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시설 절반 반출 가능성... 통일부 “단호히 대응”
2024.04.03
앵커: 북한 개성공단 시설에 대한 무단 반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열적외선 영상과 야간 조도 영상에서도 반출 의심 정황이 나타났습니다.
올해 개성공단에서 가동된 공장의 수가 크게 감소한 것도 기계와 설비의 무단 반출 때문일 가능성이 있고, 새벽 시간에는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해 공단 시설을 은밀히 반출했을 것이란 분석인데요.
한국 통일부는 한국 재산권을 침해하는 북한의 위법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3월 기준, 공단 시설 절반 무단 반출 가능성”
지난 2020년 6월, 북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 당국.
폭파된 건물은 수년 동안 방치됐는데, 최근 위성사진에 따르면 건물의 잔해가 모두 철거됐습니다.
또, 지난달 20일에는 ‘개성공단지원재단’이 출범 1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개성공단과 관련한 한국 측 기구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는 여전히 한국 재산이 남아 있습니다.
한 예로 개성공단 차고지에 있던 현대자동차의 ‘에어로시티’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출퇴근용으로 쓰이던 버스인데, 북한이 무단 운행하는 정황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개성공단 상황을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 랩스(Planet Labs)’의 위성사진과 열적외선, 그리고 야간 조도 위성영상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랜셋(Landsat)’ 8호와 9호 위성이 지난달 14일 촬영한 열적외선 영상에 따르면 통신 부품을 생산하는 시설(정보통신 업체)이 붉은색을 띤 고온 지역으로 나타났으며, 금형과 금속, 차량 부품과 주방용품 등을 만드는 4개 시설에서도 보라색의 고온이 식별됐습니다.
당시 개성공단의 평균기온인 17도보다 높은 20~21도를 기록하면서 공장 가동 정황을 보인 겁니다.
이처럼 북한이 개성공단의 남측 시설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가운데, 한 가지 특이점으로 개성공단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가동 정황이 식별되지 않았습니다.
위성사진을 분석한 한국 한반도 안보전략연구원의 정성학 연구위원은 1일 RFA에 “최근 북한이 ‘지방발전 20x10정책’에 따라 일부 개성공단 시설과 설비를 무단 반출해 타지방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성학] 지난해 10월 6일만 해도 공단 내에서 가동하는 시설 수도 많고, 운영이 매우 활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단 시설 수가 지난해 10월 12곳이었던 데 반해, 올 1월에는 네 곳으로 대폭 줄어든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3월 중순 기준, 공단 하단부에 가동하는 시설이 없는 것으로 분석돼 시설의 절반 정도가 무단 반출돼 나갔을 가능성이 의심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개성 공단의 가동 상황을 살펴보면 차량 부품과 의류, 가방과 신발, 섬유 공장 등이 열을 내며 가동하는 것으로 분석됐고, 플라스틱과 금형, 스마트폰 부품, 여성 의류, 전기밥솥, 전자∙정밀 시설 등은 활발히 가동 중인 것이 열적외선 영상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올 1월에는 금형과 전자, 통신부품, 의류 공장 등 총 네 곳에서만 열이 감지됐고, 이중 활발히 가동 중인 곳은 스마트폰 부품과 여성 의류 시설뿐이었습니다.
열적외선 영상 분석에서 올해 가동한 공장의 수가 지난해에 비해 급격히 감소한 것도, 시설이나 설비 등을 반출한 이후 일부 공장 운영이 멈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정 연구위원은 야간 조도 영상을 통해서도 시설과 설비의 무단 반출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정성학] 지난 2월, 3월의 야간 조도 영상에서는 공단 남쪽 하단부에서 야간 불빛이 포착됐는데요. 이는 심야 시간에 공단에서 철야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시설과 설비를 심야시간에 은밀히 무단 반출해 나가는 작업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지난 1월, ‘지방발전 20x10정책’에 따라 개성공단 시설을 황해남도, 황해북도, 자강도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승인한 것을 고려했을 때 “공단에서 야간 불빛이 포착된 것은 한겨울 새벽 1시 30분 경에 철야 작업에 열중한다기보다 국제사회의 이목을 피해 야간에 공단 시설이나 설비를 은밀히 반출하는 활동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통일부 “개성공단 시설 반출 동향 예의 주시”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2일 RFA에 북한이 개성공단 설비를 외부로 반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지방발전 20x10’정책의 핵심은 생산 시설인데, 북한이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이를 갖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수입하거나 개성공단의 설비를 사용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겁니다.
[조한범] 지방발전 20x10 정책의 핵심은 사실 지방공업을 생산하는 생산 시설입니다. 기존에도 북한이 자체로 만드는 지방공업들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치약, 칫솔의 경우는 한 번 쓰면 솔이 다 빠져버리는 형편 없는 품질입니다. 결국, 품질을 보증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중국제 정도의 생산 설비를 써야 합니다. 문제는 북한이 생산 설비를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 한다는 점입니다. 건물과 같은 껍데기는 만들 수 있지만, 설비를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입해야 하거나 아니면 개성공단에 있는 것을 뜯어와야 하는 겁니다. 개성공단 설비를 외부로 반출할 가능성은 지금 충분히 있고요.
한국 통일부도 2일 개성공단 시설의 무단 반출 가능성에 대한 RFA의 질의에 “북한의 우리 재산권 침해 행위는 불법적 형태로서 반드시 중단되어야 하며, 정부는 이러한 위법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통일부는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설비를 무단 반출하는 동향에 대해 “현재 확인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면서도 “관련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통일부는 지난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개성공단의 무단 사용과 관련한 법적 사항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있는 한국 기업 시설을 한국 측과 논의하지 않고 임의로 개건하거나 이전, 또는 확장하는 행위는 개성공업지구법에 따라 재산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개성공단 무단 사용과 설비의 무단 반출 가능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실제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손해배상금을 받아내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조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당장 효과가 없더라도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기록함으로써 앞으로 배상 또는 보상의 근거를 만들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