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 평양냉면
2006.03.21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애란입니다. 태를 묻고 살았던 북녘 땅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삶을 시작한지도 벌써 9년 세월이 되어옵니다. 이곳에서 살아오는 동안 어느 한시도 떠나온 고향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곳에서 삶의 안착을 얻을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운 마음은 더해만 갑니다.
북녘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있는데 냉면집입니다. 오래전에 북한을 떠나오신 분들이나 최근에 탈북하신 분들이나 모두 냉면을 드시면서 떠나온 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데요. 그래서 냉면집 주인들은 대체로 북쪽 출신들이 많습니다.
특히 우래옥은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해외에서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우래옥은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음식을 먹을 수가 없구요, 또 자리가 없어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답니다.
우래옥의 창업자 고 장원일 선생님은 “냉면은 살아 있다.”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하는데요. 변치 않는 맛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가 만들어낸 구호(표어)라고 합니다.
평양에서 명월관이라는 음식점을 경영하다 해방직후 월남한 그는 1946년 현재의 을지로에 “서북관”으로 창업하였다고 합니다. 6.25전쟁 시기 피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새로 개업하면서 "다시 돌아온 식당"이란 뜻의 "우래옥"으로 개칭하였는데 나중에는 “한번 온 손님은 잊지 않고 다시 온다”는 뜻으로 더 많이 해석하게 되었답니다.
고 장원일 선생님은 성공의 비결을 최상의 재료에서 찾았다고 하네요. 우래옥은 그래서 창업 이래 제분소와 정육점도 한 곳만 정해놓고 거래한답니다. 현재 우래옥은 3대째 이어가고 있는데 을지로에 있는 본점과 강남점, 대전점이 있고 태평양건너 뉴욕과 워싱턴 DC에도 진출하여 한국음식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창업주는 한국음식의 세계화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마음을 외아들 진건씨에게 밝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진건씨는 교사의 길을 접고 부친의 바램을 실천에 옮길 계획을 세우고 이 업계의 생리를 어느 정도 체득한 다음 67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시작으로 해외진출을 시작하였는데 74년 로스앤젤레스와 뉴욕(77년) 워싱턴(81년) 시카고(96년)에 차례로 우래옥 분점을 개업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우래옥은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거주하는 고급주택가 베버리힐스에도 분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을지로 본점과 대치동에 있는 우래옥을 모두 가보았는데요, 을지로에 있는 우래옥 냉면이 더 맛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래옥은 반칙을 안 합니다.”라고 본점의 전무 김지억씨는 영업방침을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은 창업자의 유훈이라고 합니다.
예전 본점 건물은 그냥 쓰러져 가는 한옥이었는데 80년대 중반 지금의 현대식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우래옥의 육수는 순수한 고기국물인데 조선소(한우)의 엉덩이살과 다리 안쪽살을 너댓 시간 푹 고아서 만듭니다. 냉면에 편육이 보통 네 댓점 들어가 있으면 제대로 육수를 우려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녘에서도 냉면에 고깃점이 몇 점 올라있느냐에 따라 비싼 음식을 먹었는지 가늠하던 생각이 납니다.
이집 냉면의 특징은 냉면에 배를 참 많이 넣어주는데 냉면을 씹을 때에 배의 적당한 질감이 냉면 씹는 맛을 더해 줍니다. 적당히 쫄깃 거리다가 탁 터지는 메밀 면발도 그렇구요.
보통 냉면은 냉면그릇에 담아주는데 우래옥은 사기그릇에 담아줍니다. 냉면을 좀 더 고급스럽게 보이고 면을 금속과 닿지 않게 하려는 배려 같기도 합니다.
사실 우래옥은 냉면도 냉면이지만 불고기와 쟁반도 유명하지요. 주인 할머니가 직접 주무른 불고기는 "역시 고기는 손맛이야!!" 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냉면의 시원함과 감칠맛이 여러분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