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군 경력 탈북민, 대북확성기 방송 듣고 “암묵적으로 함께 ‘흥얼’”
2024.06.13
앵커: 한국 정부가 북한의 거듭된 도발의 대응 수단으로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를 내세운 가운데 대북확성기 방송은 한국의 대표적인 대북 비대칭 전력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일 북한이 거듭 오물 풍선을 내려보냄에 따라 6년여 만에 대북확성기 방송을 잠시 재개했다가 현재는 이를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군 당국이 긴장이 고조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군 당국에 따르면 지난 9일 대북확성기를 가동한 시간은 단 두시간. 그 이후 몇 시간이 지난 뒤인 당일 저녁 김여정 당 부부장이 관련 담화를 신속하게 내놓은 바 있습니다.
한국 내에선 김여정 부부장의 이번 담화에 ‘해명’과 ‘변명’의 의도가 있으며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한 북한 체제의 취약성이 다시 드러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됩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13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결국 대북확성기 방송을 하지 말아달라는 숨겨진 뜻이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김여정이 그동안 남쪽으로 보냈던 담화 내용과는 달리 특이한 점이 발견돼요. 좀 변명조입니다. 내용이 상당히 해명조의 발언입니다. 우리가 보낸 것은 빈 종이일뿐인데 대한민국이 과도하게 대응했다, 자신들은 9일에 (조치를) 끝내려 했는데 확성기 때문에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변명과 어떻게 보면 책임 전가성 내용이거든요.
문 센터장은 이어 “대북확성기 방송은 한국에 있어 일종의 대북 비대칭 전력”이라며 “남북 접경에 있는,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군인들이 K팝, 한국의 대중가요 등을 듣는 것 자체가 북한 체제가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젊은 군인들의 동요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 지난 2001년에서 2002년까지 북한 측 강원도 중부전선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탈북민 백요셉 씨는 13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대북확성기 방송을 듣지 못하는 날에는 매우 아쉬웠다”고 말했습니다.
백 씨는 “전방으로부터 5km 후방 지역에서 근무를 섰는데 그곳에서도 대북방송이 잘 들렸다”며 “당시에는 ‘손에 손 잡고’, ‘사랑의 미로’와 각종 트로트 가요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백 씨는 당시 힘들고 무료했던 군 생활 속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그나마 유일한 낙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특히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끼리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민 백요셉 씨: 조심스럽긴 한데, 옆에서 흥얼거리면 암묵적으로 같이 흥얼거리는 게 있어요. 흥얼거리는 거는, 그걸 막을 수 없어요. 그냥 같이 흥얼거리게 됩니다. 서로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너도 (한국 노래) 알고 있지? 나도 알고 있어, 그리고 좋아해. 이런 무언의 시그널이거든요.
앞서 지난 2015년 재개됐던 대북확성기 방송의 경우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홍보하는 내용과 한국의 발전상, 민족 동질성 회복, 북한사회 실상 등을 다뤘습니다. 특히 당시 한국에서 유행했던 가수 아이유와 소녀시대, 빅뱅의 노래를 북한으로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난 2004년 6월 남북 당국 간 합의로 중단됐다가 지난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11년 만에 재개된 바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남북은 경색된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고 이를 통해 북한은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유감 표명 및 이산가족 상봉, 다양한 민간교류를 수용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듬해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함에 따라 한국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2018년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이를 다시 중단한 바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