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박사는 북한에서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현실을 본 다음, 북한이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시민운동에 투신했다고 말합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북한의 선군정치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딴 오 박사는 앞으로 세종연구소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이뤄낼 수 있는 “실천적인” 학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오경섭 박사를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세종연구소에서 박성우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박성우: 박사님,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오경섭: 네, 반갑습니다.
박성우: 지난달까지만 해도 계간지 ‘시대정신’의 편집장이셨어요. 그런데 이제 세종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셨습니다. 먼저, 세종연구소는 어떤 곳입니까?
오경섭: 세종연구소는 외교, 안보, 통일 분야를 연구하는 민간 연구소입니다.
박성우: 언제 이곳으로 옮기셨지요?
오경섭: 3월 2일부터 세종연구소로 출근하게 됐습니다.
박성우: 지난 학기에 고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신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겠네요?
오경섭: 네, 그렇습니다. 제 박사 학위의 논문 주제가 북한의 선군정치를 위기관리 체제로 인식하고 논문을 작성했는데요. 이 논문을 작성하고 나서, 운 좋게도 이쪽 세종연구소 남북관계 연구실에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지원하게 됐고, 이쪽으로 오게 됐습니다.
박성우: 운이 좋다고 표현하셨는데, 실력도 있으니까 연구원으로 발탁되신 거겠지요. 논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북한의 선군정치에 대해서 쓰셨는데. 먼저, 선군정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오경섭: 선군정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1990년대 초반에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북한이 위기 체제로 들어가게 됐다는 겁니다.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면서 북한이 극심한 체제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요. 그러면서 경제가 완전히 파탄이 나면서 대기근이 발생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북한 정권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한 수단으로 군대를 활용하게 됐고. 그게 바로 선군정치로 천명됐습니다.
박성우: 선군정치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오경섭: 선군정치의 목적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수령의 권력 안보를 실현하려는 것입니다. 수령의 권력 안보를 실현하면서도, 파탄이 난 북한의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한 것이 선군정치의 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두 가지군요. 군대를 동원해서 수령을 보위하고, 또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목적이 있었다는 말씀이신데. 논문을 읽어보면, ‘선군정치가 성공한 측면도 있지만, 실패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성공한 것은 어떤 측면이고, 실패한 것은 어떤 측면입니까?
오경섭: 선군정치의 목적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선군정치가 수령의 권력 안보를 실현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북한이 극심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약 1백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대기근 상황에서도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군대가 수령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됐기 때문이고요.
그런 과정에서 북한 정권은 핵무기 개발을 한결같이 추진했습니다. 핵무기 개발도 결국은 대내외적, 특히 대외적 위협으로부터 북한 정권을 지키겠다는 하나의 수단인데, 핵무기 개발에도 북한은 선군정치를 통해서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수령의 권력 안보를 실현한 대신에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 희생이라는 건 결국은 북한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에 급속히 북한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 만약에 북한 체제가 수령의 권력 안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개혁 개방을, 그러니까 인민 경제를 정상화하는 걸 목표로 설정했다면, 북한의 운명은 아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현재와 같은 극심한 기근과 식량난, 그리고 경제난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경제 위기 극복에 실패했습니다.
박성우: 선군정치가 성공한 측면에 대해서 좀 구체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선군정치가 김정일 체제를 보위하는 데 성공했다면, 김정일 체제는 정치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이제 안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요?
오경섭: 그 문제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점이 있는데요. 선군정치가 수령의 권력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령의 권력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장입니다. 북한의 계획경제가 무너지면서 인민들이 먹고살려고 시장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이 자연발생적으로 급격하게 빠른 속도로 확대됐는데. 이 시장을 통해서 정보 유통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거지요. 북한 내에서 CD를 흔히 ‘알판’이라고 부르는데. 이 ‘알판’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면서 남한의 드라마를 평양에 있는 사람들이 본다든지, 이런 일이 이제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내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한 모습이나 한국 사회의 모습이 빠른 속도로 유통되면서, 북한 김정일 체제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거죠.
특히 시장 활동 자체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활동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식이 상당 부분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점이 북한 체제의 안정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김정일 체제도 경제 위기 극복에 실패함으로써 결국은 상당한 위기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선군정치가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는데, 실패한 것은 경제 정상화였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경섭: 군대를 동원한 경제 정상화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임시적인 조치에 불과합니다. 북한의 경제 위기는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위기이고, 폐쇄 경제 때문에 발생한 위기입니다. 그래서 북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개방 경제로 나아가야 하고, 시장 경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이건 필연적인 과정인데,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했을 때, 그런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개혁 개방을 실현하면 수령의 권력이 무너질 수 있는, 위협받을 수 있는 요인이 매우 많아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개혁 개방을 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경제를 정상화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군대를 동원한 경제 정상화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 조치가 아니라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조치일 뿐이고, 군대가 사실상 최악의 상황에서 (경제가) 약간 호전되도록 하긴 했지만, 군대가 경제를 정상화한다는 건 원래부터 불가능한 목표였습니다.
박성우: 박사님 논문대로라면, 북한이 경제를 살리지도 못했고, 선군정치를 통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김정일 체제 옹위는 경제 위기 때문에 다시 약화하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북한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오경섭: 단기적으로는 선군정치가 수령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상당히 긍정적으로 이바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자면, 선군정치로는 수령의 권력 위기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북한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우리식 사회주의’ 노선을 폐기하고, 개혁 개방에 입각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논문을 쓰시면서 ‘감사의 글’을 쓰셨는데. 참 특이한 내용입니다. 자신의 개인사를 밝히셨거든요. 전북대학교 89학번이신데, 학생 운동을 하셨고. 학생 때, 주체사상을 신봉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북한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을 본 다음에, 북한이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북한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셨고, 그 다음엔 오 박사님처럼 소위 사상적인 전향을 하신 분들이 모여서 만든 계간지 ‘시대정신’에서 편집장을 하셨습니다. 이제 세종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게 됐는데. 어찌 보면 참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내신 것 같아요. 앞으로 세종연구소에서 어떤 분야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경섭: 네, 제가 세종연구소에서 하고 싶은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북한학이 학문적으로 발전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북한 연구는 기존 연구 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북한 문제를 좀 더 이론화하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저는 북한 인권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연구가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데 실천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을 하고 싶고. 그런 점에서 세종연구소는, 남북한 관계 연구실에서 많은 훌륭한 분들이 연구 활동을 해 왔는데, 사실 부족한 점은 북한 인권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영역임에도, 그 부분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미진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을 좀 보완할 수 있는 연구를 앞으로 지속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박성우: 알았습니다. 오 박사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신 점 축하하고요. 오늘 ‘만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 응해 주신 점도 감사드립니다.
오경섭: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