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2세 학생들, 한인 실향민의 아픔 담은 책 발간

반세기가 넘도록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이산가족은 남한과 북한뿐 아니라 미국에도 살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머나먼 미국 땅에서 이산의 한을 품고 살아가는 미국내 한인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한인 청소년 2세들이 한 권의 책에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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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기자가 보도합니다.

"방에 혼자 있을 때마다 나는 몇 시간이고 어머니와 누이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다섯 자매를 북에서 홀로 키우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아팠다"
"내가 북한을 방문하거나 북한에 있는 동생들과 연락을 하다 아들이 미국의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 돼요.."

지난 5월 영문으로 발간된 '잃어버린 가족(Lost Family)'에 담겨 있는 미국에 사는 한인 이산가족들의 생생한 증언들입니다. '잃어버린 가족'은 미국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9 명의 학생들이 지난해 5월부터 1년 동안 30여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엮어낸 결실입니다.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 11학년에 재학중인 리사 남(Lisa Nam) 양은 처음에는 미국에 사는 한인 2세로서 한인 사회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한미 양국 정부의 관심도 지원도 받지 못하는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고통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Lisa Nam: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한인 청소년 세대입니다.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들은 연세가 80-90대의 고령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언어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분들입니다. 따라서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 일에 한국과 미국의 언어와 문화에 모두 익숙한 우리 세대가 나서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결성된 모임 ‘한인 이산가족을 위한 목소리(Voices of Divided Korean Families)’는 본격적으로 미국내 이산가족 문제를 미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 자료 수집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이산가족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또 어느 지역에 많이 살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한 통계자료 하나 없어 애를 먹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에 정착해 사는 아들, 딸, 손자들이 취업상의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고 걱정해 고향이 북한이라는 사실 자체를 공개하는 데 부담스러워 하는 분도 있었다고 학생들은 소개했습니다. 혹시라도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해가 갈까봐 회견을 꺼리는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도 모두 어린 학생들의 몫이었습니다.

‘한인 이산가족을 위한 목소리’의 장연규(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 10학년) 군은 전에는 몰랐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아픈 사연을 들으며 그들의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됐다고 말합니다.

장연규: 미국 대중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문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과 같은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사는 한인들이 가족과 수십년 간 헤어져 만날 수도 없다는 인도적 문제에 대해서 아무도 아는 이가 없습니다. 이를 미국 사회에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이산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잃어버린 가족’을 완성했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할일이 더 많다고 말합니다. 우선 미국 의회 도서관에 이 책을 배포하고 미국 의원들도 찾아가 미국내 한인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이루기 위한 로비 활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할 계획입니다. 학생들은 기회가 된다면 백악관에도 이 책을 전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후배 한인 학생들의 참여를 받아들여 활동을 확대할 계획인 ‘한인 이산가족을 위한 목소리’의 학생들은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남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족과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