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편지: 중학교 담임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2006.09.20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탈북자의 편지’ 순서입니다. 오늘은 2003년 한국에 온 김모씨가 북한 중학교 담임선생님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부모를 여윈 저를 친 아들처럼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께 조차 알려드리지 않고 남한에 까지 오게 된 못난 제자가 머리 숙여 인사 올립니다.
올해 제 나이 20세가 됐습니다. 지금 전 남한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3년 세월 저의 점심도시락을 챙겨주시며 선생님이기 전에 아버지같은 분께 제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제가 남한에 온 첫해에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거대한 빌딩이 숲을 이룬 도시에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적응하며 많은 웃음거리가 생겼습니다. 우선 여기 남한 학생들과 대화가 통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자유분방한 그들은 북한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조직규율속에 매어 사는 학생들과는 생각이 전혀 다릅니다.
남한의 중학생들은 모두 얼굴색이 밝고 건강합니다. 제가 다니던 북한중학교에서 제일 키가 큰 사람이 체육선생님인데 남한의 중학교 고학년이면 모두 그 정도의 키랍니다.
제가 다니는 대학에 같은 또래 중 북한에서 온 애들이 몇이 있는데 눈에 띄게 키가 작습니다. 처음 익숙치 않을 땐 키 작은 게 창피해서 다른 애들 속에 끼우지 못하고 피해 다녔답니다.
남한에선 공부하는 것도 자유로워요. 선생님께 무엇이든 질문해도 됩니다. 북한의 주입식 교육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무조건 압기해야 하는 북한의 < 혁명사상>과목은 남한에 없습니다. 학생에게 사상의 선택도 자유죠. 저는 이런 합리적인 교육제도가 하루빨리 북한땅에도 이루어 졌으면 합니다.
얼마 전 저의 또래 학생들이 저에게 < 북한에서 중학교 다닐 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묻기에 < 청년동맹 조직생활>과 집체과외활동에 의무적으로 참가하면서 내 인생에 불필요한 시간을 많이 보낸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서로의 사생활을 끄집어 대중 앞에 폭로하고 사상적감투를 씌어 분석해주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 생활총화>와 집체적으로 과제를 받아 파철모으기에 동원되거나 봄, 가을이면 농촌에 나가 한 달씩 농민이 되어야 하는 짜증나는 삶이 과연 공부하는 학생에게 왜 필요한지 저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갑니다.
< 온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한다는 명분을 걸고 호적에 등록 된 자라면 의무적으로 집단노동에 참가해야 하는 북한의 군중동원 현상은 남한의 학생들이 전혀 상상을 못한답니다. 학생은 자기의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인데 앞으로 통일이 되면 남북한 학생들이 서로 마주하면 심각한 이질감이 형성될 것 같이 생각됩니다.
북한 고등중학교학생의 생각은 수령께 충직한 학생이라는 칭호의 대표상징인 <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가 되는 것을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면 남한 고등학생들은 공부를 잘해서 명망있는 대학에 가려는 생각을 한답니다. 저 역시 열심히 공부하여 세계적인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싶습니다.
어느 추운 어동설한의 밤에 냉방에서 춥게 잘까 걱정되어 저희 집에 찾아와 날이 밝도록 불을 피워주시던 선생님, 추석날이면 부모님 산소에 맨손으로 와서 슬피 우는 저를 꼭 안아 주시던 선생님, 꼭 고향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선생님의 기대에 보답할 것입니다.
금년 장마비로 우리 고향엔 피해가 없었는지요. 남한에는 여러 마을이 침수되어 피해를 입었는데 국민들이 성금해서 도움을 주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선생님도 이젠 50대여서 건강에 유념하십시오. 2학년 시절, 선생님이 꿰진 신발을 기워 신으시고 교단에 서계시던 그 때에 학생들은 이상한 감동을 받았답니다. 그때부터 여러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했답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양심적이고 깨끗한 선생님은 바로 저를 사랑해 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마 잊지 않을 겁니다.
오늘도 열악한 환경에서 학생들에게 인간의 모습을 심어주시고 계실 선생님을 그리면서 부디 몸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06년 8월 20일. 제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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