이 극심하다고 하는데 많이 걱정 됩니다.

꼭 건강하셔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2006년5월 23일 동생 성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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