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 동선으로 본 ‘김정은 셔틀외교’… “북미정상회담 문턱 높아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신압록강대교 개통식 9일 만에 자동차를 이용해 북중 접경 도시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방문해 항미원조기념관까지 찾은 것은 이례적이고 상징적이다. 당일치기 ‘셔틀외교’를 통해 북중 관계가 새 밀월기에 들어섰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 참석 이후 13개월 만이다. 그동안 여섯차례 방중하는 동안 시징핑 국가 주석을 만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동수단 측면에서도 이전 다섯 차례의 방중 때는 비행기로 두 차례, 특별열차로 세 차례 이동했다. 안전을 우려해 북한 지도자들이 좀처럼 승용차로 이동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자동차 이동은 파격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해 5월 중국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한 것을 제외하면 김 위원장은 앞서 네 차례는 모두 베이징을 찾았다. 단둥만을 방문해 일정을 소화한 것은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당일치기 방중을 통해 북중 간 전략적 소통이 언제든 가능하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의 이런 의도는 24일 단둥에서의 김 위원장 동선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된다. 김 위원장은 북한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압록강대교 다리 중간 지점에서 전경을 바라보며 “이 다리가 두 나라를 잇고 우리의 마음도 더 굳게 잇는 역사적인 사명을 의심할 바 없이 정확히 수행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표명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5일 전했다.

2010년 착공한 신압록강대교는 왕복 4차로·총 길이 3천26m로, 중국 측이 약 22억위안(약 4천400억원)을 투입해 2014년 완공됐다. 하지만 북한 측 연결도로와 통관시설 미비,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등의 이유로 통행이 미뤄지다가 12년 만에 정식 개통하게 됐다. 그동안 북중 간 최대 교역 거점인 단둥과 신의주 간 육상 화물 운송은 1943년 완공된 조중(북중)우의교에 의존해왔다.

김 위원장이 그동안 특별열차로 조중우의교를 통해 방중한 것이 ‘과거’라면, 이번에 자동차로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중국을 방문한 것은 북중 관계의 ‘미래’ 청사진을 내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북중관계를 장기적으로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중국과 국제사회에 천명한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의 신압록강대교 발언은 인적 및 물적 교류를 확대하고 활성화시켜보자는, 중국에 보내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임을출 교수는 “김 위원장이 건설활동을 많이 지휘하고 현장 점검하는 것을 많이 해봤다”며 “신압록강대교 개통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큰 이벤트여서 본인이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점검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북제재 형해화 할 수 있다는 신호”

또한 하루에 최대 트럭 2만대의 물동량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압록강대교를 부각시킨 것은 대북 제재와 관련해 국제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일치기 셔틀외교도 가능하다, 즉 북중이 대북제재와 상관 없이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라며 “대북제재를 사실상 형해화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북중 관계가 미국이 좌우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시위성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단둥 방문 당일인 24일 오후에 황하이자동차 공장을 시찰한 점도 향후 북중 경제협력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북한 국영 조선중앙TV가 25일 공개한 18분짜리 영상에는 김 위원장이 조립 라인을 시찰하고, 여러 차량의 문을 열어 내부를 살펴보고 버스 한 대에 탑승하는 모습이 담겼다. 황하이자동차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의 물류 부대를 위한 수리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1951년에 설립됐으며, 현재 버스, 특수 목적 차량 및 신에너지 차량 생산을 전문으로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버스 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김정은-중국방문-버스-자동차공장-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버스 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STR/AFP / KCNA)

북한 지도자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순방 때 자신의 관심 분야를 의도적으로 시찰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황하이자동차 공장 시찰도 그의 관심사와 맞물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버스는 물적 및 인적교류와 관련된 수단이므로 신압록강대교 개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북중이 새로운 경협 모델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중고 버스를 수입은 하는데, 가장 좋기로는 임가공처럼 조립생산하는 것”이라며 “버스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중국과 합작해 조립생산을 한다든지 또다른 경협 모델을 만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은 항미원조기념관과 항미원조기념탑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피로써 도와준 역사” “피의 검증” 등 양국 간 혈맹 관계를 지칭하는 표현을 다섯 차례나 언급했다. 항미원조는 한국전쟁의 중국식 표현으로, 중국이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의미다. 중국군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19만7천여명이 전사했으며, 한국전쟁 참전 후 첫 승리를 거둔 10월25일을 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중국 권력 서열 4위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항미원조기념관에서 김 위원장을 맞이하고, 김 위원장이 같은 자리에서 북중간 혈맹 관계를 강조한 것은 양국이 ‘공통의 적’인 미국에 함께 맞서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교가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내 북미대화 재개를 추진하는 가운데 다음 달 18~19일 중국 선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에이펙)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2026년 10월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북중 압록강대교에서 왕후닝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왕후닝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2026년 10월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북중 압록강대교에서 왕후닝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FP / KCNA)

왕후닝 주석은 중국 공산당 서열 4위로 시 주석의 책사이자 심복으로 꼽힌다. 이런 점에서 김 위원장과 왕 주석이 대미 전략을 둘러싼 전략적 소통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 쪽에서는 왕 주석 이외에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류하이싱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북한 측에선 최선희 외무상과 김여정 노동당 부장 등이 동행하는 등 양측의 고위급 외교 라인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북중 간 사전 조율로 곧바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중 관계가 밀접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이 북미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임을출 교수도 “현재 에이펙 일정이 한달도 안 남았다”며 “김 위원장이 대미 협상력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적 단서들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민호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26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방중에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는지를 두고 전문가 의견이 엇갈리는 데 대해 “관련 부분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 정부 역할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