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탈북자들이 말하는 중국생활]① 토굴에서 5년 살았다

0:00 / 0:00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 두 번이나 공안에게 체포된 탈북자 유상준 씨. RFA PHOTO/ 이진서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 두 번이나 공안에게 체포된 탈북자 유상준 씨. RFA PHOTO/ 이진서

MC: RFA 자유아시아 방송 3부작 특집방송 탈북자들이 말하는 중국에서의 생활

먹고 살길을 찾아 1990년대 말 도강을 했지만 중국에서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숨어살아야만 했던 북한주민들 이들이 남한으로 가서 자신의 과거를 들려줍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남한 국적을 얻은 뒤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 두 번이나 공안에게 체포된 탈북자 유상준 씨 그리고 왕청현 마반산에서 5년 동안 토굴 생활을 한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진행에는 이진서 기잡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숨어 살아야만 했던 중국엘 다시 가보고 싶어 합니다. 이번에는 한국 여권을 가지고 당당하게 말입니다. 그런데 탈북자 유상준 씨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서도 중국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강제추방을 당합니다.



유상준: 탈북자들을 인도해 몽골 루트를 이용하다 중국 공안에게 체포 됐고 두 번째는 두만강 인근에서 안전국 요원에게 잡혔습니다.

기자: 한국 국적이었는데 공안원이 그런 대우를 하던가요?

유상준: 두 번째는 공안이 아니고 안전국이었습니다. 안전국은 법이 없는 거죠. 일단 수상하다고 하면 일단 잡아다 놓고 패서 혐의를 만드는 것이죠.

2007년 8월 중국 공안에게 체포됐을 때는 내몽고 자치구인 시린궈러멍 간수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간수소란 재판 직전에 사람을 보호 감찰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유 씨는 이름과 주민등록증을 바꿔 다시 중국에 갔다가 2011년 5월 안전국에 발각돼 또 다시 추방됩니다.

유상준: 두 번째 잡혔을 때는 감옥은 아니고 조사실에 가서 조사 받고 그 다음에 가까운 근처 여관에 가서 지내는데 차단된 곳에서 경찰이 많을 때는 6명이 감시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받았지만 경찰이 접근을 못하게 했죠.

기자: 어디였나요?

유상준: 용정입니다. 도문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 여관에 25일 정도 갇혀있었습니다.

남한생활 12년째인 탈북자 유상준 씨 자신의 아들을 내몽골 사막에서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고 있습니다. 그는 2003년부터 자신의 삶을 중국 내 탈북자를 돕는 일에 바치게 됩니다.

기자: 탈북자를 돕는 동기가 있을 텐데요

유상준: 제가 탈북자 선교회에서 1년 정도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 계속 들려오는 소리가 탈북자 몇 명 잡혔다 어느 피난처가 습격 받았다 그런 소식만 계속 들려오는 겁니다. 피난처 자체가 계속 공안의 습격을 받는 다는 것이 이해가 안됐습니다. 공안이 잡으러 온다는 공포를 저도 경험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최소한 그런 일이 안생기가 제가 움직였던 겁니다.

자신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중국에서 남한에 간 탈북자는 적게 잡아도 500여명이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기자: 2005년 이후에는 토굴 생활자 구출에 집중하셨는데 계기가 있습니까?

유상준: 그들이 민가에 내려와 발을 붙일 수 없습니다. 식량이나 소금 등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데 산속에 곤충, 짐승이 있는데 땅 파고 산다는 것은 정말 최악의 생활이죠. 그래서 그분들을 중점으로 구하기 시작 했죠.

이제 중국에는 갈 수 없지만 남한에서 탈북자 구출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유상준 씨. 그는 중국의 탈북자 정책을 잘 알고 있다면서 몸부림치는 불쌍한 생명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중국 당국에 호소합니다.

