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참 요지경의 세상입니다. 살아볼수록 신기하고 아하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가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그런 곳이랍니다. 그 중에 하나가 대통령이나 탈북자나 아니면 건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먹는 음식만큼은 거의 같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매일 매일의 식단은 조금씩 차이가 나겠지만 대통령만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있는 것이 아니고 건설노동자라고 해서 대통령이 먹는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것도 아니랍니다.
제가 서울에 온지 2년 정도 되던 때에 청와대 점심식사에 초대된 적이 있었습니다. 청와대에 들어서는 순간 저희들 모두는 너무도 간편한 검열에 놀랐고 또한 금수산의사당에 비해 너무도 수수한 전경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런데 또 놀란 것은 청와대에서 대접받은 식사였습니다. 그날 나온 식사는 한식(조선식)이었는데 7첩 반상으로 밥, 국에, 김치 외에 간장, 초간장, 겨자장 등 종지 3개와 조치, 찜, 숙채, 냉채, 구이, 조림, 전, 마른반찬, 회 등이 한 가지씩 올랐습니다.
북쪽의 지도자 김정일이 베푸는 연회에 비하면 식사가 너무 평범하고 간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행복했고 대한민국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쪽에선 대통령이나 평범한 건설노동자일지라도 먹는 것만큼은 평등하니까요.
일본인으로 13년간 김정일의 전용요리사를 지낸 후지모토 겐치가 쓴 수기에 보니까 김정일 일가와 주변인들이 먹는 음식은 화려함이나 사치의 극치를 이루고 있더군요. 김정일은 먹는 음식에도 계급을 정해놓고 북쪽주민들을 통치해 왔지요. 하지만 남쪽에선 더 이상 먹는 음식엔 계급도 없고 높고 낮음도 없답니다.
한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 오찬 때 칼국수를 손님에게 접대해서 화제가 됐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칼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반죽해 면발이 아주 고소한 안동식 칼국수였는데 그 후 여러 곳에 청와대 칼국수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일종의 상술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손님접대를 할 정도의 빼어난 맛을 가진 칼국수란 의미지요.
요즘엔 가는 곳 마다 칼국수집들이 있고 내 노라 하는 칼국수 맛을 자랑하는 음식점들도 많이 있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아주 특별한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던 때도 있었지요. 물론 밀가루가 상당히 귀한 북쪽에서도 뜨덕국이나 칼제비국은 손님접대를 위한 별식이었던 적도 있고 또한 특별한 반찬이 필요 없어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일상음식이기도 하지요. 남쪽에선 북쪽의 뜨덕국을 수제비라고 부르고 칼제비국을 칼국수라고 부른답니다.
남쪽에서 요즘에 흔히 먹을 수 있는 칼국수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때나 먹는 귀한음식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엔 밀가루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밀이 주 재료였지만 보리와 밀 수확이 끝났을 때인 유두(음력 6월15일)에는 갓 나온 햇밀로 칼국수와 밀가루 지짐을 부쳐 이웃과 나누어 먹던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점성을 높이기 위해 녹말을 호화시켜 면을 만들기도 했는데 조선시대 요리서인 '음식다미방'에는 옥수수, 감자, 고구마, 칡 등의 녹말로 국수를 만드는 방법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답니다. 그 당시에는 비단 국수요리뿐만 아니라 요리를 만드는 곳곳에 녹말가루가 사용되었었기 때문에 그 방법이 기본적인 상식에 해당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소바는 우리나라의 메밀칼국수에서 유래되었는데 일본의 '본산적주(本山荻舟)'에는 "조선의 승려 원진이 일본에 건너와 밀가루를 메밀가루에 섞는 것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원래 메밀국수를 소바(소바)라고 하지 않고 자른다는 뜻의 마디절(切)자를 넣어 메밀국수를 소바기리(소바切)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방에 따라 칼국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요, 농촌지역에서는 닭 육수에 애호박과 감자 등을 넣어 끓이고, 산간지방에서는 멸치장국, 해안지방에서는 바지락장국으로 칼국수를 끓입니다. 내륙식 칼국수는 사골육수에 채 썰어 볶아낸 호박나물과 쇠고기 고명을 얹어 깔끔한 국물 맛이 특징이고 남도식 칼국수는 멸치에 마늘 파 등을 썰어 넣어 끓인 국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한 맛이 특징입니다.
서울엔 소문난 칼국수 집들이 아주 많은데 제가 요즘 먹어본 칼국수로는 된장칼국수가 제일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제가 그동안 알아두었던 맛있는 칼국수 집들을 모두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