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바로 청취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북한입니다. 내부 문서를 통해 오늘이 북한을 만나보는 [문서로 보는 북한] 진행에 안창규입니다. 오늘도 김지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기자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지난주부터 강연제강 ‘우리의 미더운 녀자축구선수들이 진한없는 애국열의를 안고 위대한 우리 국가 존엄과 영예를 금메달로 높이 떨친 데 대하여’ 를 다뤄보고 있습니다.
김지은 기자 : 네, 신용철 체육성 축구련맹 위원장의 이름으로 작성된 문건으로, 2024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 u-20, 20살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어떻게 북한이 우승컵을 거머쥐었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지난 시간 방송 이어가겠습니다.
김 기자님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이라는 북한 여자 축구 선수들에 대한 기록 영화가 있습니다. 2009년, 2023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오스트리아 여성 영화감독 브리기트 바이히 작품인데요. 이 감독은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여자 축구를 키우게 된 발단이 ‘1986년 멕시코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1986년 FIFA 총회에서 노르웨이 출신의 엘렌 빌레가 여성 최초로 FIFA 연단에 올라, 여자 축구가 FIFA 보고서의 반 페이지에 불과할 정도로 외면 당한다고 분노를 쏟아 내며 여성 월드컵 창설을 요구했고 그 자리에 있던 북한 대표단이 이와 관련된 계획을 갖고 김정일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김 기자, 이 문건에서는 김정은이 여자 축구를 키웠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 북한 여자 축구는 김정일 시대부터 전략적으로 키워온 면이 크지 않습니까?
김지은 기자 : 그렇습니다.
북한은 1980년 후반부터 여자 축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90년대 초반, 여자 대표팀이 국제 대회에 출전했고 1993년 FIFA 여자 월드컵 예산에도 참가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잘 하는 팀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1년, 2003년 여자 아시안컵에서 연속 우승을 하면서부터 입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여자 축구에 대한 투자는 계속돼, 대북 제재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도 축구만은 지원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왜 여자 축구만 잘하나?
진행자 : 과거 북한은 여자 축구, 여자 권투(복싱), 여자 역기(역도) 등 체력 소비가 많은 중경기에 여성이 출전하는 걸 굉장히 비판했습니다. ‘썩고 병든 자본주의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논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여자 축구, 여자 권투를 비롯해 그렇게 비난하던 대부분의 여자 체육 종목을 적극 장려하며 대중화 했습니다. 그렇게 비난 하더니 다 따라하는 모습을 보며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다른 국가에서는 남자 축구가 여자 축구에 비해 팬도 많고 운동 경기로 흥행도 됩니다. 또 축구 운동선수로 성공하면 몸값도 비싸고 선수가 받는 돈도 천문학적 수준이죠. 반면 여자 축구는 약간 소외된 종목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성공이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말하자면 남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틈새 시장을 노린 셈이죠.
그런데 북한 축구는 남자보다는 여자, 여자 축구 중에서도 성인보다 압도적으로 유소년 축구가 더 잘합니다.
김지은 기자 : 북한의 성인 여자 축구는 대회에서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1991년 중국 대회부터 2023년 호주-뉴질랜드 대회까지 총 9차례 열린 여자 월드컵에서 본선엔 진출했으나 결국 입상을 못하는 실정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은 어린 나이부터 선수들에게 엄격한 훈련을 실시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른 나라에서 10세 미만의 아이들을 북한처럼 혹독하게 훈련시키면 아동학대라는 지탄을 받게 될 겁니다. 북한 여자 축구 선수는 보통 유치원 때부터 선발합니다. 7살부터 선발된 선수들을 지방에서 연습 시켜 11살에 평양으로 데려갑니다. 그때부터 어린 선수들은 집단 생활을 하며 훈련을 줍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독재자 한 사람의 명성을 위해 가혹하게 길러진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 성인 축구가 오히려 유소년보다 떨어지는 건 전술적 한계 특히 국제 대회 출전 경험 부족 등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 지금 김 기자도 지적했지만 북한의 스포츠는 철저한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입니다. 북한의 여러 체육 선수단 중 가장 대표적인 선수단은 4.25 체육단으로 군 소속이고 복장도 일과도 군대처럼, 경기도 전쟁처럼 합니다.
