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오이와 수하물 지도원의 상관 관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에서 텃밭은 생계 유지에 큰 역할을 하죠. 그래서 지금이 중요한 때라고 하는데요. 손 기자, 장마당에서는 지금 텃밭에 심어야 할 모를 파는 매대 장사가 잘 된다고요?

봄 맞은 내륙 지방 장마당, 모판 장사 한창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날씨 기온 차이로 모를 파는 시기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평안도를 비롯한 내륙에서는 영양 단지 모 장사가 한창입니다. 호박과 오이, 고추 모 등을 커다란 함지에 담아 놓고 파는데요. 매일 아침 장마당 입구에 장사꾼들이 줄지어 앉아 새파란 잎들이 한들거리는 각종 남새(채소) 모들을 팔고, 그것을 사느라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이 마침내 남새 모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 풍경은 봄철 분위기를 느끼게 하죠.

남새 모 장사는 계절 장사이므로 시기를 놓치면 안 되거든요. 이 때문에 3월 중순부터 모 장사꾼들은 분주합니다. 씨 붙임에 필요한 모판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모판에 필요한 흙은 떡가루 치듯이 정성을 다해 보드라운 채로 쳐줍니다. 그 다음 미리 장만한 인분 가루를 흙과 섞어서 물로 반죽한 후 네모난 형태의 모판을 만들고 칼 끝으로 금을 그어주는데요. 이렇게 영양 단지 모판이 완성되면 남새 씨를 한 알, 한 알 박아 넣습니다. 그리고는 비닐 박막으로 남새 모판을 이불처럼 덮어주고 24시간 관리해 줍니다.

봄철이라 하지만 밤에는 온도가 내려가지 않나요. 살림집 마당에 만들어 놓은 남새 모판에 활창대를 꽃아 놓고 그 위에 씌워 놓은 비닐 박막 안으로 바람이 들지 않도록 저녁이면 박막 둘레를 흙으로 덮어주고 아침 10시면 벗겨주는 작업이 반복되는 이유죠. 이 작업이 쉽지는 않습니다.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한데요. 당에만 충성하느라 공장에만 열심히 출근하고 아내의 장사를 도와주지 않으면 부부 갈등이 일어나는 계절이 봄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그만큼 중요한 시기라는 얘기겠죠. 아무래도 키우기 쉬운 모 장사가 더 잘될 거 같기는 한데, 남새 종자도 장마당에서 많이 팔리나요?

손혜민 기자: 북한 장마당에 종자를 전문 파는 매대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옹기종기 그릇에 씨를 담아 놓고 장사꾼들이 앉아 있는데, 배추나 무, 오이 등 각종 남새 씨는 물론 강냉이와 수수 등 곡물 종자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깨알처럼 작은 씨는 작은 술잔에 담아 팔고, 강냉이나 당콩 종자는 고깔 모양의 종이에 담아 판매하거든요. 이 모든 종자는 개인이 생산한 종자도 있겠지만, 대부분 채종농장에서 넘겨 받습니다.

북한에는 국가 농업과학원에서 각종 종자를 연구 개발하는데요. 이렇게 개발된 종자는 내각 농업성 산하 종자감독국 원종농장에 공급됩니다. 원종농장에서는 그 종자를 농경지에 뿌려 대량으로 종자를 생산한 이후 채종관리국 산하 각 시, 군 채종농장을 통해 농장들에 공급하는 구조입니다. 아시다시피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채종농장도 자금난으로 운영이 어려워졌죠. 그렇다고 종자를 아예 생산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생산량이 적은 겁니다.

한편 국가에서 채종농장 간부나 농장원들에게 분배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니 이들 속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농장에 공급해야 할 종자를 시장으로 빼돌려 파는 행위가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유출된 종자가 장사꾼이 넘겨 받아 파는 건데요. 해마다 중국을 통해 종자를 수입하는 북한 농장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North Korean farmers spray fertiliser on cabbage crops at the Chilgol vegetable farm on the outskirts of Pyongyang, Friday, Oct. 24, 2014 in North Korea.  (AP Photo/Wong Maye-E)
북한 평양 외곽 칠골 채소 농장에서 북한 농부가 배추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북한 평양 외곽 칠골 채소 농장에서 북한 농부가 배추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AP)

북한 장마당에서 제일 잘 팔리는 남새 종자는?

