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P’ 기반 440만 건 금융권 해킹 시도···누구 소행일까

최근 금융권을 겨냥한 해킹 시도에서 북한에 할당된 인터넷 프로토콜(IP) 대역이 다수 확인되면서 금융회사들의 보안 대응에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사이버 공격의 확산 가능성과 연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취약점 탐색과 공격 과정을 자동화하면서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해진 만큼, 금융권도 사후 대응에서 벗어나 선제적 방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금융당국은 지난 21일 금융보안 통합관제시스템을 통해 금융회사와 가상자산거래소 등에 북한 IP 대역에서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접근과 관련한 유의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당시 집계된 접근 시도는 총 440만 4101건으로, 관련 IP 대역은 ‘175.45.176.0/22′로 전해졌다.

당국은 금융회사들에 관련 접속 이력을 확인하고 정보보호 및 내부통제 체계를 점검하는 한편, 이상 징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도록 요청했다.

다만 이번에 확인된 접근 시도는 시스템의 취약점을 탐색하는 이른바 ‘스캔성 접근’으로, 접근 시도 건수 자체가 실제 해킹 성공이나 개인정보 유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침해 여부를 판단하려면 취약점 악용과 내부 시스템 침투, 데이터 유출 등의 흔적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AI가 바꾼 해킹 방식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AI 기반 사이버 공격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이버 안보 전문가인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는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AI가 취약점 탐색과 공격 코드 작성 등 기존에 사람의 전문성과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작업을 자동화하면서 공격의 속도와 규모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종인 명예교수는 “마치 사람이 걷는 것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정도의 차이”라고 비유했다.

특히 임 교수는 “사람이 직접 취약점을 찾아 공격 코드를 만들고 방어 체계를 우회하던 방식과 달리, AI를 활용하면 취약점 탐색을 자동화해 훨씬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시스템을 점검할 수 있다”며 “수백만 건의 접근 시도라는 숫자도 AI 기반 자동화 환경에서는 가능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공격자가 개별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아내고 이를 악용할 방법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기술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AI 기반 도구가 발전하면서 취약점 탐색과 공격 과정의 일부를 자동화할 수 있게 됐고, 공격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도 고도화된 도구를 활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지난 9월 말 AI 기반 침투 테스트 도구인 ‘아르텍스(ARTEX)’에 오픈소스 AI 모델을 연동한 해킹 공격이 국내 금융권을 강타한 사건 역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도구가 방어 목적으로 개발됐더라도 활용 방식에 따라 공격에 악용될 수 있으며, 오픈소스, 즉 공개된 도구가 확산하면 공격 기술의 진입 장벽도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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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사이버 해킹 일러스트레이션.
북한의 사이버 해킹 일러스트레이션. (/RFA 그래픽)

공격 주체 단정은 신중해야

북한에 할당된 IP 대역이 확인됐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공격 주체가 북한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 교수는 공격자가 자신의 기존 IP를 계속 사용하면 추적이나 차단에 노출될 수 있어 다른 서버나 프록시 등을 경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IP가 확인된 배경으로 북한의 의도적인 노출 가능성과 다른 국적의 해커들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북한 IP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동시에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스캔성 접근이 곧바로 개인정보 유출이나 금융자산 탈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취약점을 탐색하는 단계와 실제 시스템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는 단계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임 교수는 공격자가 취약점을 악용해 시스템에 침투할 경우 권한을 높인 뒤 데이터를 외부로 유출하고, 이를 다른 범죄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출된 정보에 따라 금융 사기나 비대면 계좌 개설 등 2차 범죄에 악용될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금융정보가 유출되더라도 실제 피해 가능성은 정보의 종류와 보안 관리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임 교수는 이번 접근 시도만으로 과도한 공포를 가질 이유는 없지만, AI를 활용한 공격이 앞으로 더 빠르고 정교해질 가능성에는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격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지옥문이 열린 거죠.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고 방어하는 쪽 역시 AI를 활용해서 선제 방어력을 높이면 됩니다.”

공격 방식이 변화하는 만큼 금융권의 보안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침해사고가 발생한 뒤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방식만으로는 자동화된 공격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AI를 활용한 공격이 빨라지고 강력해지는 만큼 방어하는 쪽도 AI를 활용해 더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위협을 과도하게 두려워하기보다는 공격이 발생하기 전에 취약점을 찾아 제거하는 선제적 보안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들은 우선 외부에 노출된 웹사이트와 서버, API 등 정보기술 자산을 점검하고,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는 차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한다. 보안 취약점이 확인되면 신속하게 패치를 적용하고, 관리자 계정과 원격 접속에는 다중인증을 적용하는 등 접근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접속 기록을 단순히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정상적인 로그인, 권한 상승, 대량 데이터 조회와 외부 전송 등 이상 징후를 연계 분석해야 한다. AI를 활용한 위협 탐지와 취약점 관리 자동화도 방어 역량을 높이는 방안으로 꼽힌다.

에디터 이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