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위축되는 북한 시장] ③ 시끌벅적한 시장, 다시 볼 수 있을까?
2024.12.10
앵커: 북한 시장의 물가 급등, 일용직 노동자의 증가 등에서 김정은 정권의 시장 통제 강화를 엿볼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는 분석합니다. 또 장사를 접은 상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일용직으로 몰리면서 하루 임금의 단가도 많이 낮아졌다고 하는데요.
한편, 시장 활동 대신 기업소나 직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북한 당국의 시장 통제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결국,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RFA 특집, 위축되는 북한 시장] 세 번째 순서로 천소람 기자가 북한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김정은 정권의 의도와 파장을 짚어봤습니다.
물가 급등에서 시장의 위축 엿볼 수 있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하루 일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아도는 노동력이 많아지면서 노동 단가 자체도 많이 내려갔다.”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최근 (11월 2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한 내용입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북한 내부 취재 협조자를 인용해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 당국의 통제와 단속이 강화하면서 시장 경제가 위축했고, 현금 수입이 줄어든 주민들의 생계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일용직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장마당 운영 시간을 3시간으로 제한하고, 45세 이상 여성만 시장 활동을 허용하는 등 통제의 고삐를 더욱 죄기 시작한 김정은 정권.
특히 북한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정황은 급격히 오르는 북한 물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이 위축되면 장사가 원활치 않고, 사람들의 현금 수입이 줄어들어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물가는 낮아집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통제 강화로 공급은 제한적인데, 수요는 여전하기 때문에 물가 상승을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입니다.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시장에서 자릿세를 내고 장사하는 상인들은 쌀과 옥수수 등 곡물 자체를 사고팔 수 없고, 국가에 등록하지 않은 상품, 이른바 바코드(상품 관리를 위한 막대 코드)가 없는 물건을 판매하면 단속 대상이 되면서, 거래할 수 있는 품목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임송 한국은행 북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도 최근(11월 29일) RFA에 식량 가격 상승에서 북한 시장 경제의 위축 현상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임송] 기본 전제조건은 시장에 공급되는 제품, 그리고 유통 과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게 되면 결국, 시장에 공급되는 제품이 결과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거예요. 단적인 실례로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고 하면 단속을 하잖아요. 팔지 못하게 된 제품을 몰수하고 회수하게 되면 상인들은 그냥 앉아서 뺏길 수는 없으니, 뇌물을 주고 다시 찾아와서 팔죠. 그렇게 되면 뇌물이 소비자 판매 가격에 반영되면서 가격 상승이 되는 거죠.
실제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2020년 1월과 최근 식량 가격을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아시아프레스’가 제공한 북한 시장 물가에 따르면 2020년 1월 9일, 백미 1kg의 가격은 북한 돈으로 4천600원(약 0.16 달러), 옥수수 1kg은 1천600원(약 0.06달러)이었지만, 2024년 11월 29일 현재 백미 1kg은 9천400원(약 0.34달러), 옥수수 1kg은 4천300원(약 0.15달러)으로 각각 2배 이상 뛰었습니다.
장사 그만둔 주민들,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유지
‘아시아프레스’의 양강도 취재 협조자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탕 과자 매대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개인이 집에서 사탕 과자를 만들어 시장에서 팔거나 도매로 거래하곤 했는데, 이제는 당국이 국영 식료품 상점에서 거래하도록 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개인이 생산한 제품도 국영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라고 지시할 만큼 통제가 강화하면서 장사를 접은 주민들이 일용직 노동자로 나서고 있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장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하루 노동, 그러니까 일용직 노동직으로 나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졌다고 합니다. 남녀 가리지 않고 일용직 노동으로 하루 벌이를 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아졌고, 그런 노동력이 늘어나면서 노동 단가, 그러니까 하루 노임 자체도 많이 내려갔다고 합니다.
또 공사 현장의 단순노동은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는 하루에 북한 돈으로 약 1만 원에서 2만 원까지 받았는데, 최근에는 5천 원에서 7천 원 정도로 내려갔다며, 이마저도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 경쟁이 심한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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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이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무질서한 시장화와 개인 경제 활동 규제
많은 전문가는 북한 당국이 무엇보다 시장 경제에 대한 주도권과 장악력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분석합니다.
공식 시장에서 자릿세를 내고 장사하는 주민 외에도 골목시장, 메뚜기 시장, 매탁시장 등 비공식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함에 따라 체제 안정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이를 통제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전체주의 통치를 하기 위해서 ‘개인 경제 활동, 시장 경제 확대는 위험하다, 위험한 요소다’라는 경계심이 굉장히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 경제 활동이 확대할 경우 인민과 사회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강하다는 게 의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종규 한국개발연구원(KDI) 글로벌·북한경제연구실장도 최근(11월 29일) RFA에 비공식 시장의 확대로 통제의 필요성을 느낀 북한 당국으로서는 코로나 대유행이 좋은 기회로 작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종규] 그동안 무질서한 시장화에 대해 북한 정권 차원에서 큰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북한 당국은 아마 무질서한 시장화를 규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비공식 부문을 억압하기보다는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는 다른 곳에서 국가납부금을 의무화하지 않았어요. 놀이동산의 매대 등은 사실 공식적으로 얼마를 납부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들이 규정화돼 있지 않았거든요. 이런 것들을 세세하게 규정해서 합법적으로, 이들로부터 납부금을 받는 방법들을 모색하고자….
