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봄철 북한 서민 밥상이 텅 비는 이유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 장마당에도 밑반찬이나 김치를 파는 매대들이 있죠. 5월이 되면 반찬 매대들에 손님이 모여든다고 하는데요. 손 기자, 지금 이 시기에 어떤 반찬들이 잘 팔리는 겁니까?

봄 되면 밥상에 올릴 반찬이 없다?

손혜민 기자: 북한 장마당에서 반찬 상품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계절을 꼽으라면 봄철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5월은 반찬 수요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데요. 집집마다 장만했던 겨울 김치는 2월이면 동이 나고, 움에 묻어두었던 무, 처마 밑에 걸어 두고 국을 끓여 먹던 무 시래기도 4월 말이면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도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텃밭이 있는 농촌 사람들도 4월에 씨를 뿌린 시금치가 파랗게 자라긴 하지만 가족에 필요한 부식물을 해결할 정도는 안 됩니다.

산을 낀 곳에서는 산나물을 뜯어 반찬거리를 해결하겠지만, 도시 사람들은 남새(채소)를 전부 장마당에서 사야 합니다. 이에 따라 산골이나 농촌보다 지방도시에 자리한 장마당에 무 염장부터 무 말랭이, 마른 미역, 물 미역, 건뎅이(곤쟁이) 젓갈 등 국거리와 반찬 재료를 쌓아 놓고 장사하는 상인이 늘어나는데요. 산과 들, 바다에서 나오는 반찬 재료의 최종 도착지가 장마당이어서 상인들은 각자 재량에 따라 반찬 재료를 조달한 이후, kg으로 팔든 되박으로 팔든 가장 빨리 판매되는 방식을 선택해 소매 장사에 나서는 겁니다.

요즘 장마당에서 거래가 가장 많은 상품 중의 하나가 반찬거리다 보니 콩나물 장사도 유난히 많아지고 있는데요. 시루 밑에 깔아 놓은 면천에 싹 트기 시작한 콩 한 되박을 쭉 펴놓고, 1시간에 한번씩 물을 듬뿍 주면서 담요를 씌워 온도를 보장하면 콩나물이 쑥쑥 자라는데요. 이렇게 자란 콩나물을 봉지에 넣고 팔면 장마당에서 옷을 팔거나 신발을 팔던 장사꾼들이 퇴근할 때 사들고 가므로 본전을 뽑고도 수익이 꽤 나옵니다. 일부 주민들은 콩나물을 단기간 빨리 기른다며 요소 비료를 연하게 물에 타, 그 물을 콩나물에 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북한식 건뎅이(곤쟁이) 젓갈 요리법

진행자: 그러니까 지금 팔리는 반찬은 대부분 절임이거나 몇 가지 남새가 있는 정도네요. 그래서 더 비쌀 거 같은데 봄철 반찬 가격은 어떻습니까?

손혜민 기자: 맞습니다. 봄철 반찬은 무 염장이라도 수개월 저장했다가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싸지는 않습니다. 현재 평안북도 정주 장마당에서 무 염장 1kg 가격은 2천원(0.08달러), 바다에서 수확하는 햇 물미역은 1kg 4천원(0.17달러)입니다. 또 건뎅이 젓갈도 1kg 가격은 5천원(0.21달러), 무 말랭이 1kg에 6천원(0.26달러)이라고 합니다. 4인 식구 한끼 식량이 옥수수 1kg인데, 장마당에서 옥수수 국수 1kg 가격은 5천원입니다. 장마당 장사가 여의치 않으면 반찬을 사 먹기가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소득에 따라 구매하는 반찬 재료가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면서 오래 먹을 수 있는 무 말랭이와 무 염장을 많이 사고요. 그 다음 건뎅이 젓갈이라고 하네요. 건뎅이 젓갈은 그대로 먹으면 좋겠지만, 조금 더 아껴 먹기 위해 옥수수 가루나 밀가루를 고루 섞고, 거기에 소금을 넣어 짭짤하게 간을 맞춰 가마에 찐 다음 온 식구가 몇 끼 먹는다고 합니다. 중산층 정도면 동해바다에서 지금 한창 어획하는 청어, 이면수 등을 구매해 반찬으로 먹거나 물 미역으로 국을 끓여 먹습니다.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반찬 재료 중에 인조고기(대두박 가공식품)나 두부도 있지만, 일반 주민에게는 어쩌다 한번 사 먹습니다.

