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북한군 병사”... 북한 현실 반영한 미국 게임 ‘콜 오브 듀티’

북한의 한 시골 마을. 나무에 걸린 밧줄 끝에 ‘배반자’로 지목된 주민의 목이 묶여 있다. 그 밧줄을 쥔 건 게임 이용자 자신. 배반자에 대한 처형을 거부하면 지휘관이 그 자리에서 이용자의 캐릭터를 쏜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되는 미국 액티비전의 일인칭 슈팅(shooting)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Call of Duty: Modern Warfare 4)의 한 장면이다.

누적 판매량 5억 장을 넘긴 이 시리즈의 신작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는 가상의 ‘제2차 한국전쟁’을 그리고 있다. 또 전쟁 장면에 그치지 않고 북한 내부의 권력 승계와 숙청, 주민 통제까지 다룬다. 디지털 예약 구매자들은 지난 16일부터 캠페인 모드(이야기를 따라 게임을 진행하는 스토리 모드)를 먼저 즐기고 있다.

북한군 ‘동무’가 된 이용자

게임은 선대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평양 김일성 광장을 연상시키는 장소에서 북한 주민이 모여 통곡하고, 유학파 출신인 아들 ‘리승호’가 새 최고지도자로 추대된다.

게임은 가상의 세습 체제와 한반도에서 발발한 2차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북한 내부 사회와 권력 구조의 어두운 면을 매우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게임 이용자가 ‘동무’라 불리는 말단 북한군 병사가 되어 공포정치를 직접 겪는 장면이다. 이용자는 리승호의 누나이자 군부 실권자인 ‘리주영’을 따라 마을을 돌며 남조선과 결탁한, 이른바 ‘반동분자’를 색출하는 임무에 투입된다.

[리주영] 이 개간나 새끼는 우리를 배신했다. 공화국을 내부부터 약화시키려고, 남조선과 협력했다.

게임 속 북한의 한 민가 벽에 걸려 있는 선대 최고지도자 2명의 초상화. 게임 이용자가 이 초상화를 총으로 쏠 경우 즉시 아군에게 사살당하며 게임 오버 화면이 뜬다.
게임 속 북한의 한 민가 벽에 걸려 있는 선대 최고지도자 2명의 초상화. 게임 이용자가 이 초상화를 총으로 쏠 경우 즉시 아군에게 사살당하며 게임 오버 화면이 뜬다. 게임 속 북한의 한 민가 벽에 걸려 있는 선대 최고지도자 2명의 초상화. 게임 이용자가 이 초상화를 총으로 쏠 경우 즉시 아군에게 사살당하며 게임 오버 화면이 뜬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 게임 화면 캡처)

수색 중 이용자는 주민을 때리거나 총으로 쏠 수도 있다. 또 숨어 있는 주민을 못 본 척하고 살려줄 수도 있지만, 체제의 절대 금기를 건드리는 순간 가차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 민가의 벽에 걸린 선대 최고지도자 두 명의 초상화를 총으로 쏘면, 옆에 있던 부관 ‘고진혁’이 즉시 방아쇠를 당겨 이용자의 캐릭터를 사살한다.

동시에 화면에는 “최고령도자 동지의 초상화를 훼손하여 공화국의 명예를 실추시켰습니다.”라는 묵직한 경고 문구와 함께, ‘다시 하기’라는 게임 실패(게임 오버) 화면으로 바뀐다. 이는 ‘최고 존엄’ 훼손을 중대 범죄로 다루는 북한 사회의 공포 통치를 떠올리게 한다.

공개 처형을 거부하는 선택지 역시 죽음이다. 반동분자의 목이 묶인 밧줄 당기기를 거부하는 순간 리주영이 이용자의 캐릭터를 쏘고, 게임은 다른 시점으로 넘어가 그대로 이어진다. 명령을 거부한 말단 병사 한 명이 사라졌을 뿐, 처형과 학살은 멈추지 않는다. 리주영은 마을 주민 전원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라고 명령한다.

[고진혁] 배신자는 죽었습니다. 반동 분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는 충분히 되었잖습니까.

[리주영] 감히 내 뜻에 반대하겠다면, 밧줄은 얼마든지 더 있어.

