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량미 내라!’에 시달리는 북 주민

군량미 징발에 시달리는 주민들 군량미 징발에 시달리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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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 시작합니다.

"2분 영상, 북한을 보다"

북한 당국이 선전매체를 통해 소개하는 북한의 모습에는 웅장함과 화려함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감추고 싶은 북한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2분 영상, 북한을 보다'시간에서 실제로 북한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오늘날 북한의 실상을 꼬집어봅니다.

- 장마당 상인에게 군량미 요구하는 시장 관리원

- 군량미 안 내면 매대에 앉지도 못하게 해

- 상인은 물론 도매․소매업자에 대거리꾼까지 징수 대상

- '군량미 몰수하면 사람들 다 굶어 죽으라는 거냐?' 불만

- 군량미 많이 낸 북한 주민 선전하는 게시물 눈길


2011년 1월,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촬영한 북한 평안남도의 장마당 모습입니다.

시장 한복판에서 시장관리원과 상인이 옥신각신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군량미를 내라는 시장관리원과 이를 내지 못하겠다는 시장 상인의 대립이 팽팽한데요, 서로 격앙된 목소리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시장관리원] 처음 듣는다니 말이 되니?

[시장 상인] 농촌에서는 1kg씩만 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못 들었어요.

[시장 관리원] 못 듣긴 뭘 못 들어? 그딴 소리 하지 말라.

[시장 상인] 매일 나오는데, 오늘 못 내면...

[시장 관리원] 오늘 당장 내라고 했나? 저녁에 콩으로라도 내라고 했지

[시장 상인] 못 벌었으니까 못 낸다.

[시장 관리원] 말하지 말라!

이 동영상은 실제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에게 어떻게 군량미를 걷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애초 군량미를 협동농장의 생산물이나 수입 또는 국제지원, 그리고 군대 부업지의 생산물로 해결해 왔는데요,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는 사회적 대혼란 이후 군대에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100만 명에 해당하는 군대의 식량을 보장하려면 그만큼 국가가 책임지고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북한 당국이 사실상 이같은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군량미를 강제로 징수하게 된 겁니다.

실제로 이번 영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북한 장마당에는 시장 관리원이 직접 개인이게 쌀이나 옥수수를 걷기도 하는데요, 심지어 시장에서 장사를 하지 않는 도매업자도 군량미의 징수를 피할 수 없습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북한 당국이) 능력이 없으니까 일반 주민에게 '애국미를 내라', '군량미를 도와주라'는 식으로 명령과 요청을 해왔습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니까 강압적으로 징수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농사의 상황에 따라 강해지고 약해지는 것을 반복해왔습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보고 시각적으로 처음 확인했는데요, '이런 식으로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일반 주민에게 짐을 지우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영상이 촬영된 시기는 2011년 1월. 전년도인 2010년 당시 북한의 작황 사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2011년에도 안 좋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에는 군대에 식량 부족 현상이 매우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곡창지대인 황해도 지역에서 군량미를 강제로 징수한 탓에 아사자가 나올 만큼 농촌 주민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는데요, 그 이면에는 이처럼 군대에 보낼 식량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던 겁니다. (관련 기사)

그리고 다음 해에도 수확기가 끝나면 북한 당국이 우선으로 군량미를 거둬가 정작 농민에게 돌아가는 식량 분배의 양은 뚝 떨어졌는데요, 곡물뿐만 아니라 옥수수와 감자 등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관련 기사)

동영상에서 '아시아프레스'의 취재협조자가 북한 주민과 만나 군량미 징수에 관해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북한 주민은 장마당에 나온 상인에게 군량미가 징수되며 신발 매대는 20kg, 공업품은 10kg, 채소는 2kg 등 매대마다 할당량이 다르다고 말하는데요, 군량미를 내지 않으면 아예 매대에 앉지도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 장마당 나온 사람, 군량미 내라고 안 해요?

[북한 주민] 했어요.

- 한 사람에 몇 킬로씩?

