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 뒤짚어 보기: 김 위원장 공개활동 왜 시작했나?


2006.08.18

미사일 발사 후 40일 동안 은신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개활동이 전격 공개되면서 향후 북한이 당면한 국제국내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13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제757군부대 축산기지를 시찰했다"면서 "목장 종업원들이 많은 고기와 우유를 생산해 군인들에게 생산 공급한 데 대해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선전매체가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마지막으로 보도한 것은 미사일 발사 하루 전인 7월 4일 평양대성타이어 공장 현지지도입니다.

지난 7월 5일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듭되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포동 2호'를 포함해 미사일 7기를 무더기로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김위원장은 일절 공개활동을 삼가고 장기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따라 외신들은 김위원장이 정세가 불리해질 때마다 공개활동을 삼가고 은둔한다고 비난했지요. 지금까지 김위원장의 장기 은둔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대포동 1호' 발사 직전에 33일간, 아프간 전쟁직후에 26일간, 이라크 전쟁 전후에 50일간, 1차 6자 회담 결렬직후인 42일 동안, 그리고 이번에 40일간 입니다.

외신들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 긴장이 고조되자, 신변위험을 느끼고 은신했다고 하고, 병치료를 위해 은신했다는 등의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고, “외교적 해법 외에 다른 옵션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요. 또 이전에 심장병 치료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그렇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었지요.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재개 보도는 장기간 은신에 따른 논란 확산을 막고 통치권과 체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됩니다.

김 위원장이 선군정치의 상징인 군부대를 방문하고 건재함과 동시에 '정상 통치'로 돌아왔음을 시위하는 것입니다. 또 '100년만의 홍수'로 흐트러진 민심을 잡으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군부대 축산기지를 방문한 것도 미국의 압박 속에 주민들에게 '자력 갱생'의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미사일 발사는 미국을 양자테이블에 끌어내기 위해 카드였습니다.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고, 위폐제조 혐의로 동결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2천 4백만 달러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미사일 발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엔결의안 1695호를 통과시키고 더 강하게 북한을 밀어붙였습니다. 여기에 북한이 동맹국으로 믿던 중국과 러시아까지 가세했습니다.

국제정세는 북한에게 아주 불리하게 변해갔습니다. 게다가 100년 만에 들이닥친 대 홍수는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를 강타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 실종되고 수만 정보의 논과 밭이 침수 또는 유실되었습니다.

북한이 언제까지나 미국의 신호를 기다리며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요. 만약 대 홍수로 기근에 시달리는 주민생활을 방치할 경우, 체제붕괴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40일 만에 다시 공개활동에 나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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