반동분자를 색출하는 장면은 결국,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며 비는 주민들을 집단 총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북·러 밀착과 쿠데타… 현실과 맞닿은 권력 암투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도 이번 게임의 핵심 도발 배경이다.

러시아 국방장관 ‘아처’는 리승호를 찾아와 선대 지도자와 준비해 왔다며 남침을 제안하고, 최첨단 ‘전자기 펄스’(EMP) 무기 지원을 약속한다. 리승호가 망설이자, 대신 친러 강경파인 리주영이 당 간부들을 몰살하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다.

[리주영] 배반자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동무들은 다 변질되었다는 말입네다.

[고위 간부] 리주영 동지, 우리는 모두 최고지도자 리승호 동지에게 충실한 사람들입네다. (총소리)

게임 속 북러 결탁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2024년 6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고, 북한은 그해 10월부터 러시아에 병력을 파병했다.

이후 이야기에서는 기존 정형화된 틀을 깬 북한군 인물도 등장한다. 리주영의 최측근 장교 고진혁은 무모한 학살에 회의를 품고 한미연합군에 핵심 군사 기밀을 넘기며 북한 군부 수괴를 처단하는 데 협력한다.

작전 성공 후 한국군이 고진혁에게 남한으로의 탈출을 권유하지만, 그는 “나는 조선의 아들”이라며 북한에 남아 나라를 수습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박 이병을 바라보는 고진혁의 묘한 미소에서 세습 독재가 끝난 자리에 새 권력자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액티비전의 신작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 예고편에 등장한 북한 군부 실권자 ‘리주영’(오른쪽)과 그의 부관 ‘고진혁’. 불타는 마을을 배경으로 반동분자 색출을 지시하고 있다.
미국 액티비전의 신작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 예고편에 등장한 북한 군부 실권자 ‘리주영’(오른쪽)과 그의 부관 ‘고진혁’. 불타는 마을을 배경으로 반동분자 색출을 지시하고 있다. 미국 액티비전의 신작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 예고편에 등장한 북한 군부 실권자 ‘리주영’(오른쪽)과 그의 부관 ‘고진혁’. 불타는 마을을 배경으로 반동분자 색출을 지시하고 있다. (액티비전 공식 유튜브 예고편 캡처)

“김여정과 김주애를 섞은 듯”… 현실과 비교하는 이용자들

이번 신작에 대한 한국 이용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이용자들은 게임 속 설정을 실제 한반도 상황과 비교하며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용자들은 유튜브에서 게임 중 가상의 북한 권력층을 현실의 백두혈통에 빗대며 관심을 보였는데, 리주영에 대해서는 “김여정과 김주애를 섞은 가상인물”이고 리승호는 “김정은과 김한솔을 섞은 느낌”이라며 인물 설정에 주목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웃을 게 아니라 김주애 권력 승계 시 정말 이럴 수도 있겠네”라는 댓글을 남겼다.

군사적 현실성에 대한 반응도 이어졌다. 한 이용자는 “게임 속 전자기 펄스(EMP) 공격과 기습 포격 연출이 실제 북한의 대남 침략 전술과 흡사해 무서웠다”라며 휴전 상태의 무게를 실감했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게임 속 가혹한 내부 통제와 공개 처형 장면을 보며 북한의 인권 현실을 돌아보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용자들은 “끔찍하다. 우린 게임이라 웃으면서 하지, 북한은 저게 현실이다”, “영상으로만 봐도 저기서는 일 분도 못 살겠네”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반응도 눈길을 끌었다.

사선을 넘어 자유를 찾은 탈북민들에게 가상 세계 속 남북 대결과 북한 내부의 참상은 한층 더 무겁고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2023년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민 김철옥 씨의 언니인 탈북민 김규리 씨는 지난 6월 게임 예고편 공개 당시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김규리 씨] 고향에 죄 없이 감옥에 갇혀있는 제 동생 철옥이를 생각하는 제 입장은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고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어요. 가상의 게임을 즐기는 분들도 화면 속 화려한 액션 뒤에 이 순간에도 자유를 박탈당한 채 고통받고 있는 진짜 사람들의 비극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한 번쯤은 마음으로 느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에디터 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