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자행되는 인권 유린 현장을 VR, 즉 가상현실 콘텐츠를 통해 1인칭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북한 당국이 탈북민에게 인권 침해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단도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평양 한 가정의 평화로운 거실.
갑자기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보위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가족들을 끌어냅니다.
군용 트럭 짐칸에 실려 장시간 이동한 뒤 내려 마주한 것은 높은 콘크리트 담장과 육중한 철문.
9살 ‘혁이’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낯선 냄새’로 기억되는 정치범수용소 생활을 시작합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NKHR)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현실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VR, 즉 가상현실을 통해 생생히 체험할 수 있도록 한 ‘북에서 온 속삭임’ 전시의 일부입니다.
한 가족이 보위부원들에게 연행돼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고, 열악한 환경에 처해 굶주림과 질병·고문과 폭행에 시달리는 일련의 과정을 1인칭 시점의 가상 체험 프로그램으로 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북한 내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한 정보가 감정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단순히 정치범수용소 실태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혁이’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통계나 보고서 속 숫자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삶과 그에서 비롯된 상실감을 마주합니다. 북창 제18호 관리소 구금 생존자 김혜숙 작가의 말입니다.

김혜숙 작가(북창 제18호 관리소 구금 생존자): 저는 1970년 2월, 제 나이 13살 때 이유도 모른 채 평안남도 북창군 18호 관리소로 끌려갔습니다. 그 곳 학교에서 아주 기초적인 공부만 배우고, 중학교 4학년이 되면 모두 졸업을 시켜서 탄광에 배치했기 때문에 탄광일을 14년 동안 했습니다.
북창 제18호 관리소 구금 생존자인 김혜숙 작가는 13살 때 끌려간 관리소에서 28년을 살며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남동생을 잃은 아픔과 경험을 전했습니다.
200g도 안 되는 쌀을 불려 온 가족이 끼니를 때워야 했고, 산에서 얻은 나무껍질과 나무 잎사귀에 쌀가루를 섞어 먹으며 연명하는 가운데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공개 처형을 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는 것이 김 작가의 말입니다.
김혜숙 작가(북창 제18호 관리소 구금 생존자): ‘내가 무슨 죄로 여기에 들어와야 하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대든다는 이유로 비공개로 산에 데려가서 총으로 쏘고,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도 공개 처형을 해서 이틀 건너 한 번씩 계속...
전시를 연 NKHR은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삶은 외부 세계에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목격하거나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 역시 쉽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정치범수용소라는 공간의 특성상 내부 현실을 직접 보고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VR이라는 매체를 통한 경험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지윤 NKHR 팀장의 말입니다.
이지윤 NKHR 팀장: 인권 유린을 당하신 분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때문에 존재하면서도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존재잖아요. 사람들이 그에 더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계속 노력할 예정이고,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28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코트’(KOTE)에서 열리며, 30일 오후 2시엔 VR 콘텐츠의 주인공 9살 혁이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모델이 되어준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가 관람객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정치범수용소 VR체험은 30분 단위로 진행되며, 행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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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북, ‘구금시설 폭행·고문’ 탈북주민에 배상해야”
북한에 강제 이송돼 구금시설에서 고문당했다고 주장해온 탈북민에게 북한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단도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날 최민경 북한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가 북한을 상대로 5천만 원, 미화로 약 3만 6천 달러를 청구하며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전부승소로 판결했습니다.
최 대표는 지난해 7월 북한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난 1997년 탈북해 중국에 체류하다가 2008년 강제북송된 최 대표는 함경북도 온성시 보위부 등 북한 내 구금시설에서 약 5개월 동안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 비인도적 고문 등으로 인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북한 주민도 국민으로 규정하는 한국 헌법에 따라 한국 내 법원에서도 소송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이번에 승소함으로써 “북한 태생 인권침해 피해자에 의한 최초 소송 및 승소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사건”이 됐다는 것이 법률 지원을 맡은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측 평가입니다. 윤승현 NKDB 인권침해지원센터장의 말입니다.
윤승현 NKDB 인권침해지원센터장: 가장 중요한 의미는 ‘북한 주민’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최초로 북한 주민이 북한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부분입니다.
최민경 대표는 승소에 기쁨을 나타내면서도 “이제 첫 발을 내딛은 것”이란 소감을 밝혔습니다.
최민경 북한감금피해자가족회 대표: 저는 이제 첫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피해자 가족회에 특히 여성 피해자들이 많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생존자로서 제가 먼저 시도를 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북한에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는 만큼, 소장을 공시송달, 즉 해당 내용을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이를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다만 북한을 상대로 진행된 이전의 민사 소송처럼 북한은 위자료 지급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NKDB 인권침해지원센터 측은 “향후 공시송달에 그치지 않고, 소장 등을 북한 유엔 대표부에 송달되도록 한 뒤 그 판결을 기초로 외국에 있는 북한 재산에 집행하는 시도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