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 6. 25 전쟁 누가 일으켰나?


2006.06.30

6월 25일을 맞아 평양을 비롯한 여러 지방 도시들에서 반미시위가 진행되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수십만 명의 각 계층 군중들이 김일성 광장에 모여 '6.25 미제반대투쟁의 날'에 즈음하여 철천지 원수 미제에 대한 단죄와 규탄의 목소리를 힘있게 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군중대회에는 박봉주 내각총리를 비롯한 당 및 정권기관 간부들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평양시 방철갑위원장이 "만약 미제가 끝끝내 이 땅에서 침략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정치사상적 위력과 군사적 잠재력을 총동원해 반미 대결전을 총결산할 것"이라고 연설했다고 합니다.

매해 6. 25가 되면 북한에서는 반미투쟁월간을 정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미제타도'를 외치며 봄, 가을에 한차례씩 군사훈련에 동원됩니다. 중학교, 소학교 교과서에도 “6.25전쟁은 미제의 사촉을 받은 남조선괴뢰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매해 벌이는 반미투쟁이지만, 정작 미제를 타도할 기회는 오지 않고, 고달픈 시위만 반복되고 있지요. 북한주민들은 6.25전쟁을 미국이 일으켰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서냉전은 근 40년 가까이 6.25전쟁의 비화를 역사에 묻어두었습니다. 한국전쟁의 내막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은 90년대 구 소련이 무너지면서부터입니다.

1994년 6월 러시아 정부는 216점의 한국전쟁관련 자료를 한국정부에 제공하고, 2000년 러시아의 토르쿠노프(Anatory Vasilieveich Torkunov)교수는 '수수께끼의 전쟁:한국전쟁 1950-53'에서 한국전쟁의 진실을 밝힌 책을 썼습니다.

토르쿠노프 교수는 한국전쟁이 소련, 북한, 중국의 합의하에 계획된 전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책에는 김일성 주석과 박헌영이 1950년 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거의 한달 동안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스탈린과 3차례의 회담을 통해 최종적으로 침공에 대한 결정과 작전지침을 받았다고 수록되어 있습니다. 소련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무기와 식량을 비롯한 전쟁물자들을 지원해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후에 중국도 전쟁에 동의했는데, 모택동은 실전경험이 풍부한 인민해방군 소속 조선족 정예 2개 사단을 북한에 파견했고, 북한군이 압록강까지 밀리자 100만 명의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3년간 전쟁은 우리민족에게 참혹한 불행과 고통을 들씌웠습니다. 35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고, 40여 만 명의 한국군과 50만 명의 인민군, 유엔군 16만 명과 중국 군 90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북한당국은 여기서 역사의 교훈을 찾고 더는 동족상쟁을 부추기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도 하루빨리 미국과 관계개선을 하고 정상적인 국가로 거듭나 다른 나라들과 동등하게 국제적인 활동에 참가하고 무역활동을 벌여 가난의 때를 벗어야 합니다.

사실 북한주민들은 벌이는 반미투쟁은 다른 목적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못사는 원인을 내적인 원인에서 찾아야지, 외적 요인에서 찾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미국이 경제봉쇄를 하기 때문에 못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반미선전은 주민들의 분노를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북한당국은 못사는 주민들이 열 받아 몽둥이를 들고 정부기관을 까부수고, 체제반대 폭동을 벌일 가봐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분노를 삭일 수 있는 대상,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것이 바로 반미투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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