2024년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강동 온실을 방문하고 있다.
2024년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강동 온실을 방문하고 있다. 2024년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강동 온실을 방문하고 있다. (Reuters)

온실농장이 북한 주민 생계에 미치는 영향

진행자: 반찬 가격도 만만치가 않네요. 그런데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신선한 남새(채소)를 제공하겠다며 온실남새농장 여러 곳을 선전하고 있죠. 지난 3월에는 강동종합온실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일부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당국이 남새 생산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도 주민들의 밥상에는 별 변화가 없는 이유가 뭘까요?

손혜민 기자: 김정은 총비서의 역점 사업으로 준공되어 운영되는 초대형 온실농장에는 함주군 연포온실농장, 강동온실농장이 있습니다. 올해 또 다시 평안북도 신의주와 의주에 지금까지 준공된 온실농장 중에 규모가 가장 큰 온실농장이 착공되었는데요. 계속 건설되는 온실농장이 누구를 위한 농장이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죠. 2022년 10월 준공된 연포온실농장을 본다면, 이 농장은 동부전선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공군 부대와 동해함대 등 전투부대의 후방기지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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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연포온실농장이 자리하고 있는 함경남도 주민들은 이 농장이 들어서며 밥상에 오르는 반찬 문제가 풀린 게 아니라 남새 장사만 망했다고 토로합니다. 국가에서 온실농장 운영에 필요한 자재를 공급하지 않으니 농장에서는 각종 남새와 과일을 지역 장마당으로 유통하고 있어 개인이 남새장마당에서 밀려난 겁니다. 2024년 3월 준공된 강동온실농장도 평양을 보위하는 군부대와 평양시민들을 위한 후방기지 아닙니까. 체제 안전과 유지를 위해 운영되는 농장이 국가적 사업으로 계속 건설되니 주민들은 당연히 수뇌부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 쌓이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국영공장, 국영 상점까지 반찬 장사를 하고 있으니 주민들의 감정이 어떻겠나요.

북 당국, 반찬 장사마저 독점

진행자: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상점에서 반찬 파는 걸 사진으로 보긴 했는데, 그럼 반찬 장사를 하는 개인이 국가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손혜민 기자: 네. 반찬 장사는 개인만 하는 게 아닙니다. 개인이 주로 장마당에서 반찬 재료를 판다면, 국영 상점에서는 주로 요리한 반찬을 판매합니다. 국영 상점도 반찬 수요가 많은 계절을 외면하지 않고 갖가지 반찬을 만들어 장마당에 공급하고 있는데요. 평양을 비롯한 지방도시마다 자리하고 있는 식료상점에는 반찬 매장이 따로 꾸려져 있고, 여기에 양념을 넣고 요리한 반찬들이 포장되어 시장가격으로 판매됩니다. 상점 공간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서 이동봉사 매대를 차려놓고 반찬을 판매하는 상점이나 봉사소도 늘어나는 추셉니다.

평양 광복백화점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북한 주민들
평양 광복백화점 슈퍼마켓 2017년 6월, 평양의 광복백화점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이 북한산 식료품을 고르고 있다. (AFP)

국영공장은 조금 더 수준이 높은 반찬 장사 단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앞서 언급한 장마당에서 개인이 팔고 있는 건뎅이 젓갈을 사례를 든다면, 볼 만합니다. 국영공장에서는 수산사업소에서 건뎅이 젓갈을 톤으로 넘겨 받아 가공해 파는데요. 그 종류를 본다면, 매운 맛 건뎅이젓, 깻잎 건뎅이젓, 풋고추 건뎅이젓 등이 있죠. 이것을 200~500g 단위로 비닐통에 포장해 파는데, 장마당 가격과 차이가 없습니다. 깻잎 건뎅이젓 한 통(300그램)에 5천원인데요.

특히 장마당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반찬 재료가 무 염장 아닌가요. 무 염장은 보통 개인이 봄철 장사 품목으로 가을에 담그는 건데요. 10월 말이면 무를 수확하는 계절이어서 가격이 싸거든요. 무를 톤으로 산 후, 마당에 땅을 파고 비닐 주머니에 돌기 돌기 무를 깔고 소금을 뿌려 파 묻은 후, 3월에 개봉해 장마당에 판매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마저 국영공장에게 뺏길 판인데요. 대표적인 사례로 평안남도 순천에 장아찌 공장이 신설되었습니다. 공장이 직접 개인이 하던 방식 그대로 무를 절였다가 포장해서 파는데,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지 장마당 상품과 동일한 겁니다. 국가가 민생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할 망정 공권력으로 장마당 상품을 독점하는 현상은 없앴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행자: 무상으로 배급을 하진 못해도 당국이 높은 시장가격으로 반찬까지 팔면서 개인 장사꾼이 설 자리마저 빼앗고 있다니 올 봄 북한 주민들 밥상이 더 걱정입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