유상준: 경제대국을 넘어 선진국가로 나가자면 반드시 인권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인가 후진국인가는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중국이 이제는 국제사회에 부끄럽지 않게 대우받자면 인권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중국 지도부가 지난 10여년 계속 탈북자들을 북송했는데 지금이라도 탈북자 강제북송을 멈추고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자기 의무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중국지도부가 노력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 탈북자가 5년 동안의 토굴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RFA PHOTO/ 이진서
한 탈북자가 5년 동안의 토굴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RFA PHOTO/ 이진서

유상준 씨의 안내를 받아 남한에 간 탈북자 중에는 황만철(가명)씨 부부가 있습니다. 황 씨 부부는 1999년 마반산에서 5년간 숨어 지낸 탈북자입니다.

황철만: 개구리 기르는 곳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개인이 산에 구덩이를 깊이 파서 개구리가 동면하게 기르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일했습니다.

기자: 중국 사람들이 하마장이라고 하는 곳이죠. 그런 일을 하면서 살다가 연변 사람들도 탈북자들을 고발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다시 집은 산골에다 놓고 다른 산골짜기를 택해 움막같이 땅을 깊이 파고 밑에는 온돌을 놓고 굴뚝도 조금 나오게 했지만 잔디로 위장을 해서 만들고 북한 사람들 단속한다 하면 들어가 살다가 나오고 그랬죠.

기자: 그러니까 완전히 산에 움막을 파고 생활하신 것은 아니네요?

황철만: 아니지, 산이지. 둘 다 산인데 마을 사람들이 내가 사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골짜기에 움막을 파고 산거죠

기자: 산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산짐승도 있고 했을 텐데 숨어 사는데 제일 무서운 것은 뭐였나요.

황철만: 짐승은 무섭지 않죠. 짐승은 무섭지 않고 공안, 사람이 제일 무섭죠. 한 번은 공안이 오기에 그냥 소리친 적도 있어요. "올라 올 테면 와봐라", 그랬더니 오다가 그냥 가더라고.

황 씨 부부가 산골짜기에 살던 곳 지명은 왕청현 마반산 성매장골. 시골마을입니다. 황 씨의 부인의 말입니다.

부인: 동네와는 10리 들어가 살았습니다. 전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에요. 그런데 경찰이 우리를 붙잡으러 수시로 올라와요. 그때 개를 산 올라오는 길 중간 중간에 기르면서 살았죠. 경찰이 올라오면 개가 짖고 그러면 또 도망가고... 토굴에서는 천정이 낮아 엎드려서 아침하고 그랬어요. 밤에만 불을 때서 하고 달뜨기 전에 하고 그랬죠.

기자: 밤에는 불을 때도 괜찮은가요? 연기가 보이잖아요.

부인: 10리나 떨어져 있는데 누가 알아요. 낮에는 풀 뜯고 그랬는데 움막에 오면 쥐가 다 뜯어 먹고 정말 지옥 같았어요.

여순 일곱의 황 씨. 이들 부부는 이제 남한 생활이 3년이 됩니다. 현재 대형 백화점에서 주차요원으로 일하고 황만철 씨는 정부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으로도 생활이 되지만 아직도 건강하니 일을 해야 한다면서 젊은이 못지않게 활기차 보입니다. 이들 부부의 소망은 어떤 것일까?

기자: 이제 뭘 제일 이루고 싶으세요?

부인: 건강이 최곱니다. 66살인데 건강하기만 하면 됩니다.

황만철: 소망은 통일을 이루는 겁니다. 한민족이 하나로 뭉쳐야지 힘이 나는 거지 자기식대로 하면 힘이 안 나는 거야. 서로 배울 것은 배우고 해야 앞으로 우리 후세들도 행복하게 살 것 같습니다.

탈북자도 인간이니 북송시키지 말고 중국에서 살 수 있게 호구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황 씨의 부부는 지금껏 묻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때의 생활은 기억하기도 싫다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중국에서의 생활 이야기를 했다고 고백합니다. 남편이 일하는 건물까지 찾아와 두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은 너무 평온했습니다.

mc: RFA 자유아시아 특집방송 탈북자들이 말하는 중국에서의 생활

오늘은 남한 국적을 얻은 뒤 중국에서 두 번이나 추방을 당했던 탈북자 유상준 씨와 왕청현 마반산에서 5년 동안 토굴 생활을한 황만철(가명)씨 부부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내일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팔려 다녀야 했던 탈북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진행에는 이진서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