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북한 고향 어머님께 보내는 편지
2006.07.19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한민의 탈북자가 만나본 탈북자’ 순서입니다. 북한 함경북도에서 살다가 2000년 한국에 온 최옥정(가명-29세, 여자)씨가 북한고향에 계시는 어머님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병약하신 어머니를 두고 떠나온 이 딸의 심정은 온통 어머니생각 뿐입니다. 비오는 날이나 삼복 더위나 쉴 새없이 농사일만 해 오신 어머니가 올해 60세이신데 여기 남한의 60세 어머니들에 비하면 나이에 비해 너무 늙으신 우리 어머니가 불쌍합니다.
어머니, 저의 등을 떠밀며 “중국에 가면 굶어죽지는 않는다”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대로 제가 중국에 오니 정말 굶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사람은 국적이 없으므로 숨어살아야 되는 불행한 처지여서 그해에 저는 꿈에도 상상해 보지 못한 남한 땅에 왔습니다.
지금은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여 2002년에 결혼도 하고 금년2월에는 귀여운 아들을 낳았습니다. 어머니의 사위되는 사람은 저보다 3살 우이고 지금 대형화물 운전기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5개월 된 어머니의 손자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임대하여 준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한평생 쓰러져 가는 낡은 집에서 살아오시면서 아파트가 부러워 하셨죠?
언젠가 < 은비녀>영화를 보면서 일본사람들이 사는 집이 화면에 나오자 북한 사람들은 천국같은 생활리라고 부러워했지만 지금 저희 집이 바로 그런 집보다 더 좋은 집이고 더 풍요롭게 살고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 전 난생 처음 냉장고, 세탁기, 전기밥솥 같은 것을 만져보았습니다. 아파서 가끔 동네주변에 있는 개인병원에 가면 평양에 있다는 간부병원 만큼이나 좋은 시설들로 갖춰져 있답니다.
남한에선 어디가나 사람의 신분과 직위로 가려보는 곳이 없답니다. 자기가 노력하여 번만큼 자기가 누리고 살수 있답니다. 애기 키우는데도 아무런 불편이 없어요.
어머니, 지금 어머니는 끼니를 제대로 드시는지 걱정스럽습니다. 하루 두 끼를 먹으며 살아온 우리집처럼 북한의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을 달래며 몸부림치게 될 봄철에 어머니는 분명 이산 저산 먹는 풀을 뜯으러 다니실 겁니다.
밤이면 등잔불 하나 켜고 오만가지 근심속에 자식걱정하실 어머니를 저는 한시도 잊지 못합니다. 혹시 어머니 혼자서 급병이라도 나시면 어쩌나하는 근심에 어머니와 함께 오지 못한 후회가 큽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혼자서 저를 키우시며 변변한 옷 한 벌 못 입어 보시고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드릴려고 제가 옷을 장만하여 놓고 만날 날만을 기다립니다. 어머니, 우리집 앞에 흐르는 개울물이 지금쯤 되면 물이 불어나 강물처럼 흐르겠는데 다니실 때 조심하세요.
장마철이 지나면 추운계절이 다가옵니다. 전 겨울이면 어머니걱정이 제일 큽니다. 추운 집에서 얼마나 고생하실까...
어머니, 제가 남한생활을 하면서 처음엔 너무 몰라서 어리둥절했던 문제도 많았답니다. 북한에서 자본주의사회는 돈밖에 모르는 양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한다고 배웠었는데 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보니 북한보다는 사람살기가 더 좋은 사회입니다. 부자가 아니면서도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들과 나누며 살려는 착한 분들도 많답니다.
어머니, 남한이나 자본주의 국가들에는 종교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하느님을 신격화하며 경배하는 정신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 혁명적 수령관>이나, < 10대원칙>과 같은 그런 형태와 같은데 북한처럼 의무성이나 강제성은 없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는 그 어떤 어리석은 숭배심의 노예가 죄지 않으려고 어떠한 종교에도 관심을 안 가집니다. 아버지가 생존에 말씀하시던 우리민족의 < 천부경>을 조금씩 흉내낸 것뿐입니다.
어머니, 이제 몇 년 후면 통일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야 할 문제가 있겠지만 제 생각엔 정의와 도덕이 사회를 지배하는 정상적인 통일이 꼭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때면 어머니의 고생도 끝날 것입니다.
오늘도 남북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상봉하는 것을 보도를 통해 보았습니다. 한 가족 의 혈육들이 서로 만나는 것을 왜 국가나 통치자들이 금을 그어놓고 감시 속에서 어색하고 불안하게 만나야 합니까?
그곳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저는 지금의 이산가족 상봉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싫든 좋든 장군님이라는 사람의 선택을 기다리는 남한이 된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서로 왕래하는 시대가 되기만을 가다립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다시 만날 때 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6월28일 전주에서 딸 올립니다.
탈북자의 편지
- 한민: 2001년 탈북,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여성
- 한민: 고향에 계신는 외삼촌에게 보내는 편지
- 한민: 함경북도의 큰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
- 한민: 중앙당 연락소 간부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 한민: 농업전문학교 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
- 한민: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께 드리는 속죄의 편지
- 한민: 북한 청진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 한민: 북한군관학교 동기생에게 보내는 편지
- 한민: 인민보안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 한민: 정경미의 돌격대생활 편지
- 한민: 북에 계신 어머님과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 한민: 중국의 탈북자에게 보내는 편지
- 한민: 탈북자의 편지
- 한민: 협동농장원이였던 김순이 씨의 서울생활
- 한민: 2005년 입국한 올해 45살의 김민수씨
- 한민: 낮은 곳에도 길이 많습니다 < 최영호씨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