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발굴 현장을 가다 (2) - 북한군 전사자 적군묘지에 300여구


200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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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이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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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의 수통에 날카로운 금속으로 긁어서 새긴 군번으로 보이는 숫자-0167621-가 희미하게 보인다 - RFA PHOTO/이진서

6.25전쟁의 총성이 멎고 남북이 휴전협정을 맺은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의 흔적은 한반도 산천 곳곳에서 짙게 묻어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숨진 병사들은 아직 분단의 벽을 넘지 못한채 남과 북이라는 이름 아래 제각각 처리되고 있습니다.

이용석 중령: 현재 제가 들고 있는 것은 6.25 당시 아군이 들고 있는 수통이고 육군의 병적 조회를 통해서 저희가 분석을 요청했으니까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 같습니다.

강원도 홍천군 광암리 야산에서 있었던 발굴작업에서 발견된 수통은 국방부 병적조회 결과 1951년 전사한 고 민태식 일병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이용석 중령: 오늘까지 8년동안 만 1,800구가 채워진 것 같습니다. 대략 한해 250명의 용사를 우리가 찾았는데 그중에서 유가족까지 확인된 유해는 오늘 전까지 22구였는데 이제 한명을 찾음으로 23구가 유가족까지 확인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

남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6.25전쟁 유해발굴과정에서는 북한군의 유해도 지금까지 300여구가 나왔습니다. 한민족의 병사들은 사망한 뒤에도 분단의 벽을 넘지 못한채 다르게 처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유해발굴 반장 권재우 중사의 설명입니다.

권재우 중사: 일반적으로 아군이나 적군이나 발굴과정은 똑같은데 발굴과정이 끝나고 임시 봉안식이 끝난 후 화장을 하는데 아군의 경우 화장을 하고 적군의 경우 화장을 하지 않고 적군 묘지에 안치를 시킵니다. 그 이유는 현재는 북한 쪽에서 안받는다고 해서 보내질 못하고 있는데 나중에 관계가 좋아지면 뼈를 가지고 인류학적 조사도 하고 해야 하기 때문에 저희 쪽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고 안치를 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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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굴지 강원도 인제군 사평리의 야산 - RFA PHOTO/이진서

(기자:반장님은 지금까지 발굴한 유해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요? )

권재우 중사: 저는 04년 2월부터 현재까지 발굴을 했고 최고 기억에 남는 것은 04년 6월 홍천 박내리에서 발굴을 했는데 인식표가 나와 신원이 확인돼서 유가족이 현장에 직접 와서 자식이 아버님을 찾는 모습을 보고 한편으로는 안됐다는 마음도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전후세대들은 전쟁의 아픔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유해발굴사업 지원을 나온 3군단 군단 사령부 소속 김창환 일병에게 선배 전우의 유골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기자는 물어봤습니다.

김창환 일병: 그때 당시 그 상황을 겪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극박한 상황이었고 다수보다 소수가 있었기 때문에 무서웠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기자: 북한군의 유해는 북쪽에서 인수를 안해가서 적군 묘지에 가매장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망자를 놓고도 분단이 된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창환 일병:지금 상태가 복잡할 수 있고 한데 통일이 된다면 적군이다 아군이다 하지만 다 같은 한민족이지 않습니까? 적군의 유해를 찾아도 그건 바로 우리 핏줄인 것입니다. 국군이고 적군이고 간에 다 같은 한민족의 유해를 찾는 것처럼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한 유해발굴 과장인 이용석 중령은 전사자 유해발굴은 시간과의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이용석 중령: 문화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비싸 하지만 유해는 앞으로 3-4년이 시한부야 이 시간이 지나면 그 사실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사라져 그러면 결국 우리가 전사 기록만 가지고 해야 하는데 전사 사실이 그 당시 살은 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과 전쟁이라고 하는 겁니다.

(기자: 발굴과정에서 적군이 발굴됐을때 이런 전사자 조차 유해 송환이 안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의 없이 6.25의 상처가 치유될까요?)

이용석 중령: 미묘한 질문이라고 보는데 처음 2000년 4월4일 첫 삽을 뜨면서는 지금까지 교육받았던 반공이라는 연장선에서 이렇게 나라를 위해 싸우다 희생이 많이 됐구나, 안타깝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반면에 아군과 싸웠던 적군이 약 300구가 됩니다. 처음에는 적개심과 분개심이 앞섰는데 8년이 지난 지금 진정한 의미를 정립을 해가는 과정입니다만 군인의 최고의 명예는 명령에 따라 싸우는 것이기에 이곳에서 숨져간 적군도 아마 적군 지휘관에 명령에 따라 열심히 싸웠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따라서 민족 대통합의 전환기에 있기 때문에 너무 가슴이 아프고 지금도 우리땅이 이런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같은 형제라는 측면에서 북한의 위정자들이 공개적으로 가슴을 열고 ...북한지역에 우리 아군 유해가 6만구가 있다고 보는데, 전사자 유해 문제는 정치를 초월하고 이념을 초월하는 문제라고 볼 때 남북간 공동 발굴 유해발굴 사업도 해야 된다고 판단이 됩니다.

남한 유해발굴감시단은 강원도 홍천과 인제 지역에서 13일 진행된 유해까지 모두 1800구의 유해를 발굴했습니다. 그중 북한군은 309구 중공군은 77구입니다. 이들 북한군과 중공군은 본국이 송환을 해가지 않아 현재 남측 경기도 파주 적군묘지에 안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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