문건에서도 “평화 시기에 적들과 총포성 없는 전쟁을 하는 것이 바로 체육이다”라고 언급한 대목이 나오는데요. 이 논리라면 북한과 경기를 하는 나라는 다 북한의 적이라는 건데 참 고약하고 이상한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압박 때문에 2011년 도이췰란드 여자 월드컵에서는 북한 선수들이 금지 약물 복용한 것으로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벼락 맞아 한약 먹은 북한 선수단’ 2011년 도핑 양성
김지은 기자 : 도핑 문제로 북한 여자 축구 선수단은 다음 대회인 2015년 미국 대회 참가 금지하는 중징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매체들은 여자 대표팀이 2011년 여자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는 사실만 짧게 언급했을 뿐, 도핑에 대해서는 일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내부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음해라고 주장했을 겁니다.
진행자 : 김 기자, 도핑에 걸렸을 당시 북한의 해명이 기억납니까? 해명이 더 기가 막힙니다.
북한 관계자들은 월드컵 개막 직전, 북한 내 훈련장에 번개가 쳐, 5명의 선수가 벼락을 맞았고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한약을 먹었는데 여기에 노루 사향을 비롯한 약초 성분 때문에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습니다.
김지은 기자 : 보약 같은 것을 복용 시켰을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기력이 떨어지면 안궁우황환이나 아편 같은 것을 주로 사용하는데요. 그렇지만 세계 대회에 출전시키는 입장에서 한약제가 도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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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문건에선 ‘적들에게 주체조선 녀성체육인들의 본때를 단단히 보여주었다는데 이번 승리의 의의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최근에는 김정은 자체가 연설에서 ‘국위선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풀어말하면 나라의 위상을 높이 떨쳤다는 의미입니다. 재밌게도 이 표현은 남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승리는 열심히 싸운 선수 땀의 결과입니다. 국가의 승리가 아니죠.
김지은 기자 : 이 문건에는 ‘짜증’이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이 또한 북한식 표현은 아닙니다.
이 문건에서 잘 보여주듯 여자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닙니다. 국가의 존엄과 자존심을 건 ‘총성 없는 전쟁’이며 북한의 여자 축구 선수들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전사’입니다. 또 이들의 승리는 주민들에게 뭐 하나 줄 것 없는 북한 정권이 그나마 줄 수 있는 자긍심입니다.

여자 축구, 김정은의 빛나는 선전 도구
또 남북 분단의 비극은 역설적이게도 북한 운동 선수들의 비상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스포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체제 경쟁의 장이 됐습니다. 특히 축구는 국제 무대에서 서로 부딪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북한으로서는 우승의 결과가 김정은을 선전하기에 최적의 수단이 되는 겁니다. 또 다른 종목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는 북한이 17세 이상 20세 이하 여성 축구 선수들을 내세워 김정은의 위대성을 선전하고 체제를 선전하는 상황인 겁니다.
다른 종목에서도 한국처럼 골고루 우승을 하는 그런 체육으로 발전한다면 그야말로 국가의 자긍심, 국력으로 칭찬할 일입니다. 그러나 체육을 체육이 아닌 전쟁으로 간주하여 김정은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우승했다는 이런 선전이 앞으로 과연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요.
진행자 : 가끔 TV에 남북 간 체육 경기 소식이 보도될 때가 있습니다. 김 기자님은 보통 어느 쪽을 응원하나?
김지은 기자 : 참 애매합니다. 선수들을 응원하지만 우승을 한다고 해도 그게 어디 선수들의 공이겠습니까.
진행자 : 저도 같습니다.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지만 동시에 응원하지 않기도 합니다. 응원하는 이유는 경제난 등 어려운 환경에서 그들이 흘린 땀과 노력이 값질 수 있도록 또 경기에 지는 경우 귀국 후 그들의 안전이 걱정되기 때문이고 반대로 응원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세운 공이 다 김정은의 공로로, 김정은의 은덕으로 와전돼 주민 우상화 선전에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정말 싫죠.
앞으로 북한 경기를 볼 때 이런 걱정 없이 순수 선수들의 수고와 성공을 응원하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 방송을 마칩니다. [문서로 보는 북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김지은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김지은 기자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안창규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에디터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