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단동에서 본 북한의 현실]① “화장품에서 치약까지 가짜상품 판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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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자유아시아 방송은 허울뿐인 자력갱생의 구호아래 가짜가 판을 치는 북한의 현실을 취재한 최민석 기자의 중국 단동 현지 취재를 22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북한의 유명 화장품 ‘봄향기’ 과연 진짜가 있나?” 편입니다.

북한에서 유명하기로 소문난 ‘봄향기’ 화장품.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예물로 주고받고, 더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름 있는 예술인들과 평양의 교통 보안원들에게 선물해 그 이름은 유명세를 탔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명세만큼이나, ‘봄향기’ 화장품 가운데는 ‘짝퉁’, 즉 가짜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중국 단동의 압록강 변에서 북한 물건을 팔고 있는 조선족 류시중(가명, 40대)씨. 그가 펴놓은 가판대 위에 있는 북한산 치약과 비누 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봄향기’라고 씌어진 치약의 원산지는 ‘신의주 화장품공장’으로 되어 있고 무게는 115g, 이삭기 예방에 특효가 있다고 겉면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치약의 주 원료도 이산화규소, 글리세린 등 7가지 화학성분이 골고루 배합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류씨는 “봄향기 치약은 조선에서 이빨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소문났다”면서 “치약 가격은 인민폐 10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돈 10원은 현재 외화 환율로 볼 때 미화 1.6달러, 북한 돈으로 환산하면 4천 원가량 됩니다.

하지만, 함께 갔던 중국 화교 한모씨는 “이 봄향기 치약은 겉으로 봐선 진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들이 만든 가짜”라고 귀띔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신의주 시장에서 봄향기 치약은 북한 돈 천 원가량에 팔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씨는 “신의주 화장품 공장이 가동을 멈춘 지 한참 됐다”면서 “지금 장마당에 나온 제품들은 8.3제품으로, 대부분 노동자들이 집에서 자체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류씨가 파는 봄향기 치약통 겉면에는 ‘보관기일’이 6개월이라고 표시돼있지만, 제조날짜는 없습니다.

10년 전 고향 신의주를 떠난 탈북자 김춘화(가명, 30대)씨도 신의주화장품공장 노동자들은 비누와 화장품 원료를 몰래 훔쳐다 집에서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고 북한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김춘화씨의 말입니다.

“저의 친구 하나가 화장품 공장에 있었는데, 4월 15일(김일성 생일)이나 2월 16일(김정일 생일) 되면 생산을 좀 하지 않나요. 그때 좀 몰래 훔쳐 가지고 나와요. 그러면 어머니들이 집에서 비누를 만드는 것을 봤는데, 빨래비누나 이런 거요……”

신의주에는 화장품공장, 신발공장 등 경공업 공장들이 여러 개 있는데, 이곳 주민의 대부분은 신발, 비누 등을 자체로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북한에서도 소문났습니다.

신의주 출신의 또 다른 탈북자 김철(가명)씨는 북한주민들이 치약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먼저 화장품 공장 근로자들이 치약 원료를 빼돌리는 것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일부 노동자들은 공장 보위대들과 짜고 밤에 빼내 가는가 하면 일부 여성 근로자들은 도시락 곽 안에 넣어 내가는 등 수법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치약 내용물을 비닐 용기에 넣고, 구멍탄불에 인두를 달구어 지져 포장한다고 김씨는 말했습니다. 포장 용기는 중국에서 밀수해 들여온 비닐제품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만든 치약의 포장도 진짜 제품처럼 깔끔하지 못하고, 내용물도 충분히 들어가지 못해 이를 닦을 때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고 김씨는 말합니다.

김씨는 “모든 것이 부족한 북한에서 자력갱생으로 하는 게 원칙”이라며 “그나마 이렇게 훔칠 물건이라도 있는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래도 생활이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내각 산하 경공업성에서 간부로 근무했던 김태산씨는 “봄향기 화장품은 일본에서 원료를 들여다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경공업성에서 원료, 자재, 포장재까지 일본에서 수입해 들여와 봄향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북일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수입하던 원료가 끊기자, 화장품의 질이 떨어지고 지금은 생산이 정상화 되지 못해 개인들이 집에서 만드는 8.3제품이 많다고 김씨는 말했습니다.

북한은 이런 봄향기 화장품을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8년 11월 신의주 화장품 공장을 방문하고 “더 많은 화장품을 생산해서 인민들에게 공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얼마 전 북한 중앙텔레비전도 신의주화장품공장을 방영하면서 “봄향기 화장품 생산이 만가동을 걸었다”고 보도한바 있습니다.

<녹취: 북한 중앙TV>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봄향기 되어 끝없이 넘치는 신의주화장품공장. 우리는 얼마 전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화장품을 생산 공급하기 위해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말씀을 관철하기 위해 기대마다에 만가동 만부하의 동음을 울리고 있는 신의주화장품 공장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선전과 관련해 신의주 출신 탈북자들과 대북 소식통들은 “봄향기 화장품의 정품은 장군님이 공장에 올 때만 구경할 수 있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습니다.

이 말은 김 위원장이 공장을 찾을 때만 화장품이 생산된다는 소리로, 진짜 제품을 구경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 김모씨는 “신의주 화장품 공장에서 생산이 매일 정상화 된다고 하지만 실제 상점에 나오는 물건은 없고, 장마당에만 물건이 넘쳐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단동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