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현장을 가다] 중국에 남겨진 북한 아이들 ③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중국-이진서 leej@rfa.org
2009.12.23
kids_wo_parents-305.jpg 지난해 중국 사천성 대지진으로 고아가 된 어린이들과 서울 상록보육원 어린이들이 지난 5월 18일 서울 롯데월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RFA 자유아시아방송 특별기획 ‘중국에 남겨진 북한 아이들’ 중국에서 부모의 강제북송으로 고아 처지가 돼버린 아동 대부분은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호구를 받지 못해 불법 신분으로 신변위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나서서 당장 보살펴 주지 않는다면 생존권마저 보장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있습니다.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의료 보건 시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탈북 아동들은 앞으로 성인이 돼서도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한 국가의 사회 구성원이나 정상적인 일반인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조직적인 범죄나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어 우려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 출신 아이들이 사는 곳을 직접 방문해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봤습니다. ‘중국에 남겨진 북한 아이들’ 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로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편을 보내드립니다. 취재 보도에 이진서 기자입니다.

엄마는 탈북자이지만 아버지가 한족인 아이 여섯 명이 사는 집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끝냈을 즈음입니다. 역시 이곳도 방이 3개짜리로 아파트 거실 한쪽 벽면은 아이들이 사물함으로 쓰도록 붙박이장이 있습니다.

이 집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다섯 살 짜리 꼬마 여자 아이는 보모 품에 안겨 계속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애교를 부립니다.

보모: 다섯 살 짜리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특히 사랑합니다란 말을 잘합니다. 너무 어려서 머릴 감겨 주는 것이 힘듭니다. 안고 하자면 물 조절 하기도 어려우니까요. 머릴 감고 나면 아버지 사랑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말을 잘한단 말입니다. 보고 듣고…


그래서 보모는 누구보다 이 아이에게 정이 간다고 말합니다. 이 아이를 보모에게 맡긴 선교사 김혜영(가명)씨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처음 농촌에 있는 아이를 찾아가 봤을 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불과 3개월 전 아이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김혜영: 처음 봤을 때 긴 머리를 감지 않아서 머리가 전부 한 덩어리로 된 가발처럼 먼지와 땀으로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만질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 한여름인데도 헤진 내복을 입고 있고, 맨발이고 살결이 검고 희고 얼굴이 머리 색은 검은색이 아니라 회색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북한 출신 아이들은 이유가 무엇이든 이렇게 사회적 보호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중국인이지만 부모 중 한쪽은 탈북자이기 때문에 중국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북한 출신 아이들은 자신이 사는 농촌의 선교사를 통해 도시에 있는 선교사와 연결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설로 거처를 옮기고 있습니다. 처음 몇 달간은 그동안 영양 결핍으로 생긴 잔병을 치유하기에 급급하지만 그 후유증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보모: 아이들이 그동안 계속 병원에 다녔는데 치료를 하는데 잘 낫질 않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나요? 기침을 많이 하고, 열이 자주 나고 … 아이들이 지금은 잘 먹는데 여전히 발육이 더딥니다.

또 다른 보호시설의 이 선교사 보모의 말입니다.

보모: 아이들이 영양이 부족해 손과 발이 작습니다. 신발을 사려고 해도 9-10살인데 목이 긴 구두를 좋아하지만 아이 발이 작으니까 맞는 신이 없단 말입니다. 발이 작으니까요. 그러니 자기도 힘들죠.

작고 천사와 같은 모습을 한 열한 살 된 경희(가명)와 얘기를 나눠봅니다.

기자와 경희: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의사, 아니 선생님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기 위해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나는 커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 어떤 때 기분이 좋아요? 공원에 갈 때요. 공원에 가면 왜 좋아요? 마음대로 놀 수 있어서 좋아요. 제일 가지고 싶은 것은 뭐야? 지혜를 갖고 싶습니다. 뭐요? 지혜.

맛있는 음식도 장난감도 아닌 지혜를 원한다는 경희의 답변에 깜짝 놀랐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경희가 이번에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한번 해줄 수 있느냐고 청하니 두말없이 들려줍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잼을 좋아해 잼 먹고 잼 먹고 배탈이 나서 병원에 달려갔더니 호박 같은 간호사가 날 반기네 아아 아이러브유 유유 유러미 미 미 미스 코리아 아아 아름답구나’

올해 아홉 살 된 경희는 네 살 때까지 한족 아버지와 살았지만 자신이 살았던 농촌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중국에서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것은 국가에서 하는 일로 개인이 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런 사설 아동보호 시설은 불법입니다. 보모는 왜, 당국에 발각되면 자신이 곤경에 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일을 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기자와 보모: 중국에서는 고아를 데려다 돌보는 것이 불법이죠? 불법입니다. 특히 외국의 원조를 받아 아이를 보호하는 일은 하지 못하게 합니다. 벌금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친척 아이를 전탁한다고 말합니다. 원래 아이들의 친척이 키울 수가 없고 농촌에서 키울 수 없으니까 보내지 왜 보냈겠습니까? 제 자식을 키우면서도 내 아이는 몇 번 안아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영혼을 주시고 은사를 주셨으니까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내가 한 10년을 이 일을 하고 있는데 보통 사람은 못한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고 있다. 겨울 방학에는 농촌에 있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영훈(가명)이는 올해 열 살.

기자와 영훈: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발명가. 뭐든지 가능하게 만드는 기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친구들과 잘 지내요? 누구 보고 싶은 사람 있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어디 계신데요? 내가 갈 수 있긴 한 데 산 중간에 있는 집에 삽니다. 거기서 누구와 살았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4살 때 어디 가고…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아빠를 보러 가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혼자 있어서 생활도 힘들고 게다가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다 다쳤다는 연락을 보모에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보호시설에서 살지만 친척이나 아버지가 가끔이나마 소식을 전해올 때 아이들의 표정은 밝아집니다. 보모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관심 속에서 사랑을 받는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발육도 빠르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합창: 있잖아요 하나님 사랑 이야기 들어 봤나요?

중국 당국은 탈북자 아동 문제에 대해서는 성인처럼 강제북송의 원칙을 주장하진 않고 있다고 현지 탈북자 지원활동가는 말합니다. 하지만 이 아동들을 수용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두고 사랑을 줄 때 더 이상 굶주림에 허덕이며 추운 겨울 온기 없는 방에서 혼자 울다가 지쳐 목소리마저 잃어 버리는 아이는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노래에서 찾는 하나님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아이들의 눈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 우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중국 변방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RFA 특별기획 ‘중국에 남겨진 북한 아이들’ 다음 시간에는 남한의 인권단체 관계자가 말하는 중국 내 고아실태 대담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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