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경상남도 거제에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입니다. 저는 영화나 드라마 보는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퇴근 후나 주말에 집에서 새로 나온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좋아하는 휴식 중 하납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한국 영상물 시청이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최근 들어 통제와 처벌이 더 강화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북한 사람들은 이제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아예 못 보고 있는 건가요? 외부 영상을 못 보면 대체할 수 있는 북한 콘텐츠는 뭐가 있나요?”
참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 북한입니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보면서 즐거움과 위안을 느끼고 싶을 뿐인데, 그마저도 막고 있는 겁니다.
북한은 지난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면서 외부 콘텐츠, 특히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이 법은 반동적이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을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불법 영상 시청자에게 최대 15년의 노동교화형(징역형), 유포자 및 밀수업자는 사형을 포함하는 강력한 처벌 규정이 명시돼 있고, 자녀가 외부 콘텐츠를 접한 경우 부모에게도 연좌제를 적용하는 등의 처벌 규정을 명문화, 세분화 시켰고 무엇보다 처벌의 수위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걷다가도 붙잡혀 단속되는 외부 콘텐츠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실제로 길을 걷다가도 개인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할 만큼 북한 내부 분위기는 살벌해졌고, 북한 주민들은 언제든 단속반에 의해 휴대전화나 USB 검색을 통한 외부 콘텐츠 탑재 여부를 검열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상황이 한국에도 전해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안위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하는 분들이 한국에도 많아졌는데요. 한켠으론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정말 외부 영상물을 안 보고 있는가? 그들은 대체 무엇을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질문에 바로 답을 드리자면 일단, 철저한 단속과 수위 높은 처벌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한 주민들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등을 완전히 끊고 보지 않는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북한 사람들은 ‘한국드라마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고 얘기할 만큼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는 것을 넘어 사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함경북도와 량강도, 신의주 등을 비롯한 중국과 가까이 있는 지역들의 경우는 외부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더 높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평안도, 자강도 황해도 지역은 접촉 빈도가 낮다고 볼 수 있죠.
연령대별로도 차이가 있는데요. 호기심이 풍부하고 욕구가 넘치는 젊은 세대의 경우는 어떻게든 감시의 눈을 피해 영상물을 이어보려고 하는 의지가 있지만,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의 경우는 혹여 자식한테까지 피해가 갈까 우려해 영상 시청을 멀리하는 경우도 많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특히 평양의 경우는 자칫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걸릴 경우 ‘평양 추방’이라는 그들에겐 치명적인 불명예와 함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어른들의 자녀 단속도 더 강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질문있어요] 최근 북한 가족과 연락이 잘 되고 있나요?
숨죽이며 몰래 시청을 이어가는 경우에도 예전에 비해 그 방법이 훨씬 더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과거처럼 노트북이나 TV로 보는 대신 USB나 SD카드를 이용해 짧게 시청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고, 여러 명이 모여서 보던 분들도 이제 가족 단위나 아주 가까운 사이를 제외하고는 휴대용 디지털 기기인 노트텔, 태블릿 등을 활용해 혼자 몰래 시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 당국, 자체 콘텐츠 개발하려 안간힘
상황이 이 정도라면 북한 주민들은 쉬면서 도대체 어떤 영상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려야 할 텐데요. 북한 당국 역시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전 개봉한 북한 영화 ’72시간’은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 아래 수년에 걸쳐 완성됐다며 북한이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영화인데요. 6.25전쟁 발발 전 3일 동안의 남북 정세를 풀어내는 체제선전 영화긴 하지만 그 안에 젊은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 화려한 전투 장면 등을 넣어 총 4시간짜리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K팝을 차단하는 대신 모란봉 관현악단의 공연 등을 담은 알판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등 북한 당국은 외부 영상물을 대체할 자체적인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결론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강력한 통제 속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방법을 통해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는 걸 보면 북한의 외부 콘텐츠 차단 정책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짧게나마 답이 됐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