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 57기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올해 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혔습니다. 25년 넘게 북한 문제를 지켜보며 영변 핵시설을 두 차례 찾았던 키스 루스 미국 국가북한위원회 사무총장. 박재우 기자가 워싱턴에서 만났습니다.
[기자] 총장님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처음 북한 문제에 관여하게 되셨습니까?
[키스 루스]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 밑에서 상원 농업위원회에 있을 때였습니다. 의원님이 위원장이었고, 농업위원회는 식량 원조 관련 사안에 관할권이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에 계속 식량을 제공할 것인지를 놓고 상원에서 표결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루거 의원에게는 실질적인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 식량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제가 북한에 가야 한다고 결정하셨습니다. 첫 방북이 2002년이었습니다. 그 뒤로 네 차례 더 갔습니다.
[기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함께 영변에도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핵 능력은 어떻게 평가됐나요?
[키스 루스] 헤커 박사 연구의 일부가 당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실태와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하기로 그는 첫 방문 때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능력에 다소 회의적이었습니다. 그가 그 의구심을 북측에 전하자, 그들은 유리병을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원뿔 모양의 플루토늄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면서요. 그 시절에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북한 핵 프로그램의 상태가 어떠한가, 그들이 어디까지 가려 하는가 하는 것들이었죠.
[기자] 그런데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무기를 57기로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미국은 왜 이 상황을 막지 못한 걸까요?
[키스 루스] 북한은 방대한 핵무기고를 축적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 질문에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답의 일부는 오히려 명백합니다. 하나는, 수십 년 간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며 레드라인을 그어 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지점에 와 있습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도 했는데요.
[키스 루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측 군사훈련 축소와 관련해 과감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바로 그 사안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기자] 북러 밀착이 깊어진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습니다.
[키스 루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은 단기적으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김정은, 김정일, 김일성으로 이어지는 북한 지도부를 역사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이죠. 김정은은 방향을 바꿉니다. 그는 북한이 험한 동네에 살고 있다고 볼 겁니다. 기원전 3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의 침입, 몽골의 한반도 침략, 일본의 강점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어떤 나라도, 어떤 지도자도 영원한 친구나 영원한 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매우 기민하며, 북한에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바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겁니다.

[기자] 회담이 다시 열린다면 미국은 무엇을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키스 루스] 싱가포르로 돌아가 보면, 북한은 미군 유해 55상자를 미국에 보냈습니다. 이는 북한 측의 선의의 표시였습니다. 저는 이 사안이 앞으로도 미국의 관심사로 남기를 바라고, 또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전쟁에서 아직 수습되지 않은 미국인이 6천 명이 넘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가족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하고, 언젠가 유해가 돌아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싶어 합니다.
[기자]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직후 워싱턴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키스 루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손을 내밀고 싱가포르 회담이 열렸을 때, NCNK로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의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북한과 관여할 방법을 찾으려는 미국 기업인들, 여러 직종의 사람들, 그리고 이것을 기회로 본 한국계 미국인들이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 역시 많은 미국인에게 중요한 사안입니다. 많은 개인과 단체가 들떠 있었습니다. 그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기자]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는 어땠습니까.
[키스 루스] 하노이 이후 북한 지도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접촉을 끊기로 결정했습니다. 큰 실망이었습니다. NCNK 회원 상당수가 북한에서 개발 사업과 인도적 사업에 수년을 쏟았고, 그들은 돌아갈 준비가 돼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현실주의자입니다. 최고위급 양자 관계가 더 긍정적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자] 언론과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키스 루스] 언론과 논객들은 비핵화 같은 정책 사안에 집중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수십 년 간 인도적·개발 단체에서 일하는 미국인들이 현장에서 수천 명의 북한 주민과 접촉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미국친우봉사회(퀘이커)가 1980년부터 북한에 들어간 최초의 비정부기구 중 하나였습니다. 1980년부터 코로나19 이전까지, 미국 시민들은 북한 주민들과 지역 차원에서 활발히 교류해 왔습니다. 놀라운 형태의 소프트 외교였고,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입니다.
[기자] 최근 달라진 흐름이 있을까요?
[키스 루스] 최근 몇 년 간 흥미로웠던 것은 중국 측이 미국의 정부 인사와 학계에 접촉해 오는 정도였습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10년 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기자] 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갖는 가장 큰 오해는 무엇입니까.
[키스 루스] 한 가지 미국적 사고방식은 “북한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는 수십 년 간 의회와 여러 행정부에서 흔했던 인식이고, 솔직히 말해 더 급한 국제 현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과 관여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행정부는 “그럴 시간도 자원도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수십 년 간 정부 지도자들의 가정을 기억합니다. 북한은 결코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결코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정이 행정부에서 의회로 전달되곤 했습니다. 북한은 저기 있을 뿐이니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걱정할 필요 없다는 인식이었죠.
에디터 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