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로 보는 북한] 축구장 490개 면적에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

진행자 :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바로 청취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북한입니다. 내부 문서를 통해 오늘의 북한을 만나보는 [문서로 보는 북한] 진행에 안창규입니다. 오늘도 김지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기자 : 안녕하세요.

새로 지어지는 지방 공업 공장, 지나치게 큰 이유?

진행자 : 지난 시간에 이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탁월한 사상과 령도로 지방중흥의 거창한 새시대를 열어놓으신 위대한 인민의 어버이이시다”, 4월 강습 제강 다뤄봅니다.

지난해 12월,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첫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이 열렸고 북한 언론이 요란하게 보도했습니다. 겉모습만 봤을 때 공장 자체는 잘 지어 놨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지은 기자 : 네, 해당 보도, 저도 봤습니다. 성천군 공장 준공식 같은 경우 김정은 총비서가 착공식, 준공식 모두 참석했는데요. 20개 군에 착공한 공장 중에 성천군을 계속 부각하는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선전 때문입니다.

북한에는 ‘소리통’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속은 하나도 없고 소리만 요란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데, 지방발전 20x10정책을 둘러싼 보도는 전형적인 ‘소리통’으로 보입니다.

지방발전20x10정책 지방공업공장
지방발전20x10정책 지방공업공장 지방발전20x10정책으로 2025년 완공된 북한 지방공업공장 (노동신문)

진행자 : 북한 관영 매체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공장이 다들 멀끔한 외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몇 만 명 정도의 작은 군에도 꽤 큰 규모의 공장이 세워진 것이 사진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심각한 전력 부족이 수십 년 째 계속되는 북한에 이렇게 많은 공장이 필요한가? 이렇게 규모가 큰 공장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원료, 자재는 어떻게 보장할까? 똑같은 명칭의 공장을 전국에 다 세울 필요가 있을까? 이런 의문은 계속 제기되고 있죠.

김지은 기자 : 우리가 지적하는 부분을 북한 주민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겁니다.

학습 제강에는 “지방발전 20x10 비상설위원회가 중앙과 도들에 조직되여 설계로부터 자재와 자금보장, 원료기지 조성사업에 이르기까지 지방공업공장건설과 운영 준비와 관련한 모든 사업을 통일적으로 장악지휘하는 정연한 사업체계를 세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비상설준비위원회’는 실상 정책을 실현하라고 독촉하는 기관인 셈이고 이에 녹아나는 것은 주민들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공장들의 생산 정상화가 언제 시작하는가를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공장이 무엇을 생산하는 공장인지 밝히지 못하는 것을 보면 실질적 생산 체계는 아직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20x10정책’ 지방공장 부지에 농경지 희생하고 ‘새 땅’ 찾기 중

진행자 : 꾸준히 제기된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위성사진 분석 결과 ‘20x10정책’에 따라 전국에 공장을 지으며 상당수의 농경지를 희생시켰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올해도 20개 시, 군에 공장이 건설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대부분 단지 규모가 1만 5천~2만 제곱미터입니다. 전국 200개 시, 군에 이 같은 규모의 공장이 모두 완공되려면 축구장 490개 규모의 땅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요. (공장 건설 면적 평균17,500㎡ × 200개 공장 = 3.5㎢ )

1970~80년대부터 북한은 농경지 확장을 위해 ‘새 땅 찾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고 이 캠페인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한쪽으로는 ‘새 땅 찾기 운동’을 통해 농경지를 확장하고 한쪽으로는 지방공장 건설로 농경지가 희생되고 있는데 참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지은 기자 : 총비서가 발기한 정책이니 어느 산골 깊은 골짜기에 지을 수도 없으니 시, 군들의 가장 좋은 부지 면적에 건설하겠죠. 결과적으로는 농업 부지 축소와 식량 생산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도 당국은 강연회를 통해 “어느 지역의 누구는 새땅 찾기로 1,500평을 나라에 바쳤다고 한다”고 주민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만 북한의 토지는 모두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뙈기밭을 일궈도 사실상 불법인데 어떻게, 어디서 그렇게 많은 땅을 찾았을까요?

​이런 사람이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강연 제강의 모범 사례로 등장하는 것도 역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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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문서에는 이번 정책이 지방 특히 농촌과 도시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추진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만드는 불평등의 심화와 지방 주민의 불만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김지은 기자 :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지방 주민들이 평양과의 차이로 인해 느끼는 불만은 오래전에 형성된 편향입니다. 일반 주민뿐이 아니라 간부들도 마찬가지죠. 지방 간부들은 평양시 간부들과 대비할 수 없는 대우를 받습니다.