진행자: 그렇군요. 그럼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종자나 모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한마디로 말씀드리기 어려운데요. 봄철에 심는 종자나 남새 모는 대부분 잘 팔리는데, 어느 것이 더 많이 판매되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금치는 감자나 강냉이를 심은 고랑 옆에 지금 뿌리면 4월 말부터 먹을 수 있지 않나요. 그래서 시금치 씨는 텃밭이 있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많이 삽니다. 시금치 씨를 쭉쭉 뿌려 놓으면 일주일 내 새파란 싹이 나고 잎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바로 솎아 먹는 게 시금치니까요. 반면 강냉이 종자는 간격마다 한두 알씩 심어야 하므로 많이 안 삽니다.

남새 모를 본다면, 텃밭을 관리하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고추를 좋아하면 텃밭에 고추 모를 많이 심고, 마늘 재배를 전문하는 개인의 경우 마늘을 수확하는 5월까지는 남새 모를 심지 않습니다. 그래도 줄호박은 심는데요. 줄호박은 텃밭이 따로 필요 없고 살림집 지붕과 창고 지붕 밑에 심어 놓고 장대만 세워주면 됩니다. 그러면 호박 모가 자라 줄을 타고 올라가면서 지붕에는 커다란 호박이 주렁주렁 10월까지 달리므로 주민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6월에 수확하는 앉은 호박도 있는데 개인 텃밭에는 심지 않고 남새 농장에서 주로 많이 심습니다. 최근에는 살림집 텃밭에 시금치나 강냉이보다 오이와 토마토를 심는 주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토마토는 과일로도 먹고 소금에 절였다가 장마철에 반찬으로도 요리해 먹으므로 일반 남새보다 가격이 비싸서 판매용으로 재배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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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오이, 함경북도에서 3배 비싸져

진행자: 그렇게 모판을 사다가 텃밭에서 열심히 키운 작물은 바로 장마당에 내다 파는 건가요?

손혜민 기자: 평안도에서 개인이 재배한 오이와 토마토는 전부 가족이 소비하는 것보다 장마당에 판매하는데요. 주민이 거주한 지역이 아니라 함북도나 양강도 장마당으로 유통하는 겁니다. 양강도와 평안도의 기온은 거의 두 달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 5월 중순 이후 평안도에서는 첫물 오이와 토마토가 나오지만 양강도 등 북쪽지역에는 오이 꽃도 피지 않죠. 따라서 세 배 이상의 차익이 발생합니다. 남새농장에서도 오이나 토마토를 북쪽 장마당으로 유통해 판매하는 이유이죠.

진행자: 오이가 북쪽 지역으로 가면 아주 비싸지네요. 북한에선 지역 간 주민 이동이나 차량 운행이 통제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평안도에서 함경북도까지는 어떻게 작물을 운반합니까?

2013년 9월 22일 나진항에서 러시아와 북한 간 철도 연결 재개 기념식이 끝난 후 북한군이 열차 근처를 걸어 가고 있다.
2013년 9월 22일 나진항에서 러시아와 북한 간 철도 연결 재개 기념식이 끝난 후 북한군이 열차 근처를 걸어 가고 있다. 2013년 9월 22일 나진항에서 러시아와 북한 간 철도 연결 재개 기념식이 끝난 후 북한군이 열차 근처를 걸어 가고 있다 (Reuters)

수하물 지도원 경쟁이 높은 이유

손혜민 기자: 북한의 교통시장이 발달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운임만 지불하면 기차든 버스든 운행 수단은 어디에나 있는데요. 특히 요즘은 콜 택시도 있어 이동은 문제가 아니죠.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물류를 움직이는 ‘짐쏘기 장사’까지 발달하면서 평안남도에서 오이나 토마토를 함경북도까지 운송하는 건 하루를 넘기지 않습니다. 전기만 공급된다면요. 여객 전무나 열차원을 끼고 오이 물량을 수하물 칸에 실어만 놓으면 해당 지역 상인에게 오이가 넘겨지고, 그 자리에서 대금이 이관됩니다.

진행자: 오이로 돈 버는 사람보다 열차원이 유통으로 버는 돈이 더 쏠쏠하겠는데요. 원래 하는 업무를 하면서 꽤 큰 부수입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는 그래서 열차 승무원보다 수하물을 다루는 수하물 지도원에 취직하는 뇌물이 더 비쌉니다. 그만큼 수입이 짭짤한 건데요. 열차 승무원도 지역과 지역 간 장사물품을 보내려는 상인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짐쏘기 물품을 날라다 주지만, 그 물품은 보따리 정도거든요. 여객열차는 좌석제로 운영되어 장사 물품을 싣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여객열차에 수하물 칸이 따로 있는데요. 여기에는 전문 수하물을 취급하는 화통이므로 앞서 언급된 오이나 토마토를 톤 단위로 싣는 것이 가능한 겁니다. 그만큼 뇌물 단위도 달라지는데, 그야말로 북한식 자본주의 시장의 단면인 겁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