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몰래 라디오를 듣던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13년 뒤, 그녀는 자신이 듣던 바로 그 방송국의 대표가 됐습니다. 이시영 자유북한방송 신임 대표의 이야기를 워싱턴에서 박재우 기자가 직접 만나 들어봤습니다.
백두산 자락, 양강도. 혹독하게 춥고, 조용한 곳. 그곳에서 자란 한 여자아이의 꿈은 단순했습니다.
“나는 장군님의 딸로 살다 죽으리라.”
의심 한 점 없이, 그렇게 믿었습니다. 평양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23살에 자기 식당을 열었습니다. 간부들이 드나들고, 돈도 벌렸습니다. 누가 봐도 잘나가는 삶이었습니다.
이시영 자유북한방송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김지영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탈북 뒤 이시영으로 개명했고, 두 이름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북한에 가족을 둔 탈북민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대표의 아버지 집 라디오에서 낯선 주파수가 잡혔습니다.
이시영 대표: 처음에는 ‘아, 남조선에서 북한을 무너뜨리려고 거짓 방송을 보내는구나’ 했는데, 그 이야기가 매일매일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의심하면서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방송에서는 탈북민들이 살아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들 사이에 ‘김성민’이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이름을 마음속 어딘가에 새겨뒀습니다. 하지만 삶은 예고 없이 무너집니다.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반역자가 됐습니다. “지배인 만세” 직원들이 건넨 소박한 건배사 하나가 빌미였습니다. 수배자가 된 어머니. 가족 전체를 따라붙는 감시.
한평생 노동당을 위해 살았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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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대표: ‘이렇게 한평생 당을 위해서 충성을 했는데, 내가 여기에서 배신을 당해서 이렇게 죽어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하셨나봐요.
2012년 11월. 이 대표는 어머니와 사촌동생을 데리고, 강을 건넜습니다. 한겨울 강물에 온몸이 얼어붙었고, 어머니는 저체온증으로 사선을 넘나들었습니다. 손발톱이 모두 빠졌습니다.
탈북을 결심하면서도,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안전이 확인되면, 나는 다시 돌아가면 그뿐이다.”
국정원 조사를 받는 날까지도, 그녀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비록 이곳이 남한이라도, 나는 장군님의 딸로 살다 죽겠다.’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삶은 계란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세상. 여자가 혼자 차를 몰 수 있는 세상. 모른다고 하면, 열이면 열 모두 가르쳐주는 사람들. 북에서 30년간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큰 세상이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3년이 지났을 때, 이상한 감정이 찾아왔습니다.
이시영 대표: 조용하게 살리라, 돈만 벌리라 했는데, 3년이 지나니까 너무 행복해서 북한 사람들한테 미안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찾아간 곳이, 북한에서 몰래 듣던 그 방송국이었습니다. 자유북한방송.
그리고 거기에, 라디오에서 이름만 들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성민 대표였습니다.
이시영 대표: 탈북민들이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면서 사는 게 사명이 아닐까라고 말하셨는데 너무 공감이 됐어요.
그 한마디였습니다. 주말엔 녹음, 평일엔 원고. 재능기부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10년이 됐습니다.
그 사이, 김성민 대표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폐암에서 뇌종양으로, 뇌종양에서 간으로. 8년의 투병. 시한부 선고를 받던 날, 직원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김 대표가 말했습니다.
이시영 대표: ‘내가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내가 한 일에 대한 긍지를 안고 살다가 가고 싶다. 나를 생각하면 울지 말아 달라.’ 그러셨어요.
의식이 흐릿해지는 순간까지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였습니다.
이시영 대표: ‘이거 빨리 편집해야지. 다음 사람들 들어와서 이걸 해야 할 거 아니야.’ 그 말씀을 하셨어요.
마지막 숨결까지, 북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준비를 해뒀습니다. 창립 20주년 행사에서 직접 후임을 선포했습니다. 이 대표는 그날까지도 몰랐습니다.
이시영 대표: 그냥 대표님과 같이 고향 가는 날까지 같이 싸우자,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으니까요.
가장 힘든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습니다. 방송 오프닝을, 바꿔야 했습니다. 10년 동안 매일 들었던 목소리. 김성민 대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오프닝을 직접 손으로 걷어내야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그 빈자리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몰래 라디오를 듣던 그녀가, 이제는 북한을 향해 직접 방송을 내보냅니다. 청취자였던 사람이, 목소리가 됐습니다. 그 방송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에디터 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