문서에서지방발전의 의의”를 소개하며 이번 정책이 “력사에 있어본 적 없는 거창한 혁명강령”으로 “우리 인민은 지역적 차이는 있어도 당과 국가의 보살핌에는 절대로 차별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깊이 절감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지금 평양은 물론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막바지 산골의 인민들 속에서도 우리 생활이 좋고 우리제도가 좋으며 우리 당정책이 좋다는 목소리가 높이 울려나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소가 웃다 꾸러니 터질 일”

그러나 주민들로서는 ‘소 웃다 꾸러니(옆구리) 터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적 차이를 없애려면 지방에 공장을 지을 것이 아니라 우선 평양과 지방과의 이동을 개방해야 합니다. 마음대로 오갈 수 없게 해놓고 어떻게 지역적 차이를 없앤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대부분의 주민들이 평생 평양을 가볼 수 없습니다. 국가적 행사에 초청되거나 평양에 친인척이 있어 초청장을 받고 승인번호를 발급 받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평양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고 최근 평양 방문 자격은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또 문서에서는 “당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인민생활 문제, 제일 고심하는 것도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 시대, 김정일 시대, 김정은 시대를 거쳐 80여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입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어떤 감흥이나 감동을 주지 못할 뿐 더러 오히려 외면받고 있는 겁니다.

2025년 4월 학습제강
2025년 4월 학습제강 북한은 2025년 4월 강습제강에서 지방발전20x10정책이 지방과 수도의 차이를 없애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RFA-김지은)

북한 당국이 과거의 정책을 새로운 것처럼 포장해 선동하는 방법으로는 더 이상 주민들을 속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혁명의 가장 어려운 난국을 헤치며 고난과 역경을 승리에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그 고난은 김정은 자신이 자처한 것임을 주민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한때 김정일 시대에 국경을 개방한 이후 주민들의 생활이 일제히 좋아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도 어떤 정책이 인민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학습했습니다. 지금 국경을 닫아 걸고, 지방에 공장을 지으며 인민을 위함이라는 정치선동을 계속해도 소식통이 전하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계속 김정은의 치적을 강제로 선전하며 선동에 매달리는 것이겠지만 최고의 방법은 주민들이 알아서 살 수 있게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일 겁니다.

진행자 : 1990년대 강성대국의 문이 열린다는 북한 당국의 허황한 선전처럼 20x10 정책도 10년 뒤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고 다시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정책으로 대체되지 않을까요. 비관적 전망이지만 지금까지 북한 김씨 정권의 역사가 그렇게 해오지 않았습니까?

김지은 기자 : 당시에도 주민들은 대국은 무슨 얼어빠진 대국이냐, 밥이나 굶지 않고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죠.

당국은 문서에서 “이번 정책이 그 어느 나라도 해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도시-시골간 격차’라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부흥 강국의 내일을 앞당겨 온다는 게 새시대 지방발적정책이 가지는 거창한 변혁적 의의”라고 주장합니다.

한국과 다른 나라는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다 해결된 지 오래입니다. 평양만 전기가 오고 지방은 깜깜한 나라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평양만 난방이 조성되고 농촌은 볏짚을 때고 옥수수 대를 때서 취사와 땔감을 해결하는 곳이 북한 말고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양강도 혜산 주택가
양강도 혜산 주택가 2011년 10월, 양강도 혜산 주택가. 아궁이에 불을 때 나오는 하얀 연기가 주택의 지붕 굴뚝으로 나오고 있다. (Reuters)

또 다른 국가들은 도시와 수도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거주의 자유도 있습니다. 한평생 농촌을 벗어나고 싶어도 절대로 대대손손 벗어날 수 없게 제도적 장치가 있는 나라도 오직 북한뿐입니다.

북한 당국은 “그러니 모든 당원, 근로자들은 잘사는 내일에 대한 확실을 안고 지방발전계획에 떨쳐나서 달라”고 당부하며 문서의 끝을 맺는데… 북한이야말로 지방과 수도가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평양 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죠. 적어도 평양을 위해, 통치자를 위해 지방의 모든 주민이 희생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지방과 수도의 차이를 근본적인 대안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 ‘지방 발전 20x10 정책’이 실현되어 북한에서 평양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얼마나 줄어들지 모르겠지만, 아직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은 것을 놓고 김정은의 발기니, 업적이니 하면서 우상화에만 몰두하는 것도 반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선전, 선동이 아닌 진정으로 평양과 하늘땅 차이를 보이는 열악한 지방과 지방 인민을 위한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김지은 기자 수고했습니다.

김지은 기자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지금까지 진행에 안창규였습니다.

에디터: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