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말, 북한 말: 옷병원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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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북쪽에서 살 때 남쪽에 대해 많이 오해한 것들이 있었는데 남조선은 외국말 잡탕말이 판을 치고 있고 왜색외풍이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말아먹고 있어 우리나라의 전통이 말살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세계화, 국제화를 추구하고 있고 개혁과 개방이 국가의 정책기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한국 땅에 들어와 선보이고 있고 서울에 앉아서도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원하면 음식이나 옷, 영화나 기타 모든 문화의 산물들을 체험해볼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세계문화의 홍수 속에서도 한국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자하는 문화지킴이들도 많고 또 북한보다 더 우리말을 살려 쓴 명칭들도 많은데요. 옷 병원도 그런 용어 중에 하나랍니다. 커지거나 작아진 옷을 자신의 체형에 맞게 고쳐주는 곳이니까 옷병원이란 말도 그럴 듯한 것 같습니다.

북쪽에는 도시마다 옷 수리라고 부르는 편의 봉사점들이 있지요. 남쪽의 옷 병원은 북쪽에서 옷 수리라고 부르는 편의 봉사점에 해당되는 곳인데요. 옷병원과 옷수리점은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저는 북쪽에 있을 때 옷수리에 가끔 옷을 맡기기도 하였는데 옷수리에 맡기는 옷은 주로 입던 옷을 뜯어서 다른 형태로 고쳐 입을 때 맡기는 곳이었지요.

늘 입을 옷이 부족한 북쪽의 처녀들(남쪽에선 시집가지 않은 처녀들을 아가씨라고 부른답니다.)은 아버지나 오빠의 양복이나 바지를 뜯어서 자신의 몸에 맞는 형태로 고쳐서 입거나 학교에서 공급받았던 교복을 뜯어서 다른 디자인(형태)의 옷으로 만들어 입군 하였지요.

한번은 교복치마를 뜯어서 바지를 만들었는데 주름을 잡았던 부분들이 색이 바래서 얼룩얼룩했지만 간신히 해 입은 바지여서 얼마나 아껴 입었던지 모른답니다. 오죽하면 새 바지를 해 입었는데 길에 가다가 넘어졌을 때 바지가 찢어진 것이 무릎의 살이 찢어진 것 보다 더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무릎의 살이야 흉터는 남겠지만 아물면 되지만 새 바지가 찢어지면 기워서 입을 수밖에 없잖아요.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배를 그러쥐고 웃는 답니다.

하여간 북쪽의 옷수리집은 이미 만들었던 옷을 뜯어서 새로운 형태의 옷으로 만들어 입을 수 있도록 고쳐주는 곳이고 남쪽의 옷병원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옷설계사)들이 만든 명품 옷이나 비싼 옷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작아졌거나 커져서 몸에 맞지 않을 때 몸에 맞게 고쳐주는 곳이랍니다.

그러니까 옷수리 집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지요. 여기는 아파트나 주택가마다 가면 버린 옷이 너무 많은데요, 그래서 한번 만들었던 옷을 다른 형태로 고쳐 입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랍니다.

가는 곳마다 색깔 곱고 화려한 형태의 옷들이 너무 많고 천의 질들이 너무 좋아서 아무리 입어도 꿰어지지가 않기 때문에 옷을 버리기가 더 바쁘답니다. 그러니 누가 만들었던 옷을 뜯어서 다른 옷을 만들어 입으며 또 그런 옷을 만들어주겠다고 할 양복점도 없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새 옷을 만드는 품보다 더 많은 품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용도로 잘랐던 천을 가지고 옷을 만들면 아무래도 새 천을 잘라서 만든 것보다 보기에도 안 좋은 것은 사실이잖아요.

남쪽엔요 가끔 가다보면 북쪽처녀들이 혼수 때 그토록 받고 싶어 하는 문양비로도(꽃무늬 벨벳)천도 필채로 버린 것도 많답니다. 저희들이 처음 서울에 왔을 땐 아파트 지하층마다 비치되어 있는 재활용 통들에서 버린 옷을 상당히 많이 얻어다가 입기도 하고 북쪽에 계시는 친구나 친척들에게 기회가 되면 보내주고 싶어서 모아두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보니 이제는 도저히 입을 수도 없고 보낼 수도 없어 다시 재활용통에 내려다가 버리는 경우가 많답니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입을만한 옷들이 쌓여있고 북쪽에선 죽었다 깨어나도 구경하기 힘든 좋은 옷감들이 가는 곳마다 쌓여 있으니까 이곳 남쪽에서는 오히려 바지를 찢어서 입는 것이 멋이라고 한답니다. 저희 북한사람들이 남쪽에 와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이 바로 새 청바지를 일부러 찢어서 입는 것이었는데요.

옷감이 없어서 무릎이나 엉덩이가 다 닳아서 떨어지면 다른 천을 덧대어서라도 기워서 입어야하는 북쪽과는 반대로 옷이 너무 흔해서 새 옷도 조금 작아지거나 커서 맞지 않으면 버리는 남쪽에선 찢어진 청바지조차 유행이고 멋이라고 합니다.

특히 요샌 다이어트(살빼기)열풍으로 옷들이 자꾸 커지기 때문에 옷병원들이 아주 바빠졌는데 특히 여대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곳엔 옷 병원거리가 형성될 정도랍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오늘은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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