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적지 복구에 수해 살림집은 뒷전
2024.08.09
앵커 : 북한 수해 복구 소식이 속속 전해지는데요, 북한 양강도에서는 수해 복구를 위해 지방공업공장 건설을 잠시 멈췄습니다. 건설 인력을 수해 복구에 동원했는데 우선 복구되는 시설은 무너진 살림집이 아닌 사적지와 제방입니다. 북한 내부 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27일, 북한 북부 압록강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양강도도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올해 지방공업공장 건설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김형직군의 피해가 컸다고 하는데, 수해 복구를 위해 공장 건설을 임시로 중단했다고 복수의 현지 소식통들이 전했습니다.
양강도의 한 간부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6일 “이번 장마로 양강도에서 제일 많은 피해를 본 고장은 김형직군”이라며 “김형직군은 압록강의 범람으로 피해가 컸던 데다 후주천과 후창강이 넘쳐나 살림집 붕괴는 물론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특히 “천리산이 발원지인 후주천에는 과거 통나무 뗏목을 띄워 보내기 위해 남사노동자구에 건설한 두 개의 저수지가 있다”며 “저수지의 물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 수문을 열 수밖에 없었는데 그로 인해 연하리와 고읍노동자구에서 대피하지 못한 수십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명피해는 연하리와 고읍노동자구는 물론 후주천을 끼고 있는 남사노동자구와 록림노동자구에서도 발생했다”면서 “오가산이 발원지인 후창강도 범람했지만 인근의 로탄노동자구에서는 살림집 20여 채가 붕괴되었을 뿐 다행히 인명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이런 피해가 난 가운데 도당 책임비서의 지시로 김형직군은 7월 31일부터 지방공업공장 건설을 임시로 중단했다”며 “건설에 동원되었던 군인들과 돌격대원들이 김형직군 주민들과 함께 당분간 수해 복구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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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단 수해 복구 공사는 주민들의 살림집보다 사적지와 제방 복구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양강도 김형직군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8일 “지난달 27일에 쏟아진 폭우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많은데 살림집 건설은 뒷전이고, 수해 복구에 동원된 인력은 전부 (김형직군) 읍에 있는 사적지와 압록강 제방(둑) 쌓기에 동원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이번 수해로 압록강 기슭에 있던 ‘포평나루터’가 물에 잠겼다”고 전했는데 이곳은 김일성이 14살 되던 어린 나이에 ‘나라가 독립되지 않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다지며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향한 곳으로 알려진 주요 사적지입니다.
소식통은 “7월 31일, 지방공업공장 건설을 멈추고 수해 복구에 동원된 군인들과 돌격대원들이 제일 먼저 복구한 곳이 ‘포평나루터’였는데 일부 건설 인력은 김일성 사적지인 ‘포평나루터’와 ‘여인숙’, ‘포평사적관’ 복구 정리에 동원되고 나머지는 압록강 제방 쌓기에 동원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압록강 제방은 중국에서 마주 보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복구해야 한다는 것이 도당의 지시”라며 “아직 살림집 건설은 시기와 방법 등이 결정되지 않아 집을 잃은 주민들은 방학을 맞아 비어있는 학교 건물들에 임시로 거처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살림집 건설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소식통은 “압록강의 제방은 돌로 쌓으면 되지만 살림집을 지으려면 시멘트와 목재와 같은 자재들이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아직 수해 복구에 필요한 건설 자재들이 양강도에는 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살림집 건설에 필요한 목재를 얻자고 해도 국가적인 산림녹화 정책으로 중앙의 승인을 받아야만 산에서 나무를 벨 수 있다”며 “지방공업공장 건설 인력을 계속 수해복구에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시급한 대책이 없으면 살림집 건설은 기약 없이 늦춰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