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드라마 속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가족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최근 한 소셜미디어에서 수백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지난달 23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는 ‘북한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앞으로 남존여비 사상 해체와 여성 인권 신장을 이야기할 것이란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라는 짧은 글이 올라왔는데, 무려 435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글을 본 또 다른 이용자는 “설마 하고 찾아봤는데, 진짜로 북한 드라마에 식탁을 차리는 아버지가 나온다”며 영상 하나를 공유했다.
앞치마를 두른 북한 중년 남성이 그릇을 들고 식탁으로 향하는 장면인데, 이 영상도 2일 현재 244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영상에 관한 댓글에는 “역시 드라마는 사람들을 천천히 세뇌시킨다”, “김정은이 딸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것”, “북한이 저러니까 더 안 믿긴다”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또 최근 국정원의 김주애 후계 내정 평가와 맞물려 ‘후계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설마 하고 찾아봤는데”…수백만 회 조회
RFA 확인 결과, 이 영상은 북한 조선중앙TV 드라마 ‘백학벌의 새봄’의 한 장면이다.
국가영화총국 텔레비죤극창작사 제2창작단이 제작한 22부작 드라마로, 2025년 4월 16일 조선중앙TV에서 처음 방영됐다.
가장 뒤떨어진 농장에 부임한 리당 비서가 농장원들을 애국 농민으로 이끈다는 줄거리인데, 앞치마를 두른 아버지 장면은 이 드라마 속 일부다.
조선중앙TV가 2023년 1월 ‘한 검찰 일군의 수기’ 이후 2년여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당시 북한 대외 선전용 월간지 ‘금수강산’ 7월호는 이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북한 관영매체를 분석해 온 미국 스팀슨센터의 레이첼 민영 리 선임연구원은 2일 RFA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러한 장면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던 연출”이라면서 “이를 곧바로 김주애 후계와 연결 짓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 가정의 모습과 거리가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탈북민 김수경 씨는 RFA에 “한국 드라마는 현실을 많이 반영하지만, 북한 영화나 드라마는 순전히 세트장에서 꾸며낸 ‘쇼’”라며, “극 중에 남성이 밥상을 차린다고 해서 주민들이 감흥을 느끼거나, 남성들이 가사를 돕는 쪽으로 인식이 바뀔 리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대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 전문기자는 이날 RFA에 “북한에서 TV는 오락이 아닌 중요한 정치 선전 수단”이라면서, 김주애 후계 구도 구축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의도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일반 여성이 아닌 “오로지 김주애를 위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평등’ 선전 속 “공산주의 어머니” 강조
온라인에서 일 년 전 방영된 북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지금의 김주애와 연관 짓는 배경에는 최근 김주애의 후계 구도에 관한 한국 정보당국의 평가가 있다.
한국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에 따르면, 한국 국가정보원은 지난 1일 김주애가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이유에 대해 “사실상 후계자 내정 단계로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정보위원회에서는 김주애가 군사 분야에 집중하다 최근에는 민생과 정치, 외교로 활동을 넓히고 있으며,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30차례나 등장했다고 정보위 여야 간사들이 전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김주애를 공식 후계자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김수경 씨는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북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이어 그의 딸까지 권력을 물려받는다면, 주민들이 마음속으로 큰 거부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경 씨] 속으로는 ‘뭐래니’ 이러겠죠. 북한은 남성 우월주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김정은에 이어 김정은 딸까지 한다고 하면 정말 싫어하겠죠. 속으로는 정말 짜증나지만, 보는 눈이 있고 옆에서 사람들이 보고 꼰지를까 봐, 고발당할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냥 참는 거죠. ‘그래, 우리 수령님 딸이 (후계자)해야지’라고 절대로 생각할 것 같지 않습니다.

여성 많은 직장에서도 책임자는 ‘남성’
북한에는 김주애를 비롯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장, 최선희 외무상 등 주목받는 여성이 있지만, 이것이 곧 일반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리 선임연구원은 “김여정은 김 위원장의 동생이고, 리설주와 김주애는 가족으로 특수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며 북한 지도부 명단 전체를 보면 여전히 남성이 대부분”이라면서 “그것이 저절로 북한 여성 전반의 지위 향상으로 이어진다고는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 통일연구원이 지난 1월 펴낸 ‘북한인권백서 2025′도 여성의 시장 활동이 늘면서 경제력과 가정 내 발언권은 강화됐지만, 정치와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은 여전히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여성을 향한 북한 당국의 메시지도 엇갈린다.
노동신문은 지난 7월 30일 김일성의 ‘남녀평등권법령’ 선포 80주년을 맞아 “우리 여성들은 장장 80년간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혁명에 참여해 왔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보다 2주 앞선 7월 17일 김 위원장은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제8차 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지도부를 만나 “여성들이 조국의 융성 번영에 참답하게 이바지하는 진정한 애국자, 자식들을 훌륭히 키우는 공산주의 어머니, 공산주의 교양자가 돼야 한다”라며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리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 만큼 이념적으로는 늘 남녀평등을 강조해 왔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라고 설명했다.
마키노 교수도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병원이나 학교 등에 많은 여성이 일하고 있지만, 책임자는 남성밖에 없다”라며 일반 여성의 지위가 여전히 안 좋은 상황임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에디터 노정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