[북한 주민] 매대마다 다 달라요. 신발 매대는 20kg, 공업품은 10kg, 남새는 2kg...

- 안 내면 장마당에 안 들여보내죠?

[북한 주민] 예, 앉지 못하게 하죠.

[Ishimaru Jiro] 장마당에서 일하는 장사꾼을 대상으로 군량미를 내라고 하는 것은 매년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심한 해는 일반 주민에게 '기부식으로 내라'는 수준이고, 그것도 모자랄 때는 장사꾼이나 대거리꾼까지 대상으로 강제 압수처럼 군량미 확보에 열을 올릴 때가 있는데, 이것은 해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11년 2월, 평양시 교외 공설시장. 한쪽 벽면에 게시물이 붙어 있습니다.

'아들아! 초소를 잘 지켜라!' '초소에 서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리복인 할머니, 현금 3만 원을 인민군대에 원호하는 미풍 발휘!'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 옆에는 '애국의 마음을 안고 군인의 아내가 싸우는 전선에 보내는 심정으로 60kg의 군량미를 마련해 인민군대에 원호하는 미풍 발휘!'라며 군량미를 많이 낸 사람들을 선전하는 게시물이 붙어 있는데요, 다른 곳에도 '원군미풍 선구자들'이라는 제목 아래 군량미를 많이 낸 사람의 이름과 제출량이 적혀 있습니다. 60kg, 40kg, 30kg 등 일반 북한 주민의 생활 수준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양입니다.

이처럼 많은 양의 군량미를 낸 북한 주민에 대해 이시마루 대표는 이렇게 설명하는데요,

[Ishimaru Jiro]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충성심 경쟁 차원에서 군량미를 누구보다 많이 냈다고 하면서 이익을 얻으려 할 수 있죠. 하나의 뇌물처럼 낼 수 있는데요, 이제 북한의 일반 주민도 바보가 아니니까 낸 만큼 대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빈부격차 때문에 많이 낼 수 있는 사람과 적게 내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선전용 의미로서 스스로 충성심을 강조하고 싶은 장사꾼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군량미 징수는 북한 주민의 삶을 더 궁핍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장 상인과 도매업자는 물론 영세업자와 농촌의 식량을 시장까지 운반해주는 대거리꾼에 이르기까지 군량미를 너무 많이 걷어간다며 불만을 토로하는데요,

[북한 여성] 군량미 때문에 미칠 정도래. 순천 다리에서 몽땅 단속해서 몰수했대.

[북한 여성] 장사를 하든 뭘 하든 무조건 30kg을 내야 한다.

[북한 남성] 군량미로 다 몰수하면 사람들은 다 굶어 죽으라는 거야?

북한에서는 매년 수확 시기가 지나면 군량미를 먼저 떼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는 군량미와 함께 수도미까지 징수합니다.

2014년 수확이 끝나고 2015년 3월에 접어든 오늘날, 이미 군량미와 수도미 등을 떼어낸 북한 주민의 생활은 어떤지 궁금한데요, 여전히 좋지 않다는 말은 지금도 들려옵니다. 또 군량미와 수도미 징수는 지금부터 주목해야 한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강조하는데요,

[Ishimaru Jiro] 부분적으로 들리는 말을 판단하면 '좋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나쁘다는 것은 아닌데 좋지 않다는 말이죠. 또 '군량미' 확보와 평양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수도미' 확보 등은 지금부터 봄까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너무 모자라면 8월까지 군량미가 많이 모자랄 수 있거든요. 옥수수가 수확되는 8월 말까지는 군량미 징수에 관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정은 정권에서도 군량미의 징수는 여전히 북한의 최우선 국가방침입니다. 북한이 농업에 대한 새로운 개선조치 도입과 인민생활의 향상을 강조하면서도 군량미에 대한 우선 징수는 여전히 북한의 우선순위가 일반 주민이 아닌 군대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과도한 군량미의 징수가 계속되는 한 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 북한 주민의 생활고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