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을 맡은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형수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한국에 입국한 후 지금까지 통일 교육에 앞장서고 계신 분이라고 하셨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김형수 씨는 2009년 2월, 45살의 나이에 탈북을 했는데요. 한 달 만인 3월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중국을 거쳐 거의 직행으로 한국에 온 거죠.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한국사회로 나온 것은 2009년 7월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형수 씨는 통일안보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요. 북한에서 거의 직행으로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북한의 사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에 강사로 초청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형수 씨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까지 나온 인텔리였습니다.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인 강의로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았고 기관들과 대학들, 그리고 교회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여러 곳의 초청을 받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통일교육 강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김형수 씨는 국내에서는 물론 20여 개 나라의 유명 대학에서도 통일교육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김인선: 많은 탈북민들이 통일교육 강의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다들 본업은 따로 있고 부업의 개념으로 강연 활동을 하더라고요.
마순희: 네. 형수 씨는 반대였습니다. 강연을 본업으로 하다시피 했고 경제 활동을 부업으로 하면서 한국 정착을 시작했습니다. 형수 씨는 북한에서 누렸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첫 걸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낮에는 운전 학원을 다니고 야간에는 일용직으로 지하철 안전장치 설치하는 일을 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이후에는 오토바이로 새벽 우유배달을 했습니다. 다시 낮에는 호텔조리제과제빵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양식,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틈틈이 통일안보 강사로 강의도 했습니다. 2010년 6월부터는 한국도로공사 협력업체에 취직해서 2년 동안 요금소 관리업무도 했는데요. 형수 씨에게 안보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회사에서는 그 시간을 무조건 보장해 줄 정도로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가 통일교육에 자부심이 생긴 이유
이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형수 씨는 한국에서는 취업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교육을 다시 받았고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대학원 공부도 시작했는데요. 통일교육을 다니면서 만나게 된 초, 중, 고등학생들이 통일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수 씨는 학생들을 보고 자신이 하고 있는 통일교육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사명감도 생겼습니다. 통일교육을 제대로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형수 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에도 매진했습니다.
김인선: 안보 강의는 큰 돈벌이가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본업에 더 충실한 분들이 많은데 형수 씨는 조금 달랐네요.
마순희: 네. 우리 탈북민들이 통일교육 강의를 하기 위해 가는 곳은 남한 전역입니다. 때로는 군부대에 가는 경우도 있지요. 1-2시간 강의하는 시간보다 집에서 오가는 시간이 몇 배로 더 걸리기 때문에 하루를 반납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본업이 있는 경우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휴가를 내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통일교육 강의는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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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씨는 ‘통일교육은 단순한 통일교육의 문제가 아니며 작고 사소한 것일 지라도 교육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형수 씨 스스로도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김형수 씨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를 졸업하고 흔히 말하는 만수무강연구소인 만청산 연구소에서 연구사로 근무하였던 분이신데요. 저 같은 사람들은 생각도 못 하는 생활을 했더라고요. 방학이나 휴가 때는 고향인 혜산에 오가면서 중국에서 들여온 라디오를 통해서 한국의 라디오 방송도 접했습니다. 저희 RFA 자유아시아방송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김형수 씨가 사명감이 강한 분이라고 하셨는데요. 북한에서 청취했던 방송 중에 저희 자유아시아 방송도 있었다는 말에 저도 사명감이 느껴집니다. 바깥 세상의 방송을 접하면서 탈북을 결심하게 된 건가요?
마순희: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탈북을 하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형수 씨가 탈북했던 2009년 당시 북한의 상황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제 2의 고난의 행군이 닥칠 거라 불안해 하고 있었고, 장사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앙에서부터 하부 말단에 이르기까지 사회 기조가 무너졌고, 불법이 성행하고 있었으며, 또 중국을 통해서 외부의 라디오나 영화 등 외부 정보가 많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김형수 씨는 1998년부터 대북방송을 접했다고 하는데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아파트 4층이었던 집을 단독주택으로 옮기고 천장을 통해서 비밀통로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형수 씨는 한국방송을 통해 점차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알게 되었고 불합리한 북한 사회와 인권 유린 등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소속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급변하게 되는 상황도 생겼고 더는 북한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탈북을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있는 브로커와 통화 중 보위부에 현행범으로 체포되게 되었고 모진 경험도 당했습니다. 대북방송을 들었다는 죄명으로 총살당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적도 있었기에 형수 씨는 살려면 보위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했습니다. 형수 씨는 보위원에게 탈북하기 위해 자금과 휴대폰을 숨겨놓았다는 말로 그를 집으로 유인했고 비밀통로를 통해 어렵사리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 길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향했고 브로커를 만났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면 브로커 비용을 전부 주기로 약정서를 써 놓고 위조 신분증을 받았고, 그 신분증을 이용해 배를 타고 대한민국에 입국했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후 통일교육 강의부터 시작한 형수 씨는 본업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담당 형사가 만류한 직업?
김인선: 앞서 형수 씨가 한국에 잘 정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부업을 하면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정말 열심히 사셨다고 했는데요. 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잖아요?
마순희: 네.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직업을 선택할 때 북한에서 해 봤거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유사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형수 씨의 경우 북한에서 연구소 일을 그만두고 7년 동안 식당 운영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 일을 하거나 본인의 식당을 창업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신변보호를 맡은 담당 형사님이 형수 씨에게 식당 영업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적극적으로 만류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본 것입니다. 그 형사님의 안목 덕분에 지금까지 김형수 씨가 통일교육 강의를 할 수 있는 겁니다.

형수 씨는 일상 생활에서도, 가정에서도 소홀함이 없는데요. 7살 귀여운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멋진 가장이십니다. 강의는 물론 인권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고, 북한에서 배워왔던 생명공학을 한국에서 보다 폭넓고 깊이 있게 배워서 연구소에서 근무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일반 사람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는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는 대비할 수도 없고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김형수 씨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모든 곳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착이라고 강조하는 김형수 씨에게도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있다고 하는데요. 하루속히 통일이 되어 2천 5백만 북한 주민들도 우리와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형수 씨만이 아닌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모든 탈북민들의 한결같은 염원인데요. 통일이 하루속히 오기를 함께 바래봅니다.
김인선: 많은 분들이 간절히 원하는 그 염원, 꼭 이루어지길 바라며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지금까지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