둘째, 국가 재정 부족
또 전문가들은 개인이 무역과 유통, 상업 등 경제활동에서 얻는 많은 이익을 국가 이익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김정은 정권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시장과 기업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통제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임송] 결과적으로 북한 당국이 쓸 수 있는 돈이 없는 거예요. 재정자금이 부족한 거죠. 그래서 가능한 재정 자금을 확충해야 하는데, 그걸 기업이나 시장을 통해 세금, 즉 납부금 형식으로 징수하는데, 그걸 위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북한 당국이 ‘등록 신고제’를 시행함으로써 판매 물품 신고를 의무화해 상인과 기업에 대한 통제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됐다고 임 연구위원은 덧붙였습니다.
[임송] 기업의 입장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동기가 작용하니 이중장부를 만들게 됩니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 축적되다 보니 국가 재정 자금은 감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기업은 자기 주머니만 챙기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통제하는 건데요. 시장에서 파는 사람들이 어디서 구매했는지 신고하게 만들어 놓으면, 모든 것들을 감시할 수 없지만, 확인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생기는 거예요. 그게 가능해지면 기업이 이중장부를 만드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느끼게 되죠. 궁극적으로 국가 재정 확충에 도움이 되는 겁니다.
결국, 북한 당국이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시장과 기업에 대한 통제와 단속을 강화함으로써 더 많은 납부금을 걷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시장 통제하는 김정은식 ‘경제 실험’, 오래 갈 수 없어”

이시마루 대표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의 시장 통제 정책은 조금씩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장을 통제하는 대신 북한 주민에게 배급 또는 임금을 주고 국영 기업소나 직장에 출근할 것을 유도했는데, 실제로 장사를 접은 사람 중에는 일단 먹고살기 위해 직장에 나가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겁니다.
또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경기 침체에 따른 현금 수입의 급감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지만, 여름 이후부터는 아사자가 줄었다는 것이 이시마루 대표의 설명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그리고 사람들이 장사가 잘 안되니까 직장에 다니려고 해요. 직장에 가면 노임을 줍니다. 모자라지만, 그래도 배급을 주니까 많은 사람이 출근하게 되고, 거기서 조직 생활을 하고 집단주의로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죠. 그러니까 칼로리 통치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는 것 같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국가의 통제 강화로 개인의 경제 활동이 강한 제한을 받고 있지만, 거꾸로 국영 기업에 출근하는 걸 강요받으면서 일단 먹고 살게끔 하고 있는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는 김정은 총비서가 기본적으로 시장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며, 코로나 대유행으로 외부와 단절된 상황을 틈타 계획 경제를 강화하고, 시장의 기능을 약화하면서 자신의 경제 정책을 ‘실험’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리정호] 기회를 타서 김정은이 경제 실험을 하는 거죠.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계획 경제를 강화해서 장마당이 맥을 쓰지 못하게 하고 국영 상점이나 국영 은행의 역할을 높이며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통제와 단속을 강화하는 김정은식의 ‘경제 실험’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전망입니다.
임송 부연구위원은 ‘무질서했던 시장에 대한 질서 정립’이라는 접근법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시장에 대한 통제와 단속만을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임송] 충분히 공급하면서 통제하게 되면 시장은 자연스레 소멸할 수 있습니다. 시장을 통제해서 낮에 팔지 못하면 밤에 파는 것이고, 시장에서 못 팔게 되면 집에서 파는 식으로 흘러가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결국, 권력을 가진 사람들, 통제권이 있는 사람들의 배만 부르게 됩니다.
리정호 대표도 김정은 정권이 아무리 시장을 통제한다고 해도 이를 대체할 만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시장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리정호] 지금 시장을 내놓은 지 20~30년이 지났는데, 북한 지도자들이 없애려고 노력하고 국영상점이나 국영은행으로 대체하자고 했는데 노력했는데 안 되잖아요. 대안이 없다는 겁니다. 통제를 강화하면 암시장이 생기죠. 통제하면 통제할수록 사람들은 또 다른 출로를 찾는 거죠. 시장 밖에서 움직일 거 아니에요. 그러면 가격 폭등을 불러오죠.
최근 북한에서는 희생을 각오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자력갱생을 이뤄내겠다는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매대마다 판매자가 다양한 물건을 팔고, 소비자와 흥정하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던 북한 시장.
하지만 오늘날 북한 당국의 통제와 단속으로 장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시장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는 가운데, 과거처럼 활기찬 시장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